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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학교가 점점 고층화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학교에서는 40~50분 수업을 하고 10분 쉰다. 10분 쉬는 시간에 네 개 층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운동장에서 2, 3분 시고 다시 뛰어 올라올 아이는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모두 교실에서 지낸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말이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10분 쉬는 시간 동안 잠깐만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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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낮은 천장고도 문제다.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미터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3미터 천장고에서 시험을 친 학생이 낮은 천정고의 학생에 비해 창의적 문제를 2배나 더 많이 풀었다는 연구 결과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교실 높이는 교육부에서 지정한 2.6미터로 동일하다. 필자를 비롯한 중년 이상의 분들은 마당이나 골목길 같은 천장이 없는 공간에서 많이 생활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2.4미터 높이의 아파트와 허리를 구부려야 할 만큼 낮은 1.5미터 높이의 봉고차와 2.6미터 높이의 교실과 2.5미터 높이의 상가 학원 천장에 짓눌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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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사를 여러 채로 분절시키는 계획을 이야기하자 교육부 담당자는 "모르셔서 그러는데 요즘 아이들은 특별활동 시간도 많고 이동이 많아서 비 오는 날 교실 이동 중에 비를 맞게 돼서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1층에 지붕 있는 아케이드를 만들어 우산 없이도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겨울에 추워서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층에서 실내 복도를 만들어서 연결하는 디자인을 했다. 그러자 1층 아이들이 불편해서 안된다고 하나의 건물로 모두 연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외부 공간을 접할 수 없는 쇼핑몰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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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줄은 알겠는데 우리는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어느 한 학교만 좋아지면 형평성이 깨져서 안된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사립학교에 가서 펼치시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실화다. 

 

필자는 교육감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새로운 학교 디자인을 설명하자 교육감은 크게 반겼다. 이런 시설은 신도시가 생기기 시작한 10년 전에 만들었어야지 왜 지금까지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덧붙였다. 그러자 반대하는 교육부 직원이 이런 학교 디자인은 교실 간 이동이 많은 최근 교육과정에는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옆에 있던 한 교육 담당 교사가 자신이 교육과정을 바꿔서라도 이런 학교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분은 이런 색다른 학교 공간을 원하는 교장 선생님과 교사를 따로 모집해서 운영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은 교육부 내의 시설 담당자들이었다. 이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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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학교의 변화가 힘든 이유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지금의 공립학교 건축계에서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십 년간 해 오던 관성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다. 마치 한국의 주공아파트 디자인이 항상 비슷하듯이 학교 건축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종 디자인 규제를 정해 놓는다.

 

물론 처음에는 100점 만점에 50점 이하 수준의 학교를 피하기 위해 만든 디자인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이 너무 많아져서 50점 이상 수준의 학교 디자인은 나오기 힘들게 되었다. 이게 우리나라 학교 건축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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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공평과 평등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똑같은 공간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학교 건축물을 양산하고 있다. 평등과 전체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숭고하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이들은 평등을 획일화를 통해 이루려 한다. 평등은 다양성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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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사옥(로이드 빌딩, 아모레퍼시픽 사옥)

 

금융 회사 사옥인 이 두 건물은 일반적인 고층 건물과 다르다. 일반적인 고층 건물은 가운데에 엘리베이터 코어가 있고 주변으로 난창을 통해 밖을 쳐다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건물은 공간 구성이 반대로 되어 있다. 고층 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 코어가 주변에 흩어져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비어 있는 큰 보이드 공간이 있어서 각 층은 중정이 있는 'ㅁ'자 같은 모양이다.

 

이렇게 될 경우 서로 다른 층끼리 쳐다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0층에서 일하는 직원이 자기 자리에서 아트리움 건너편의 8층부터 12층까지의 사원들과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일이 가능하다. 중앙에 있는 텅 빈 수직의 공간이 전체층을 아우르면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기 쉽다. 이처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대형 공간은 조직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

 

밥상에 둘러앉아 마주 보며 밥을 먹는 식구가 더 돈독한 가족애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로마의 콜로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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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사옥

 

일반적으로 사옥은 고밀화된 도시에 위치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고층으로 지어진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저층형 사옥도 있다. 기술력 중심의 IT 기업들의 사옥이 그렇다. (...) 건축적 관점에서 보면 높은 층에 있을수록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내려다볼 수 있어서 권력을 가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통적 기업은 꼭대기 층에 회장실을 둘 수 있는 고층형 사옥을 선호한다. 그런데 비교적 젊은 사원들로 구성된 IT 기업은 수평적 구조를 강조하고 저층형 사옥을 선호한다.

