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줄거리
일본으로 파견된 페레이라 신부가 나가사키에 배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신앙심이 깊고 신자들을 사랑하여 추방령에도 자진하여 일본에 남았던 성직자였다.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였던 로드리고, 마르타, 가르페는 이 그가 배교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순교를 했다면 모를까,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는 유럽 전체 신앙의 패배처럼 느껴졌다. 이들 셋은 포르투갈에서 출발하여 희망봉, 인도 고아, 마카오를 거쳐 일본으로 잠입을 계획한다.
그 과정에서 병에 걸린 마르타는 일본으로 가지 못하고 로드리고와 가르페만 일본행 바에 오른다. 마카오에서 만난 빌리냐뇨 신부는 일본 선교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로드리고는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인 '기치치로'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부락에서의 은신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가르페는 히라도 섬으로, 로드리고는 또 다른 부락으로 떠난다. 정처 없이 떠돌던 로드리고는 폐허가 된 부락들을 거쳐 산을 넘어가다 다시 기치치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기치치로는 로드리고를 관리에게 신고하여 포상금을 받고는 자취를 감춘다. (마른 물고기와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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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는 잔혹한 성정으로 악명이 자자한 현지 책임자 이노우에 앞으로 끌려간다. 예상과는다르게 온화한 인상이었지만 그의 취조는 집요했다. 일본 관리들은 성화만 밟으면 풀어주겠다고 로드리고를 설득한다. 마음까지 배교하란 것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감옥에 찾아와 고해를 요청했던 기치치로는 수감된 후 다시 성화를 밟고 감옥을 나간다. 수감된 상태에서 수많은 농민 신자들의 순교를 본 로드리고는 고민에 빠진다. 순교가 바보스러운 일이 아닐지 우려하기 시작한다. 집요한 이노우에는 빌라도 총독 같았고, 몇 번이고 나타났다가 배교, 배신하기를 반복하는 이치치로는 유다 같았다. 그리고 로드리고는 감옥 밖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가 사실은 신자들의 신음소리임을 알고는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 소설의 배경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보다 조금 앞서 일본은 시마바라의 난을 겪었다. 시마바라는 현재의 나가사키현에 속해있는 지역이다. 이곳을 근거로 천주교 박해와 세금정책에 반대한 민중 봉기가 발생한 것이다. 막부는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했음에도 진압에 무려 4개월이 걸렸다. 이 사건 이후로 막부의 천주교 탄압은 더욱 가혹해진다.
○ 좋았던 점
-. 묘사가 탁월하다. 특히 독백으로 전개되는 로드리고의 고뇌와 번민(심리묘사),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과 풍경 묘사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이 소설이 20세기가 아니라 17세기에 쓰인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 성직자의 입장에서 (소설 속) 현재에 겪는 고통을 오래 전 로마시대의 박해와 연계하여 생각하고, 인내하고, 생각하려는 모습이 나온다. 작가가 종교적인 고민을 깊은 단계까지 하지 않았다면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성직자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을 가장 고통스럽게 여긴다는 사실 또한 고민 없이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처음에 로드리고는 기치치로를 보며 유다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박해를 받는 예수라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치치로가 유다와 같지 않음을, 그리고 기치치로와 자신을 구분하거나 선악의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과정, 내려놓는 과정이 감명 깊었다. 종교적 깨달음을 통해 용서와 자기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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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 당시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세계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은 나라에서 페레이라가 배교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신앙과 사상 면에서 굴욕적인 패배처럼 생각되었다.
-. 가르페와 마르타 그리고 로드리고 등 세 명에게는, 자신들의 은사인 페레이라 신부가 눈부신 순교를 했다면 몰라도 이교도 앞에서 개처럼 굴종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 놀랍게도 그(기치치로)는 히젠 지방의 구라사키 마을에서 스물 네 명의 신도들이 영주에 의해 수형에 처해지는 광경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수형이란 바닷속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리스도인들을 거기에다 묶어 두는 것을 말합니다. 만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게 되어 죄수는 점차 지쳐 버립니다. 그런 상태로 약 일주일쯤 두면 죄수는 고통 끝에 모두 죽게 됩니다. 이처럼 잔인한 방법을 로마시대의 네로라고 해서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요.
-. "우리도 언젠가는 페레이라 신부처럼 붙잡히게 되는 걸까?"라고 묻자 가르페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런 일 보다는 등을 기어가고 있는 이한테 더 관심이 있다네."
