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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원진 면접
 
임원진 면접실 앞의 대기 공간은 매우 좁았다. 실무진 면접을 끝낸 지원자들이 하나둘 모였고, 5명이 모이자 하나의 팀으로 구성되었다. 임원진 면접은 5대 5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지만 모두 긴장한 역력히 가득했고, 웃으며 농담을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리 팀 중 한 명은 경력직으로 지원한 남자였다.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지원자는 나머지 팀원들과는 다르게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안내를 위해 면접 대기 장소로 왔던 회사의 직원(차장 정도 되어 보였다)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대화 내용은 장소에 걸맞게 지원 계기와 전 직장생활, 취업 활동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 지원자들은 각자 머릿속으로 질문과 답변을 상상하며 면접을 준비했다. 팀에서 유일하게 여자였던 지원자가 1번을 배정받았고 나는 3번이었다. 먼저 들어간 여자 지원자가 인사를 할 때 차렷, 경례를 말하기로 했다. 
 
10분 정도 대기했을까, 앞 팀의 면접이 끝났고 이어서 우리 팀이 면접실로 들어갔다. 실무진 면접 때와는 다르게 면접관들과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었다. 나란히 5개로 나열된 의자에서 서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면엔 면접관 5명이 있었고,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오른쪽에는 면접관이 아닌 직원들 3명 정도가 나란히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마주 보고 있는 면접관과 지원자들, 그리고 그사이의 보조(?) 면접관이 디귿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인사를 하자 면접관들 중 가운데 앉은 사람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나이는 지긋하여 부장 그 이상으로 보였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였다. 자리에 앉자 각자 1분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1분이 넘어가면 자기소개를 자르겠다고 말했다. 모두들 자기소개를 했고 나도 다행히 1분 내로 자기소개를 마쳤다. 면접 전날 새벽까지 연습했던 자기소개였다. 대답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친구에게 보내주면서 피드백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말했던 자기소개의 요점은, 일반 행정직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일반 행정직은 부서를 순환하며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유관부서 간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 생활 동안 다양한 대외활동이나 학회 활동을 통하여 협업을 해본 경험, 다양한 분야를 빠르게 배우고 분석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5명이었는지, 4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른 면접 후기들을 보면 5대 5 면접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면접관의 수가 헷갈리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면접 방식에 있었다.
 
처음 질문은 가운데 배석한 면접관으로부터 시작했다. 자소서를 기반으로 질문이 시작되었고, 지원자들은 각자의 순서에 따라 답변했다. 다대다 면접은 처음이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함께 면접에 들어간 지원자가 많을 경우, 지원자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과 경쟁심이 생겨난다. 이 감정들은 단순히 지원자가 많다거나, 선발인원이 적다거나 하는 수치적인 기준을 초월하여 내가 답변하는 장소와 시간에서 실시간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긴장감이 배로 커지고, 답변을 마치고 나면 내가 옆 지원자보다 답변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즉각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짧은 몇 초 만에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판단이 서기도 전에 다음 질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종일관 초조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문제는 상황이 그렇다 보니, 지원자들은 스스로 답변을 조금씩 과장하기도 하고 답변의 속도가 빨라지기도 해서 자신이 사전에 준비해온 페이스를 잃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옆 지원자들의 스펙이나 강점을 듣고는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근거나 팩트를 설명하기도 전에 나 자신을 소개하고, 장점을 나열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면접 시간이 흐를수록 더 초조해졌다.
 
지원자들이 대답이 시원찮다고 느낀 것인지 중앙에 앉은 면접관은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원자들의 시선에서 가장 왼 측에는 젊은 남자 면접관이 있었는데 굉장히 기술적으로(시간을 정확히 통제하면서) 면접을 보았다. 이 사람은 면접의 객관성을 위하여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면접관 같았다. 오른쪽 끝에는 나이가 많은 또 다른 임원이 있었고 이 남자는 보편적인, 그러니까 다른 면접에서도 나올법한 무난한 면접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중앙에 앉은 면접관은 앞서 서술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이었다.
 
