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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소설이 아니라 마치 긴 시 같다. 대화보다는 긴 독백이 장면들을 그렸다 지웠다 반복한다.

-. 꿈이라는 장치나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기 힘든 표현 방법이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나에겐 낯선 기법의 소설이라 다소 거리감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매우 잘 쓴 소설이라는 느낌이 그 낯섦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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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바다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절벽처럼 일어선 파도가 해안을 덮치는 대신 힘차게 뒤로 밀려나갔다. 수평선을 향해 현무암 사막이 펼쳐졌다. 거대한 무덤 같은 바닷속 오름들이 검게 젖어 번쩍였다. 함께 쓸려가지 못한 수만 마리 물고기들이 비늘을 빛내며 뒤척였다. 

 

-. 밤마다 악몽이 내 생명을 도굴해간 걸 말이야. 

 

-.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성글다: 물건 사이의 거리가 뜨다)

-.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우듬지: 나무줄기의 꼭대기)

-.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 압도적인 성량으로 끊임없이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던 여름이 갔다. 더 이상 매 순간 땀 흘리지 않아도 된다.

-. 세계와 나 사이에 소슬한 경계가 생긴다. (*가을 날씨를 언급하며 나온 표현)

-. 전세 보증금을 '헐어썼다.'

-.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 처음에는 새들이라고 생각했다. 흰 깃털을 가진 수만 마리의 새들이 수평선에 바싹 붙어 날고 있다고. 하지만 새가 아니다. 먼바다 위의 눈구름을 강풍이 잠시 흩어놓은 것이다.

-. 끝없이 펼쳐지던 하얀 페이지들이 한 장씩 도로 접어가듯 이제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지하철역 쪽으로 걷고 있었다. 부리가 젖은 운동화 속 발가락들이 시렸다. 파카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주먹들이 딱딱하게 얼었다.

-. 그 후로 엄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야기는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눈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것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래야지.....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맺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 없이 사라진다.

-. 수만 송이의 함박눈이 내 목소리를 빨아들여 지우는 것 같다. 트럭에 시동 걸리는 소리가 눈의 정적 속으로 둔하게 번진다. 텅 빈 도로로 트럭이 후진한다. 운전석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든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트럭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는다.

-. 하나의 꿈이 사그라들기 무섭게 다른 꿈이 송곳처럼 찌르며 들어온다.

-. 한 단어씩 혀끝으로 정적을 밀어내듯 그녀가 대답한다.

-. 무서운 악력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엄마는 말했어. 구해 줍서. 해가 저물면 엄마는 더 깊은 혼란에 빠져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어. 바깥이 얼마나 춥든, 걸친 옷이 얼마나 얇든 상관하지 않았어.

-. 하지만 내가 까서 준 귤을 받아 들면, 평생 새겨진 습관대로 반으로 갈라 큰 쪽을 나에게 건네며 가만히 웃었어. 그럴 때면 심장이 벌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아이를 낳아 기르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 그 아이들을 생각하다 집을 나선 밤이었어. 태풍이 올 리 없는 10월이었는데 돌풍이 숲을 지나가고 있었어. 달을 삼켰다 뱉으며 구름들이 달리고, 별들이 쏟아질 듯 무더기로 빛나고, 모든 나무들이 뽑힐 듯 몸부림쳤어.

 

-.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꺠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 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 그 어린것이 집까지 기어오멍 무신 생각을 해시크냐? 어멍 아방은 숨 끊어져그네 옆에 누웡이신디 캄캄한 보리왓에서 집까지 올 적에난, 심부름 간 언니들이 돌아올 걸 생각해실 거 아니라? 언니들이 저를 구해줄 거라 생각해실 거 아니라? 

 

-. 소리가 그칠 때까지 우리는 입을 열지 않는다. 물살이 잦아들듯 소리가 희미해진다. 차츰 음량이 낮아져 휘발하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속삭이다 말고 문득 잠든 사람의 얼굴처럼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 어둠에 잠긴 유리창을 올려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물속의 적막 같다. 창을 열면 검은 물살이 쏟아져 덮칠 것 같다. 

 

 

-. 호송차 여러 대에 올라타기 시작하는데 줄 뒤쪽에서 젊은 여자가 아니메, 아니메,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굶주려 그랬는지, 무슨 병을 앓았는지 배에서 숨이 끊어진 젖먹이를 젖은 부두에 놓고 가라고 경찰이 명령한 겁니다. 그렇게 못한다고 여자가 몸부림을 치는데, 경찰 둘이 강보째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여자를 앞으로 끌고 가 호송차에 실었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그 말 못 할 고문당한 것보다..... 억울한 징역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 줄 맞춰 걷던 천 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 

 

내려가고 있다. 수면에서 굴절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중력이 물의 부력을 이기는 임계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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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들의 말

 

-. 작가 한강은 이 소설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 작중 인물 인선의 모친은 실종된 오빠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대구교도소에서 진주교도소로 이감된 날짜를 기일로 삼자고 하였으나 그녀는 끝까지 찾기로 결심했다.