-. 기치치로는 아직도 눈물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 기치치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박해가 시작되고 오늘까지 20년, 여기 어두운 일본의 땅에 많은 신도들의 신음이 가득 차고 사제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붕괴되어 가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보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기치치로의 어리석은 원망에 그러한 물음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 참배하자, 참배하자 파라이주의 궁전으로 가자. (...) 고통스럽기 떄문에 오로지 천국의 궁전을 의지하며 살아온 농민들. 그런 슬픔이 이 노래에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죽은 오늘도 여전히 바다는 어둡고 단조롭기만 한 소리를 내면서 철썩이고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뿐입니다.
-. 저는 가르페와 산에 숨어 있던 무렵, 밤에 가끔 들었던 파도의 울부짖음을 문득 마음에 되새겨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었던 음울하고 북치는 듯한 파도소리. 밤새도록 아무 의미도 없이 부딪쳐 왔다가는 물러가고 물러갔다가는 다시 부딪쳐 오던 소리. 그 바다의 파도는, 모키치와 이치소우의 시체를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씻어 내리고, 삼켜 버리고, 그들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그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바다와 똑같이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다.
-. 배교자는 자신의 비참함과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동료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과 같은 운명 속으로 끌어넣으려고 합니다.
-. 예루살렘의 밤, 한 사나이의 운명에 아무 관심도 없이 불에 손만 쬐고 있던 몇 사람의 모습. 그들처럼 이 파수꾼들도, 인간이란 이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그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지껄이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도둑질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그런 것이 죄가 아니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 "아무것도 없어요." 마을은 불타 버리고 그때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추방당했다고 했다. 배에 파도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외에는 바다도 육지도 죽은 듯이 고요했다. '당신은 어째서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까?'라고, 하나님의 침묵을 원망하며 신부가 연약한 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당신을 위해 만든 마을조차 불타 버리도록 당신은 방관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사람들이 추방당할 때도 당신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지 않고 이 어둠처럼 다만 침묵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왜, 어째서? 왜인지 그 이유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는 당신이 시련을 주기 위해 악창에 걸리게 했던 욥처럼 강한 인간이 못 됩니다. 욥은 성자입니다만 신도들은 가난하고 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상의 고통을 이제 더는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신부는 기도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어둡고 차디차게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 신부는 창살을 꽉 붙잡은 채 떨고 있었다. 그가 혼란에 빠진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 떄문만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뜰 안의 정적과 매미 소리와 파리의 날개 소리였다. 한 인간이 무참히 죽었는데도 바깥세상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전과 다름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바보스러운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이 순교란 말인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왜 당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저 애꾸눈 농민이 오로지 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정적이, 이런 고요가 계속되는가? (...) 이런 어리석고 참혹한 일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그분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 기도란 당신을 찬양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오래오래 믿어 왔지만, 그러나이런 때 당신을 향한 기도는 마치 저주를 위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비웃음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이윽고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도 여전히 바깥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가. (...)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인가.
-. 모래처럼 조용히 흘러가는 이곳에서의 매일이, 강철처럼 긴장된 기분을 조금식 좀먹어 간다.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일처럼 그렇게도 기다리고 있던 고문이나 육체적 고통도 자기에게는 이미 가해질 것 같지 않은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관리나 파수꾼도 관대하고, 살집이 좋은 얼굴을 한 부교오奉行는 즐거운 듯이 히라도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이 따뜻한 물과 같은 안이함을 한번 맛본 이상, 다시금 이전과 같이 산중을 방황해야 한다거나 산속 움막에 몸을 숨겨야 한다면 더 커다란 이중의 각오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관리나 부교오가 거의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거미가 거미줄에 걸리는 먹이를 기다리듯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자신의 이러한 안이해진 기분이었음을 신부는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 (신도들이 바다에 떠밀려 죽는 장면) 가르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바다를 향해양손을 들고 뛰어들었다. 물방울을 튀기면서작은 배로 다가갔다. 헤엄치면서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기도를 ······ 들어주십시오." 비명인지 노호(怒號)인지 알 수 없는 그 소리는 검은 머리가 파도 사이에 잠겨 버림과 동시에 사라졌다. (...) "신부, 당신 때문에 말이오, 당신이 이 나라에 당신 멋대로 자기 꿈을 억지로 실현시키려 해서, 그 꿈 떄문에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괴로움에 빠졌는지 생각해 봤소? 보시오, 피가 또 흘렀소. 아무것도 모르는 저 사람들의 피가 또 흘렀단 말이오." 그리고 나서 뱉어 버리듯이 말했다. "가르페는 여전히 깨끗했고. 허나 당신은 말이오. 당신은 제일 비겁자요. 신부란 이름조차 아깝소."
