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 친구가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당신을 위한 관계심리학
COUPANG
www.coupang.com
- 1장. 그들은 태초부터 관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용과 호의의 차이 / 마음이 불편하다면 당신은 착한 것이 아니다 - 초자아의 처벌 / 악성 자기애를 가진 그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중심적인 것은 다르다 - 욕구가 자아를 앞설 때 / 나는 없고 욕구만 남았다.
나는 너에게 너일까 그것일까? 관계의 성격을 알아차리는 연습
- "기쁨을 나누면 해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이 오래되고 단순한 문구가 더 이상 사람들 가슴에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고 되려 냉소를 받는다는 것은 꽤 씁쓸한 일이다. 오히려 역설의 문장들이 진실로 와 닿을 지경이다. 그만큼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 배신의 흔적들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흉터로 남고 끝나면 다행인데 기어이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고 만다.
- '어쩔 수 없이'는 실패를 덮는 이불이다.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관계는 없다.
다시 말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100%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표현한다. 더 정확한 표현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핑계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책임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이 이런 상태라면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상대와 최대한 거리를 둔 채 마음이 확실히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라. 헝가리 속담에서 따왔다는 어느 드라마 제목이 인상적이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은 된다."우리는 도망까지는 아니어도 잠시 우물쭈물하는 시간을 갖자는 얘기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않은 만큼 그 사람을 멀리하겠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지 말고, 관계의 거리를 유연하게 조절해보는 거다.
- 배신은 없었다. 관계에 대한 착각(관계에 속은 것과 배신당한 것은 다르다)
배신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심리 치료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저에게 이럴 줄 몰랐어요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실은 느꼈던 것 같아요"로 귀결하는 패턴을 자주 본다. 심지어 처음부터 일방적인 관계로 나아갈 조짐이 보였다고도 한다. 이제야 궁금해진다. 왜 그런 촉을 느꼈음에도 넘기고 만 걸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하나의 이유로 모일 수도 있다. 나를 이용하고 나를 속이는 대상을 선택하고 또 그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축은 무엇인가. '내가 고른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다. 뼈아프지만, 무지하리만치 맹목적이다. 그간의 모든 징조와 신호와 촉을 무시해서라도 말이다. 관계를 유지하고픈 욕망 때문에 자신을 속여왔다.
- 마틴 부버가 말하는 관계, 관계란 내가 타자를 택하거나 내가 타자에게 택하여짐이 만남이라고 정의했다. 택함과 택하여짐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만남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관계 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상대를 택한 것만 본다. 하지만 이건 반쪽짜리 생각에 불과하다. 자신 역시 상대에게 택하여진 존재다. 이러한 택하여짐을 이해해야만 왜 상대가 나에게 집착하고 왜 나를 이용하려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별, 이혼, 절교와 같은 절연은 '택함과 택하여짐'간의 끊어짐이다. 마르틴 부버의 핵심 이론은 '나와 너와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로 관계를 분류한 데에 있다. 눈치챘겠지만 전자는 '너(인격)'이 대상인 반면, 후자는 '그것(사물)'이 대상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의 이중성이다.
무슨 말일까? 부버는 어떤 대상과 만나느냐에 따라 '나'가 달라진다고 본다. 나와 너에서의 '나'는 인격인 반면 나와 그것에서의 '나'는 사물을 이용하려는 주체이다. 똑같은 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격자와 이용하려는 자'라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나를 이용했어." 현대인의 상처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나는 '인격자로서의 나'로 네 앞에 섰는데, 넌 '사물을 이용하려는 자'로 내 앞에 섰으니 이 다름이 분노와 상실을 낳는 것이다.
"이용당했어!"
이 말 안에는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감' 그리고 '타인이 수시로 자신을 판단하고 가치를 매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들어 있다.
- 뭔가 불쾌하긴 한데 이 감정은 뭐지? 딱히 이용당했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 문제는 상대에게 이용을 당한 건지,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건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 명확하게 범죄임이 눈으로 보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의문에 솟구쳤다면, 우선 그 의문을 붙잡아라. 사실 여부를 떠나 마음이 불편하다는 게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상대에게 따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것은 아니다'라는 인지는 붙드는 것이 좋다. (...) 이용당한 사건과 함께 이용당하지 않은 나머지 시간에 대해서도 떠올려보자. 관계의 질, 그것의 평균을 내보는 것이다.
