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의 문제 제기 끝에 수어통역사가 무대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화자 옆이 아닌 무대 구석이었다. 조명이 가까스로 비치는 곳에서 '청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통역할 수 있었다. 무대에 수어통역사가 등장하자 비로소 청인들은 농인의 존재를 자각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고 '우리는 이런 소수자의 언어를 존중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챙겼다.
한국과 일본의 장애인은 같은 장애를 가졌지만 다르게 살아간다. 한국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하위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는, 장애인증과 같은 복지카드를 제시하면 등급에 따라 비용 감면이나 할인을 해주는 방식이다. 일본은 장애 수당을 지급한다.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도 개인이 어떤 것을 구매할지 선택할 수 있다. 이는 당사자의 위치와 자리를 결정한다.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복지카드를 내밀며 내가 진짜 장애인인지 아닌지 감별당하고 평가당하는 절차를 거친 후에 '혜택'을 받는 것과 정부로부터 장애 수당을 받아 직접 표를 사서 영화를 보는 것은 장애 당사자의 사회적 위치를 다르게 설정한다. '혜택'을 받는 한국 농인은 수어통역이 없어 기본권을 침해당해도, 차별을 당해도, 수어통역의 질이 낮아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 '권리'가 아니라 '혜택'이기 때문이다. '혜택'은 당사자로 하여금 '착한 장애인'이 되기를 요구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할인 제공을 받거나 감면받느 ㄴ것에 감사해야 한다. 서비스의 질이 낮아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 애초부터 '권리'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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