그는 지원자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표정으로 바로 티를 냈고, 심지어 호통을 치기도 했다. 면접 대기실에서 긴장하지 않았던 올드 루키 남자지원자는 자신이 재무와 회계 분야의 공부를 해왔고, 전 직장에서도 관련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CPA와 같은 공인 자격증은 없는 것 같았지만 본인은 업무에 자신 있다고 답변을 하였는데, 물론 내가 듣기에도 조금 과한 자신감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면접관이라면 해당 직무에 대한 이해가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실무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추가 질문으로 확인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앙 면접관의 말은 이것이 다였다.
"재무, 회계, 경제 전반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다고요? 정말 대~단한 지원자네요. 다음!"
자소서 내용을 보고 제대로 묻지도 않고, 그저 비아냥만 하고 넘어가 버렸다. 지원자에게 추가 답변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1번으로 들어갔던 여자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에 외국어를 잘한다고 적었는데, 이를 본 중앙 면접관은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고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자 지원자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중국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영어와 일본어는 회화 자격증을 별도로 취득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회화는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역시 중앙 면접관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어학연수를 다녀왔는지 등은 하나도 묻지 않고, "아, 네 알겠습니다"하고는 다른 지원자에게 질문을 넘겨버렸다. 내 생각에 중앙 면접관은 면접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면접에 들어온 이유도, 그가 질문을 한 의도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여자 지원자라서 말을 끊거나(그는 다른 지원자의 답변을 자주 끊었다), 호통을 치면서 "아 됐습니다!, 다음!"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대외활동 당시 정부 부처에서 기자단을 한 경력이 있고, 결론적으로 1년의 활동 끝에 장관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대학생 기자단이라는 것이 거창한 활동이라거나 전문적인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면접을 볼 때에도, 장관상을 수상할 때에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다만 그것을 자소서에 적은 것은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전혀 모르던 팀원들과 만나 팀워크를 쌓을 수 있었고, 어려움 끝에 좋은 결실을 맺었다는 보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부인사로 보이는 젊은 남자(30대 후반 ~ 40대 초반) 면접관이 나에게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해당 대외활동이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 성실하게 활동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자단 활동이라는 것이 거창한 스펙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고, 장관상을 받았다는 것도 그저 결과이지 그것이 (업계도 다른) 취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면접관은 "그렇다면, 본인이 왜 그렇게 기자단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다른 동료들과 협업을 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즐거웠고,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외활동이 나의 첫 대외활동이었고 이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덧붙여 만약 혼자 개인으로 했던 활동이라면 그렇게까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면접관은 "그렇다면 본인에게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동료와의 팀워크인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서 면접관은 "그렇다면 임금이라든지 보상이 미약하더라도 사람만 좋으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얼마나 내가 솔직하게 답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질문 같았다. 나는 임금도 중요하고 보상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하는지와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아무래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질문은 거기서 끝이 났다.
 
바로 이어서 반대편 끝에 있던 중년(~노년)의 면접관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해당 활동에서 장관상을 받는데 본인의 기여도는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50%~70% 정도 된다고 답변했다. 이것은 스스로 생각한 합당한 기여도라고 생각했다. 해당 활동은 1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상반기에는 나를 포함한 4명의 팀원 모두 과제가 고르게 분배가 되었다. 그런데 하반기로 넘어가면서 기존 팀장의 취업 활동, 다른 팀원 하나의 탈퇴 의사 표명(휴학을 하고 가족이 있는 외국으로 갔다) 등으로 팀이 해체될 위기에 봉착했다. 나와 나머지 팀원 1명은 고심 끝에 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고, 아쉽게도 나머지 팀원 1명조차도 취업 준비생이었으므로 내가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야만 했다. 
 