-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누적된다.
- 화에는 건설적인 화와 해악을 끼치는 화가 있다. 차이는 화라는 감정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화를 내는 '목적'에 있다. 화를 표현하는 이유가 관계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긍정적인 화지만 자기 욕구만 내세우는 화라면 부정적인 화다.
- 건강하게 다투는 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싸움은 가면을 벗고 날것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도록 도와준다. 상대에게 자신의 욕구를 드러낼 기회를 왜 스스로가 박탈하는가? 감정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분노라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관계를 발전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서로의 욕구가 분출되는 다툼의 시간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존심이 다칠 수 있다. 특히 현명하게 다툴 줄 아는 상대를 발굴하는 것. 이것만한 소득도 없다.
▶ 심리상담에서도 '갈등'을 관계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 자체를 적대시하고 미루면 감정의 상처만 깊어 진다. 갈등은 상호간의 차이를 인지하게 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순간이 된다.
- 관계 안에서 자기 욕구를 파악하는 좋은 방법은 글로 써보는 거예요. 상대에게 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단어나 문장으로 써보세요. 그럼 두 가지 진실을 알게 될 거예요. 글로 써보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 첫째요. 글이나 내면의 목소리가 늘 진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그 다음 진실이죠. 그런데 왜 써보라고 하냐고요? 글로 적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예요. 아주 단순한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많은 품이 필요하거든요.
- 우리는 순수한 관계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다.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만나는 건 나쁘다고, 사람을 이용하는 건 파렴치한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강요받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누군가 나를 이용해도 나또한 누군가를 이용하고 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친구 간에, 심지어 가족사이에도 이용과 이용의 양자 관계가 존재한다. 양자 간의 균형이 깨졌을 때가 문제인 것이지, 그 자체가 당장 지옥불에 떨어트려야 할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필요에 의한 관계 또한 중요해졌다.
- 피 말리는 관계의 끝에서 성장의 싹이 자라날 수 있음을 명심하자. 기억할 또 한가지는 버렸다는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정리하고 싶은 그들은 일찌감치 관계에는 관심이 없던 이들이다. 보통 관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쪽일수록 그 관계로 인해 편안함을 더 누린 경우가 많다. 가슴 아픈 것도 있겠지만 당장 자기 삶이 불편해지기에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 관계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이 많은데'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건 속물근성이 아니라 당연한 심리다. 문제는 한 사람만이 이런 특혜를 독점해온 데에 있다. 번갈아가며 관계의 이득을 누려야 하는데 받는 사람은 계속 받으려고만 하고 주는 사람은 늘 줘야만 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문제였다.
- 다치는 동안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 "제 주변에는 왜 무례한 사람만 있는 걸까요?" 지인이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갖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무례함을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자신이 무례한 태도에 대해 얼마나 덤덤하게 반응해왔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 한 번 찬찬히 생각해보길 권한다. 인간관계를 두러보았을 때 나와 너의 관계, 나와 그것의 관계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또 자신을 고민에 빠뜨린 사람이 있다면 속앓이만 하지 말고 냉정하게 그려보자. 그 사람은 나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는지, 즉 관계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이런 것도 연습하면 된다. 관계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자꾸 연습해나가면 통찰력이 생기는데 이는 자신을 지켜내는데 유용한 수단이 된다.
- 나는 늘 당해왔어. 나는 피해야자야라는 피해의식에 갇혀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관계에 영원히 다가갈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처입은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내가 늘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 나 또한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왔고 그를 이용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점. 그 일말의 여지를 열어 놓고 관계의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길 바란다.
* 2019년 10월 독서
'리뷰 > 독서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통영의 도시성장과 공간구조(김재홍) (0) | 2021.04.10 |
|---|---|
| [책 리뷰]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김명식, 건축, 도시) (0) | 2021.04.10 |
| [책 리뷰] 한국 도시 디자인 탐사(김민수) (0) | 2021.04.10 |
| [책 리뷰]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알프레드 아들러, 심리학) (0) | 2021.04.10 |
| [책 리뷰]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건축) (0) | 2021.04.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