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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어렵다. 잘 모르겠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비해 너무 모호하고 흐릿한 느낌이 강한 소설이었다. 다만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느꼈다 하여, 뭔가 위로가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왜 '그리스어 시간'이 아니고 '희랍어 시간'일까. 우선 '희랍어'라는 표현이 뭔가 더 문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또 막상 '그리스어 시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면 셜록 홈즈 이야기 중 <세 학생> 이야기와 혼동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 책 속에서

 

- 의사와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단체 생활의 자극은 그녀의 침묵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더 밝고 진해진 정적이 어둑한 항아리 같은 몸을 채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붐비는 거리에서, 그녀는 마치 거대한 비눗방울 속에서 움직이듯 무게 없이 걸었다. 물 밑에서 수면 밖을 바라보는 것 같은 어른어른한 고요 속에, 차들은 굉음을 내며 달렸고 행인들의 팔꿈치는 그녀의 어깨와 팔을 날카롭게 찌르고는 사라졌다.

 

-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고막에 수천 개의 스케이트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 세상은 환幻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이라 했는데, 그 꿈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가,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가. / 보르헤스 *현암사 <화엄경 강의>

 

-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 됩니다.

 

-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트리고 싶지 않았다.

 

- 이해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 아니요. 그녀는 펜을 집어 탁자에 놓고 백지에 반듯한 글씨로 적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 가끔 생각해. 혈육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

 

- 고백하자면 말이야. 내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책을 내게 되면, 그게 꼭 점자로 제작되었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다듬어서, 끝까지 한 줄 한 줄 더듬어서 그 책을 읽어주면 좋겠어. 그건 저말 뭐랄까, 정말 그 사람과 접촉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 인간의 모든 고통과 후회, 집착과 슬픔과 나약함 들을 참과 거짓의 성근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게 한 뒤 사금 한 줌 같은 명제를 건져 올리는 논증이 과정에는 늘 위태하고 석연찮은 데가 있기 마련입니다. 대담하게 오류들을 내던지며 한 발 헌 발 좁다란 평균대 위를 나아가는 동안, 스스로 묻고 답한 명철한 문장들의 그물 사이로 시퍼런 물 같은 침묵이 일렁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계속 묻고 답합니다. 두 눈은 침묵 속에, 시시각각 물처럼 차오르는 시퍼런 정적 속에 담가둔 채. 나는 당신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연인이었을까요.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나는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어리석은 속성이 내 어리석음을 일꺠워 마침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걸까요. (...)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떄,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 타인의 감상

 

- 문장이 물을 먹은 것처럼 무겁다. 

 

- 시는 은유에 대한, 전개에 대한, 형태에 대한 무한한 자유가 있지만 소설은 서사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장르적 책임이 있다. (묵)

 

- 명확하진 않지만 멋진 문학적 경험이었다. '뭔가... 뭔가다!'라는 느낌, 좋은 글 같다는, 감동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묵)

 

- '샅'은 허벅지 안쪽이다. 우리는 연약한 부분으로, 관절을 안쪽으로 타인을 끌어안는다.

(c.f) 샅(사타구니)+바(밧줄) = 샅바

 

- 분절되지 않고 흐릿해지고 경계가 뭉개지고 모호해지는 심상(묵)

 

- 말, 언어를 잃는 것은 구분하는 법, 표현하는 법, 설명하는 법을 잃는 것과 같다. 결국 말을 잃는 것은 시야를 잃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마지막 장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두 존재가 '접촉'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접촉은 통신(언어를 통한 교류)과 다르다. 접촉은 초감을 통한 소통이다. 통신은 언어를 통한 소통으로 언어의 한계를 그대로 가진다. 통신이라는 말 자체도 통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서로 안으며 접촉하는 것은 실제로 통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마지막 장면은 언어의 한계를 접촉을 통해 극복하는 것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묵) 

 

-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각기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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