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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에세이 책을 접했다. 흔히들 말하는 밑도 끝도 없는 맥락이었다. 작년 여름, 옆 동네에 사는 친구가 고향에 다녀왔다. 본가에서 자신의 방을 정리하다가 그가 군 시절 재미있게 읽은 책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막연하게도, 갑자기 그 책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그 책을 갖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나를 만나 그 책을 건넸다.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라는 책이었다. 
 
그 친구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우리는 오랜 시간 만났지만 책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나눈 적이 없다. 그런 친구가 그런 나에게 책을 소개해준 것이 참으로 매력적인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저 '어떤 책이길래...' 하는 호기심에 책을 건네 받았다. 그리고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시간은 흘러 두어 달쯤 지났고, 여행지를 찾다가 론리 플래닛에서 그 책의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를 한 편 읽게 되었다. 작가는 우리가 여행을 계속 떠나는 이유는 첫 여행에서 느낀 자유의 순간, 설렘의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도 첫 여행을 떠난 20살의 날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작가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작가 스스로 정통 에세이라고 부르는 이 책은 그가 2년 동안 매주 블로그의 올린 글을 엮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극히도 그의 취향이 진하게 배여있으며, 스스로도 '뭐 이런 걸로 책을 내냐고 불평마시라'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농담이 진담보다 배는 많이 섞여있는 그의 글이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이 사람은 여행을 참 좋아하고 작가라는 정체성만큼은 꽉 잡고 사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은 에세이였다.
 
인생에 대해서 어떤 면에서는 달관한 사람처럼 유연하게, 본인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명확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독자를 설득시킨다. 설득이라는 단어보다 더 효과적인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여기서 말하는 설득이란 그의 말투가 교조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도 매우 잘 공감이 된다는 뜻이다.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취향에 그가 언어를 부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은 각도가 다른 그의 취향도, 나의 취향을 떠올려보거나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에세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유머와 조크로 버무린 목적이 있는 글이라고 했다. 그 목적이 즐거움을 전해주는 것일 수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에게 어떤 목적으로 이해되었는가? 이 책은 나에게 자신의 탄생 이유가 '에세이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세이의 목적이 에세이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서라니. 참으로 근사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그렇게 다가왔다. 한 인터뷰에서 기자는 저자를 '자만과 자학을 오가는 작가'라고 표현했다. 작가가 자신을 그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그 익살스러운 표현에 나는 저자의 다른 책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 책을 쓸 때 자주 들렸던 커피집이 내가 한 때 좋아하던 곳이기도 했다.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2년쯤 지났을 때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한주 전 영업을 종료했다는 안내문을 본 기억이 난다. 
 
○ 책 속에서
67쪽 - 한 편의 훌륭한 글은 잘 지은 벽돌집과도 같습니다. 잘 지은 벽돌집은 벽돌 하나만 빼면 집 전체가 와르르 무너집니다. 글 역시 단어 하나만 빼도 글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듯이 써야 합니다. - 모파상의 벽돌론
 
94쪽 -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당연히 그 지겹고 배고프고 무서웠던 대학 연극반도 졸업했다. 물론 더 이상 추운 소극장에서 초코파이를 먹고 연습을 하거나, 햇살이 창살처럼 따가운 여름날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학생과 무스를 잔뜩 바른 남학생들 사이로 땀을 뻘뻘 흘리며 무대세트를 나르지도 않는다. 당연히 연극을 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무대 위에도 없고, 객석에도 없다. 무대를 짓지도, 부수지도 않는다. 대사를 외우지도 않고, 그러므로 대사를 잊을 일도 없다. 혼내는 선배도, 기합을 주는 선배도 없다. 그러나 오늘 마감을 하고서, 밀려오는 그 그리움들은 무엇일까. 때로는 그토록 끈적끈적하고 짜증나고, 어서 씻어내 버리고 싶었던 청춘의 땀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공허함과 상실감이 지금의 비루할 만치 별 볼 일 없는 일상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연극이 끝난 후 우리가 다시 대본을 들고 소극장에 모여들었듯, 마감이 끝났지만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이 그떄의 우리를 움직였듯이, 지금의 나도 움직이고 있다. 그때도 연극은 끝났지만 우리의 생에는 무수한 연극이 남아있었듯이, 한편씩의 마감은 끝났지만, 우리 앞에 읽고 써야 할 삶은 길게 남아 있다. 
 
103쪽 -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하기 바란다.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수록, 세상엔 좋은 것들이 좀 더 생겨 날 것이다. 
 
196쪽 - 부탁을 받고 하는 일에는 삶의 색깔이 전혀 다른 영혼을 감동시킬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록음악을 크게 들은 것도, 수업시간 책상 밑에 소설을 숨겨 읽은 것도, 먼 곳까지 갈 배낭을 꾸려 삼등열차에 몸을 구겨 넣은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청탁으로 얼어붙은 한강변을 달린 것도, 스스로 마감일을 정해 매주 글을 쓴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거 참 비효율적이군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설명할 수 없는 멍청함이 지난한 일상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230쪽 - 그러나 선발투수가 컨디션이 나빠도 로테이션이 돌아오면 강판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등판을 해야 하듯, 작가라면 일단은 펜을 움직여야 한다는 심정으로 쓴다. 던지다 보면 승부욕이 생겨서 전력투구를 할 수도 있고, 쓰다보면 자존심이 상해 뇌에 최대치의 긴장감을 부여해 재미있는 글을 쓸 수도 있다. 물론, 쓰다보니 재미가 없으면, 마음을 추스르며 계속 고치며 쓴다. 초구부터 홈런을 맞고, 연이어 안타를 맞았다해서 벤치에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투수가 스스로 마운드에서 내려갈 수 없듯이, 나 역시 첫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고, 첫 문단이 별로라고 해서 곧장 노트북을 덮을 수는 없다. 두세 시간 정도는 허리를 굽히고 스트라이크 존을 노려보는 투수처럼 모니터를 응시하며 키보드와 씨름한다.
 