-. 페레이라는 그에게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통역이나 승려에게도 들려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납득하기 위해 강한 어조로 열심히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그러는 동안 신부는 슬픈듯이 눈을 껌벅이면서 페레이라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 인간들을 위해 유익하게 소용된다는 것은 성직자들의 단 한 가지 염원이며 꿈이다. 신부들의 고독이란 자신이 타인을 위해 무익할 때다. (...) 마치 미치광이 여자가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듯이 페레이라는 자신이 남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존재이고 싶다는 옛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신부는 그때 페레이라의 비애를 깨달았다. 페레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일본의 가난한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을 의식적으로 피하려고까지 했다. (...) 페레이라가 그 자신과 같은 나약한 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려고 한 것은 고독과 나약함을 서로 나누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는 자기 자신을 배신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까지도 그 안으로 끌어넣으려고 했다. 주여, 당신은 그를 구원하지 않는 것입니까? 유다를 향해 당신은 말했습니다. "가라, 가서 너희가 이룰 일을 이루어라." 버림받은 무리들 속에 당신은 그 늙은이까지 넣을 셈입니까? 이와 같이 페레이라의 고독과 자신의 적막함을 비교했을 때, 신부는 비로소 자존심이 만족되어 미소 지을 수가 있었다.
-. (기치치로) "신부님,용서해 주십시오.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그곳에서부터 이렇게 뒤쫓아 왔어요. 용서해 주세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약해요. 마음이 약한 자는 순교조차 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아, 왜 내가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나요?"
그 목소리는 바람이 그치듯 끊겼다가 다시 멀어졌다. 갑자기 눈 앞에 고토에 돌아왔을 때 신도들에게 환영받던 기치지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해를 받는 시대가 아니면 저 남자도 명랑하고 익살스러운 가톨릭 신도로서 일생을 보냈을 것임에 틀림없다. (...) 신부는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개의 비명 같은 그 소리를 참았다.
-. 신부는 고개를 저으며 깊은 숨을 내뿜었다. 최후의 재판 시간은 이윽고 다가온다. (...) "오늘 밤 너는 반드시 배교할 것이다"라고 통역은 자신 있게 말했다. 마치 베드로를 향해 그분이 말한 것처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새벽은 아직 멀고 닭이 울 시간은 아니다.
코 고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 "저것은 코 고는 소리가 아니오. 구멍 매달리 고문을 받고 있는 신도들이 내는 신음소리요."
-. 페레이라는 마치 포효하듯 외쳤다. "내가 배교한 것은 말이야. 듣고 있나? 들어주게나. 그 뒤, 여기 구덩이에 넣어진 뒤 들렸던 저 소리에, 하나님이 무엇 하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 자네는 그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 소중하겠지. 적어도 자기 자신의 구원이 중요한 것일 테지. 자네가 배교하겠다고 말하면 저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있어. 고통에서 구원받는 거지. 그런데 자네는 배교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자네는 그들을 위해 교회를 배반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야. 나처럼 교회의 오점이 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지."
페레이라는 순간 침묵을 지켰지만 곧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거야!"
(...)
신부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빗장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벗겨진 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하얀 아침 햇살이 흘러 들어왔다. "자,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가장 괴로운 사랑의 행위를 하는 거야."
페레이라가 신부의 어깨를 부드럽게 손을 얹고 말했다.
-. 나는 배교했다. 그러나 주여,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당신만은 아십니다. (...) 하지만 자칫, 그 사랑의 행위를 구실로 저의 나약함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모두를 저는 인정합니다. 이제 제 모든 약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 기치지로와 제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다도 저는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과 제 주님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신부는 모르겠지만 고토나 기쓰키에는 아직도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 농민들이 많이 남아 있소. 그러나 관헌에서는 이제 체포할 생각이 없소. (...) 그들은 이미 뿌리가 잘렸기 때문이야. (...) 뿌리가 잘리면 줄기도 잎도 썩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 그 증거로 고토나 기쓰키의 농민들이 몰래 받들고 있는 하나님은 가톨릭교의 하나님과 비슷해도 사실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질되어 있소. (...) 결국 신부들이 가져온 가톨릭이라는 묘목은 그 뿌리부터 썩어서 정체를 알 수 없게 되어 가겠지."
-.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하 ㄴ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 성직자들은 이 모독의 행위를 격렬하게 질책할 테지만,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은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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