 

팀 활동 종료를 3~4개월 앞둔 시점부터 팀원들의 과제를 취합하여 팀의 과제로 만드는 일도 내 역할이었고, 팀원이 사정상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면 그 몫까지 오롯이 내가 짊어지게 되었다. 활동 보고를 위해 사무국(대외활동 관리국)과의 연락도 내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별 뜻 없이 시작한 대외활동에서 팀장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당시 멀쩡히 활동 중이던 다른 팀에서도 제출 마감을 지키지 않는 일이 빈번했지만, 2명이 취준을 하고 1명은 외국에 있었던 우리 팀은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기지 않았다. 결국 나는 개인으로도 최우수 활동상을 받았고, 팀 전체로도 장관상을 받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하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이 활동을 통해 얻은 교훈이자 결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러한 내용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뭐라고요? 혼자 70%를 했다고? 그럼 나머지 팀원은 뭐 서포터즈나 했다는 겁니까?! 다음!" 나의 70%라는 답변이 입을 떠나 공간을 가로질러, 차마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중앙 면접관이 호통을 치며 답변을 종료해버렸다. 심지어 대외활동과 관련된 질문은 그가 한 질문도 아니었다. 분명 오른쪽 끝에 있던 다른 중년 면접관을 질문이었는데, 그 질문의 답변을 지켜보던 중앙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개입해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왼쪽 끝에 있던 외부인사는 물론, 오른쪽 끝에 있던 중년의 면접관, 그리고 그 방 안에 있던 그 어떤 다른 면접관도 그에게 토를 달지 못했다. 모두 그 중앙 면접관의 눈치만 볼뿐이었다. 그렇다. 그가 실세였던 것 같다.

 

 
나는 그의 호통에 답변을 마저 해야겠다고 생각하였고, "70%란 것은 제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팀원들이 함께..."라고 말을 이어갔지만, 그는 또다시 "아 됐습니다. 다음! 70% 같은 소릴 하고 있어"라고 말을 끊어 버렸다. 그는 비단 나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올드 루키 지원자에게도 그렇게 대했고, 대학에서 학회 회장을 맡았다던 다른 지원자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학회 회장을 했던 지원자는 본인이 학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졸업한 선배들에게 자주 조언을 구하고 초청 강연회도 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뜬금없이 중앙 면접관은 "그 선배가 뭐 하는 사람인데요?"라는 식으로 따져 물었다. 지원자는 "그 분의 직장이나 직함을 답변하면, 블라인드 면접 기준에 어긋날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라고 답했지만, 중앙 면접관은 "아 됐고, 말해보세요. 그래서 누구인데요. 뭐 하는 사람인데요"라고 말했다. 지원자는 조심스럽게 "전 국세청장님입니다..."라고 말했고, 중앙 면접관은 아차 싶었는지 "아 알겠습니다. 다음!"이라고 또다시 답변을 잘라버렸다. 지원자의 학교나 학과, 그리고 졸업시기까지도 유추해볼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중앙 면접관은 면접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전횡이 면접 전체를 점점 난도질하고 있었고, 지원자들은 모두 숨소리마저 고르며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옆 측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보조요원들은 무엇을 기록하는지 컴퓨터와 노트를 계속 만지작거렸고, 그것이 마치 우리의 자세가 흐트러지는지 감시하는 것 같아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이후에 몇 가지 질문이 나에게 더 왔던 것 같은데 크게 기억나는 질문은 없었다. 
 
마지막 질문은 내가 자소서에 적었던 베트남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교  때, 나는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베트남으로 떠나 4박 5일간 조별 과제를 진행했다. 자소서에 베트남 대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다고 적었다. 이는 사실이었고 실제로 조별 과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흥미롭고 재미있던 경험이었다.
 