 

게다가 이들 IT 삼인방은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다. 뉴욕 맨해튼은 단단한 암반의 섬이고 땅이 제한적이어서 고층 건물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지진이 많고 땅이 남아도는 사막지대여서 고층의 고밀도 도시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LA는 계란 프라이처럼 퍼져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러시아워 교통대란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진이 많은 사막지대라는 배경과 젊은 벤처기업이라는 조직 문화는 수평형 사옥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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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같은 관계망을 어려운 말로 '리좀'이라고 부른다. 감자나 고무가 같은 식물의 뿌리 모양을 지칭하는 말인데 골목길 망처럼 여러 갈래로 엮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여러 개의 방이 위계 없이 흩어져 있는 가나자와 미술관의 모습은 여러 명의 MC들이 사회를 보는 라디오 스타나 많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어벤져스 같다. 이 미술관은 사나SANNA라는 건축설계 사무소가 디자인했다. 이들의 다른 작품인 일본 도쿄의 모리야마 하우스의 평면과 독일 에센에 있는 졸페라인 경영 디자인 학교에선 창문 모양에서도 탈중심의 구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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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걸어서 가는 것이 중요한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경험은 연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골목길의 옆집 친구 집에 갈 때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의 친구에게 갈 때의 느낌은 다르다. 우리 중 누구도 우울한데 엘레베이터나 타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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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심 속에는 정주할 공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녹지 공원은 경사져 있다는 점이다. 경사졌다는 것은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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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

 

자율 주행이 실현되면 정말로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택시처럼 빌려 타게 될까? 자가용을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자가용은 이동 수단 외에도 사적인 공간으로 이해되기도 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비싼 지금 젊은이들은 집을 사기 전에 자동차부터 산다.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자가용은 가장 효율적인 안식처가 된다. 자가용은 이동 가능한 내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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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계단실

 

툇마루는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신발을 신지 않고 외부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곳이다. (...) 툇마루는 신발을 벗었지만 동시에 바깥 공기에 접하는 공간이다. 내부와 외부 두 가지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현대 도시에서 이 사이 공간의 역할은 발코니가 한다. (...)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발코니 확장법 때문에 발코니가 멸종됐다. 그래서 더 이상 건물의 표정이 없다. 마스크를 쓴 사람 얼굴 같은 유리창만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간단한 방법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대한의 공간 확보를 위해서 발코니의 실내화가 불가피하다면 저층 근린생활 건물의 경우 계단실이라도 벽 없이 개방시킬 것을 제안해 본다. 빌딩이 상자같이 답답한 이유는 정문으로 들어가면 건물의 어느 부분도 거리와 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계단실을 개방한다면 사람이 계단 위에 앉아 바람 쐬며 쉴 수도 있고 계단창이 발코니나 테라스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계단 위 사람들의 모습 덕분에 비로소 건물은 거리와 소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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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대신 선으로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5층짜리 상가를 분해해서 거리에 길게 늘어선 단층짜리 연도형 가게를 배치해야 한다. 연도형 가게들은 거리에 활기를 주고 사람들을 걷게 만들어 도시를 살리는 '무기' 중 하나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가게들을 상가라는 한 '점'에 모아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한 점에서 다른 점인 상가건물로 이동한다. 이렇듯 대형 아파트 상가 건물은 도시를 점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점이 아닌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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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대화

 

도시에서는 신축도 많이 일어나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기능에 따라 기존 건물에 더해 증축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기존 컨텍스트를 얼마나 존중했느냐는 명제다. 동대문 DDP나 서울 시청 신청사가 들어섰을 때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주변 콘텍스트에 맞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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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벽돌과 그 이후

 

로마가 유럽을 정복하고 오랫동안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제국이 된 비밀은 벽돌과 아치에 있다. 벽돌은 점토를 틀에 넣고 찍은 다음 건조시키거나 구워서 만드는 건축 자재다. 재료가 흙이기 때문에 대리석이나 목재와 달리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로마는 아프리카부터 유럽까지 다양한 기후대에서 벽돌이라는 재료와 아치라는 건축 구조를 사용해 로마 스타일의 대형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통일된 디자인의 대형 벽돌 건축물들은 로마의 상징이 되어 어느 곳에서나 로마제국의 권력을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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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는 이런 역사적 축의 원조격인 도시다. 루브르 박물관(과거 궁전) - 콩코르드 광장 -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축은 파리의 척추가 되는 중심공간이다. 그리고 이축은 계속 연장되어 신도시인 라데팡스까지 이어져 있다. 라데팡스에 가면 그랑드 아르슈라는 개선문처럼 생긴 건축물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마치 예전의 황제처럼 누구나 역사적 축의 선상에 설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가 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민주적 도시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정치 집회를 할 때 주로 광화문 광장에 모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 중심축은 이순신 동상 - 세종대왕 동상 -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축선상의 중심 공간이 광화문 광장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집회는 단순히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는 의미를 떠나 권력의 중심축을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행위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 시위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내 반전 시위나 마틴 루터킹의 정치 집회도 워싱턴 DC의 역사적 축인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비 사이에 위치한 넓은 공간에서 열렸다.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이러한 중요한 축의 선상에 위치한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권력의 장악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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