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야기들/독서

<눈부신 안부> (백수린)

Varsika 2023. 7. 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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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좋았다. 가장 좋은 책은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였다. 이미 여름의 빌라를 읽은 후에 접한 책이기에 문장의 수려함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앞에서 복선처럼 제시된 단서들이 결말에 이르러 차분히 수렴하는 이야기의 결에 감탄했다. 장편소설이라서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결의 매력이 분명히 이 책에 있다. 

 

독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취재를 어떻게 한 것인지 방대한 사료를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를 다 읽은 뒤, 코멘터리북에서 이야기를 다 쓴 뒤에야 배경이 되는 도시를 찾아갔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인상 깊었다. 꼭 현지를 취재하고 나서야 소설의 배경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다 쓴 후에 배경이 되는 도시를 찾은 작가의 감정은 어떨지 생각해 보는 것 역시 독자로서의 즐거움이었다.

 

대학 도시로 유명한 G시로 떠나고 싶다. 지도를 찾아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도 한참 걸릴 위치였다. 그래도 훗날 어느 여름에 독일을 여행하게 된다면 꼭 G시로 떠나 하루를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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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쑥한 정장 차림의 우재는 정말이지 낯설어서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했다. 

▶ 신입생때부터 알던 친구가 내가 군대를 전역했을 때쯤 비슷한 소리를 했다. 네가 훗날 정장을 입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고. 백수린 소설 속 대사에서는 이렇게 지난날을 반추하게 된다.

 

-. 서울에선 모든 게 너무 소란하잖아, 빛조차도 시끄러워, 라고 말을 했던가?

▶ 빛조차도 시끄럽다는 표현이 처음 듣는 낯선 표현임에도 너무 내 마음에 와닿았다.

 

-.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

 

-. 살아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주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 어른들은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너무 많은 상상을 멈출 수 없고 그래서 괴롭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는 대신 다른 사람도 적어도 나만큼은 고통스러웠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인간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우리 사이의 무언가가 틀림없이 훼손되었다고 느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 한 해의 끝에서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인생의 곳곳에는 들판에 숨어 있는 제비꽃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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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셜이 KH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이야기.

 

1. 현재(한국, 서울)

나(해미)는 기자 출신의 백수이고 케르테스의 사진전에서 오래된 친구 우재(제주도에서 약국을 운영 중)을 만나 이모 이야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13세부터 15세까지 독일 G시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으며, 엄마와 나, 동생 해나가 함께 파독 간호사인 이모가 있는 도시에서 함께 지냈다. 당시 아빠는 부산에서 근무 중이었다. 

 

2. 과거(독일)

헤나. 마리아 이모(헤나의 엄마, 본명 최말숙)가 소개시켜준 첫 독일 친구로 혼혈이다. 엄마가 한국인, 아빠는 독일인이다. 마리아 이모는 가난을 피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찾아 독일로 떠나왔다. 

 

한수. 선자 이모의 아들이다. 선자 이모는 한국인 남편과 살았으나 이혼 후 전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한수는 선자 이모가 병으로 인해 곧 세상을 떠날까 염려하며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아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한수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누나인 한미는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선자 이모는 한국에서 살 때 인천에서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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