나의 답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또다시 중앙 면접관이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베트남 관련 질문의 시작은 그가 아닌 다른 면접관이 던진 것이었다). "베트남 가서 무슨 말로 이야기했습니까?" 나는 분명히 자소서에 영어로 인터뷰를 했다고 적어두었다. 그는 자소서를 읽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질문을 던진 그 순간까지. "베트남 학생들도 영어를 잘해서, 저희는 영어로.." 내 대답은 또 끝을 맺지 못했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 그것이 그날 나의 마지막 답변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중앙 면접관의 질문이 뜻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다. 베트남에서 과제를 했는데 어느 나라 말로 했는지가 왜 중요한가. 영어로 했다는 내 질문에 차라리 영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라도 시켜봤다면 질문의 의도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질문은 대부분 그렇게 의도를 알 수 없었고, 자소서를 읽어보지 않은 티를 팍팍 냈다. 다른 지원자들이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자소서에 적어, 사본까지 제출했을 텐데 그는 "관련된 자격증은 딴 것이 있어요?"라고 물었고, 자격증이 있다고 말하면 "알겠습니다. 다음"이었고, 없다고 말하면 "그럼 우리가 그 내용을 어떻게 확인합니까? 다음"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추가 답변에 대한 기회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답변은 모두 끝이 났고, 중앙 면접관은 어색한 미소를 띠며 클로징 멘트를 했다. "여러분 이까지 오시느라, 면접 보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자소서를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던지는 말치고는 어색하니만큼 정형화된 따뜻한 표현이었다. 물론 말투는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모두 지친 몸을 이끌고 45도 정도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면접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모두 크게 한숨을 쉬고 땀을 닦아냈다. 옆에서 지켜보면 보조요원들 때문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고들 말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서 모두들 그제서야 한 번씩 웃었다. 올드 루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면접이 거의 처음이었고, 나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다른 면접도 이렇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을 몇 년 하다가 왔고, 처음 취업할 때 면접도 많이 봤어요. 이번 시즌에도 면접을 많이 보러 다녔고 이른바 압박 면접도 많이 경험했지만 이런 식으로 면접을 보는 곳은 처음입니다"
 
첫 취업 시즌에 이런 면접을 경험한 우리들은 모두 의기소침해 있었고, 어쨌거나 이런 면접을 처음 경험한 그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자소서도 읽어보지 않고 면접에 들어오며, 질문도 자소서를 보지 않고 던지는 면접관. 다른 사람의 질문과 답변을 끊고 자신의 감정만 토로하는 그를 그 방에 있던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고 그 고통은 오롯이 지원자들에게 돌아왔다. 허무하고 허탈했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오히려 당당하게 답변 기회를 달라고 요청을 해서라도 할 말을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버릇없이 보일까 봐, 면접에서 감점으로 작용할까 봐, 마치 약점이 잡힌 사람처럼 그저 감정을 꾹 누를 뿐이었다. 면접에서 탈락 소식을 받고 나서야 "그따위 면접에선 차라리 할 말이라도 다할걸"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어쨌거나 면접을 본 후,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면접을 보러 들어갈 때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다되어서도 여전히 시위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빨리 면접을 끝내려고 그렇게 화를 냈나?" 혼잣말을 하며 대전역으로 향했다. 차를 가져온 올드 루키는 주차장으로, 경상도로 내려가는 남자 지원자는 바로 열차를 타러 떠났다. 상행선을 타는 사람은 나와 학회 회장, 여자 지원자 셋이었다. 우리는 대전역 성심당에서 빵을 사고 몇 마디를 나누다가 같은 열차의 각기 다른 좌석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나는 이윽고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서울이었다. 창가 자리도 아니었지만, 창밖의 한강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서울역에 내려서 터덜터덜 한참을 걸었고 퇴근하던 친구를 만나 술을 진탕 먹었다. 친구는 오히려 예감이 안 좋은 면접이 결과가 좋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내가 속상한 것은 결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다. 
 
억울함, 모욕감, 허탈감. 
 
이것이 내가 지극히도 무례했던 한국철도시설공단 면접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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