-.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고립된 장소(눈으로 고립된 인선의 집) 속 누가(경하, 인선)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이 역시 제주 4.3 사건에 대한 비유로 보인다.

-. 김중혁 작가는 한강 작가의 전작 <소년이 온다>를 리뷰하며, 그 책은 사건에 대한 중건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증언이라고 했다.

-. 김중혁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강 작가의 글은 눈처럼 내린다. 어떤 건 녹아 없어지고 어떤 것은 쌓인다. 그런데 쌓인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적신다."

-.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글과 이야기가 어떤 무게를 갖고 한 곳으로 조용히 떨어진다(천천히 쏟아진다는)는 느낌을 받았는데, 김중혁 작가의 리뷰를 보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아 좋았다. (마치 스노볼링 효과처럼. 처음에는 살살 밀면서 길을 따라가다가 절벽에서 톡, 하고 밀어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끝도 없이 떨어지며 몰입하는 느낌이 들었다.)

-. 이동진 평론가는 "한강 작가의 글은 읽는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책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글의 촉감이 생생해서 마치 점자로 책을 읽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유튜브 <일당백>의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 내용

1) 이야기 속 눈은 녹아 없어지지만 잃어버린 오빠와 작별하지 않는다. 역사도 눈과 마찬가지로 녹아 없어지고, 사라지고, 허무하게 끝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와 작별하지 않는다.

2) 이야기 속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악몽을 쫓으려 실톱을 이불 밑에 넣고 잤다.

3) 뺨에 눈이 내렸는데 녹지 않은 것을 보고 죽은 사람임을 알아차렸던 기억

4) 눈이 내릴 때 결정 사이의 빈 공간이 소리를 흡수한다. 그래서 눈이 내릴 때는 조용하다.

5)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게 너무 힘든 과정이다. 마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듯

6) 이야기 속에서 인선과 경하는 망부석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해진다. 돌아버리면 굳어버리는 망부석 설화에서 사람들은 돌로 변해 그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선과 경하는 굳어버린 몸은 허물에 불과한 것이고 영혼이든 다른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둘은 이 독특한 해석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일당백에서는 이렇게 덧붙인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뒤를 돌아볼 때 우리는 인간이 된다."

7) 이야기 속에서 오빠는 실종되었고(당시에는 달리기를 잘해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8살짜리 여동생이 없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었다. 친척 집으로 데려가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피를 먹였다. 알고 보니 오빠는 산으로 도망간 상태였고, 귀순하였다가 7년형을 받고 대구 형무소에 투옥된다. 편지도 주고받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다. 엄마는 훗날 이모와 함께 54년 5월 대구 형무소를 찾아갔으나 진주 형무수로 이감되었다는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 소식을 알지 못한다.

8) 대구 형무소 재소자들이 전쟁 통에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학살당한 것을 알게 되고 엄마는 그때부터 관련 기사를 모으게 된다. (약 3500명이 학살당함). 수소문 끝에 갱도에서 도망친 청년 한 명이 있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엄마는 그때부터 오빠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행방을 쫓으며, 한편으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으니 어디선가 숨어살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게 된다.

인선의 아버지 역시 4.3 사건으로 대구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부산으로 이감되었고,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학살이 멈춘 덕에 15년 형기를 채우고 고향 제주도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에게 오빠의 소식을 물어보다 인연이 닿아 결혼하게 된 것이다.

9) 진정한 애도를 하려면 기억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위로의 말을 건넬 때 겉돈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고인에 대한 기억이 없을 때다. 따라서 애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 한다.

* 책 속에서 상처 부위를 찔러 피를 내야만 신경이 죽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이치.

10) 소설 파친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역사가 우리를 망치더라도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일맥상통한 주제를 다룬다. 이야기를 통해서 회복, 복원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책 속에서 /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 그밖에 / 일본에서도 출판되었으며 이때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제주도와 오키나와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고 본 작품에서 나온 제주도 방언을 오키나와 어로 번역했다.

○ 4.3에 대하여

-. 일반론: 미군 철수를 앞두고 있던 미군정이 반공 기조를 다져놓기 위하여 과잉 진압을 했다. 미군 역시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고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수습 능력이 부족했고, 서청 등의 학살을 방치하고 말았다.

-. 음모론: 아시아 지역에서 추후에 이런 좌익 활동이 번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 추후 대응정도를 대비하기 위한 테스트 성격으로 4.3 강경진압작전을 펼친 것이다.

-. 통계: 정부 추산으로는 1.4만 명이 죽었다. 실제 좌익 공비는 500명 내외로 집계하고 있다. 정부 추산에 포함되지 않는 희생자를 포함하여 대략 2만에서 3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 제주 인구가 30만 명 내외였다.

-. 그밖에: 4.3이 법정 기념일이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고, 그 이후 공식적으로 추모행사를 열 수 있었다.

(참고) 서사시 <한라산>

(참고)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일당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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