254쪽 - 여행을 떠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저지른 삶의 과오를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길을 모색하고, 현재 내 위치를 점검해보기 위해서, 라는 건 당연히 헛소리고,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다. 여행이 재미없다면 괜찮은 여행이라 할 수 없다. 물론 눈물 속에 지난날을 회개하고, 제 썩은 껍데기를 길 위에 놓고 왔어요,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순례'다. 그런 목적을 원한다면 본격적으로 순례나 피정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면, 그것 역시 재미로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이 깨달음에 있었다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여행은 실패일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단지 재미일 뿐이었다면, 의외로 내려앉은 깨달음은 오래도록 자리를 틀고 앉아 마음을 진동시키곤 한다. 

 

 
여행을 떠나는 두 번째 이유는 일상에 차이를 주기 위해서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보면 일상을 떠난다는 것은 비일상적인 행위인데,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보는 비일상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즉,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서 우리에게 비일상이라는 것 역시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비일상을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즉, 나의 일상이 조금 바뀌는 것이다. 예컨대 여행을 떠나기전엔 절대 맨발로 걷지 않던 사람이 맨발로 걷는다든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쳐도 계속 길을 가던 사람이 사과를 하기 시작한다든지,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든지 하는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이 쌀국수를 먹지 않았던 사람이 쌀국수를 먹기 시작했다는 사소한 차이라 해도 상관없다. 일상에 생긴 작은 차이만큼 그 사람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다. 1밀리미터의 차이라도 말이다. 
 
여행을 떠나는 세 번째 이유는 일상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다. 두뇌로는 이해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막상 부대껴 살면서, '나의 하루를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뻔한 것들인가'하는 생각에 차츰 젖는다. 현자나 성자라도 이성적으로는 인지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일 흔하게 먹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김 몇 조각 같은 것들이 시시해보이곤 한다. 단기간의 여행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는 어렵지만, 나는 장기간 여행을 하다가 내가 발로 찼던 일상이 얼마나 뼈저리게 소중했는지 새삼 절감하곤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테네의 뜨거운 햇살 아래 '김치찌개'하고 걸을 때, 미시시피에서 차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려 김치 한통을 사오곤 했을 때, 일 년 내내 영어로 리포트를 쓰고 발표하다 비로소 모국어로 글을 쓸 기회가 생겼을 떄, 내가 소홀히 했던 일상과 언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꺠닫는 것이다. 

 

 
물론, 먼 곳으로 떠나자마자 "김치찌개, 김치찌개"라고 투덜대고,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스테이크, 스테이크"하고 중얼대는 건 상당히 멍청한 짓이지만, 그 애틋한 그리움으로 인해 '비일상의 매력과 일상의 소중함을 적절히 배합하여 살아가는 묘'를 터득할 수 있다. 어째서 이런 뻔한 것들을 떠나보고 나서야 안단 말이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란 사람은 무지하여 수차례 떠나고 수차례 떠나오고 난 후에야 가까스로 이 묘를 터득했다.
 
263쪽 - (1) 매일 정해진 시간에 원고글을 쓸 것 (2) 매일 정해놓은 거리만큼 달릴 것 (3) 포만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정해진 양의 식사만 할 것 (4) 금주

 

 
264쪽 - 평소의 나라면, 숙취에 절어 무거워진 머리를 달고 다니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술을 자제한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감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기에 그것은 사라지는 맥주거품보다 훨씬 귀하고 오래가는 것이었다. 
 
277쪽 - 반면, 정말 골치 아프게 찍은 감독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영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만큼 이해와 해석이 친절한 매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상당히 골치 아프다. 간혹 어떤 이에겐 일생에 남을 책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겐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휴지 같은 소설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해석의 여백이 때로는 광야처럼 넓어서 그 안에서 금맥을 찾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즉, 소설은 소모해야 할 에너지가 많은 매체이므로 허탈함이 클 수도 있다. 반면, 그 여행이 값졌다면 그 여운은 상당히 오래간다. 어떤 작품은 영혼에 문신을 새겨 결코 그 사람의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의 다큐멘터리를 한 편 봤다 해서, 인생에서 손해를 보는 일은 별로 없다.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타국을 갔다 오고도 태연하게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곳에서 쌓인 불쾌한 감정, 감당할 수 없는 경비는 생활의 멍에가 되어 돌아온다. 반면, 그곳에서의 찌부듯한 경험, 실수마저도 남겨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참고자료로 삼는 이도 있다. 그건 전적으로 여행자의 몫이다. 물론 즐거운 여행이 삶을 더욱 기쁘게 할 것임은 길게 말 할 필요 없다. 무릇 소설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소설이란 읽을 때도, 읽고 난 후에도 좋은 삶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시간의 범위가 여생이 되기도 한다. 

 

* 2020년 1월 17일 쓰다

* 2026년 1월 3일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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