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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Varsika 2021. 3. 3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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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겠다고 대답할 떄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등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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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행성 연작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종류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류드밀라의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평론가들은 류드밀라의 작품이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묘사해내기 떄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 세계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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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기이한 사실이 연이어 보고되었다. 그 행성은 이미 오래전 모항성의 거대 플레어 폭발에 의해 불탔고, 우주망원경이 수신한 데이터는 폭발에 휩쓸리기 직전 행성의 모습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이미 사라진 행성을 보고 있는 겁니다. 한때 실제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류드밀라의 세계를요."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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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로봇에게 맡기다니, 끔찍한!'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요. 이불쌍한 아이들이 피도 눈물도 모르는 존재로 자란 건 너무 당현한 일이에요!' 

 

그러나 중요한 건 인간 보육자의 유무가 아닐 수도 있다. 인간 보육자가 아니라 '그들'이 아기들을 피와 눈물이 있는 존재로 키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 밖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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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송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떨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제로 가르쳐왔다면.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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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전후로 표현 분석 결과에서 그들의 대화는 완전히 사라진다. 성장한 어린이들에게서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사고-표현이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은 인간의 유년기에만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일곱 살의 아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 것 같았다. "혹시, 유년기 기억 상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일곱 살 이후로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리잖아요." (...)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특히 자전적 사건에 관한 기억은 일곱 살을 기점으로 대부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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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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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쏙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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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억지 신파 영화에 그렇게 감동을 했을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녀가 가방에서 영화 포스터를 꺼낸 다음 신경질적으로 구겨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 여자에게 영화의 내용은 중요했을까? 그 순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떄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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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복잡한 기분 속에서 질문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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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날, 나는 보현의 서랍장 위에서 수십 개의 감정의 물성 제품들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전부 '우울'이었다. 그 옆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항우울제가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우울에 빠져 죽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고 싶은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널 이해 못하겠어."

 

보현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발목이 잡혀있었다. 한 떄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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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까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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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진짜 사람도 아니잖아. 무덤이나 뼛가루처럼 뭐가 진짜로 남은 것도 아니고. 그거 다 그냥 동영상 같은 거야. 반응할 수 있으니까 기분이야 좀 다르겠지만, 무슨 대단한 거라도 되는 듯이 홍보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과장 광고야." 분실 사건이 아니었다면 지민도 동생의 말에 동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영상 파일을 읽어버린 것과는 달랐다. "그래도, 난 기분 나빠. 예전으로 치면 허락도 없이 관을 못 찾게 옮긴 거나 마찬가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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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끝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그래도 엄마는 분실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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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사람들은 재경을 닮은 다른 약한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래서 결함이 있는 존재를 중요한 자리에 올리면 안 된다고, 표준인간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비난들은 분명히 재경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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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간 이들을 위한 항해

 

김초엽의 소설에서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사라지거나 실종된 상황에서 출발하여 그의 궤적을 따라가며 서서히 진실을 깨닫는 서사가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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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해설, 인아영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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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명 아래 소수자에게 가해지느 ㄴ과도한 기대를 자유롭게 벗어던진 재경의 선택에서 어떤 해방을 본다. 시스템의 요구나 세간의 기대에 함몰되지 않고 신체의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데 집중한 중년의 비혼모 우주비행사의 선택은 아랫세대인 여성 우주비행사 가윤에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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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폐기해야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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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와 마찬가지로 이 외계의 존재들이 지적인 사고체계와 소통능력을 가진 '지성' 생명체라는 설정은 중요하다. 이 소설의 사고실험은 단지 외계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에 의해 추동되고 있지 않으며 그보다는 이들과 맺는 관계에 관심이 있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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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이라고 여겨져 왔던 가치가 실은 외부 생명체에 의해 유입된 것이며 애초에 인간 지성의 진화와 문명이 그들과의 공생에서 촉발되었다면, 인간에게 그보다 더 깊고 내밀한 관계 맺음이 어디 있겠는가. 이토록 깊고 내밀한 외계 생명체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해할 수도 소통할 수도 없는 타자와 공생하는 꿈을 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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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생생하고 감각되는 감정의 물성으 ㄴ어쩌면 김초엽의 첫 소설집인 이 책의 질감과 맞닿아 있다. 동시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미래의 추상적인 과학기술은 김초엽이 섬세하게 축조해놓은 소설 세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감각되기 떄문이다. 3년 전에 죽은 엄마의 영혼은 생애 정볼르 데이터로 이식하여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느 ㄴ마인드로, 소수자가 겪은 억압으로부터이 해방은 깊은 바다로 떠나는 사이보그의 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는 외계 생명체 루이의 색채 그림으로, 우리에게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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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을 쓰던 시기에는 기술로 인해 변형된 인간의 감각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 교과서에는 늘 지식의 발견과 더불어 그 지식을 발견 가능하게 했던 도구, 장치, 실험 설계까 함께 제시된다. 우리가 여러 가지 도구들 - 망원경과 현미경, 현대 실험실의 주축인 실험장비들-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탐구하고 확장해왔는지를 생각하면 흥미롭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감각에만 익숙했더 ㄴ한 과학자가,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세계와 타인을 만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가 궁금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나누어 쓰는 기획 단편선에 참여했던 작품이다. 처음에 별 고민 없이 유토피아를 쓰겠다고 했다가, 유토피아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서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이 글을 쓰며 그러 질문을 거듭했다.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계속 그 답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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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오하지는 못했다. 

 

-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꺼야.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미움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 행복은 불행의 부재가 아니다.

 

- (감정의 물성)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일수도 있다.

 

- (관내분실) 의도적 인덱스 삭제

 

- 여행의 개념이 공간에서 시간으로 움직여야만 여행(머물러도 여행이 될 수 있다)

 

- 진실은 주어지는게 아니라 찾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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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5월 읽음

* 2023년 8월 내용을 일부 추가하다. 처음 읽을 때는 낯선 SF장르라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3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대화로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적었다. 일상에서 얻지 못한 대화 다운 대화가 책 속에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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