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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 한채(터키의 옛 노래)



-  (...) 그것도 내가 외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하자면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런 생활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  내 자신 속에서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뭔가 한 가지 보람 있는 일을 남기고 싶었다.



-  소설 후기에도 썼듯이 나는 <상실의 시대>를 그리스에서 쓰기 시작하여 시칠리아를 거친 후 로마에서 완성했다.



-  그래서인지 내게는 이 두 권의 소설에는 숙명적으로 이국의 잔영이 배어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국적인 마을에서 우리(즉, 나와 아내)는 철저하게 고독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었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친구를 만들거나 사람을 사귀기에는 부족한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입장은 모든 의미에서 매우 어중간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볼 것만 보고 그대로 지나쳐 가는 관광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활의 터전을 일구어 갈 사람도 아니었다. 또한 우리는 어떤 회사나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굳이 표현하자면 상주하는 여행자였다.

 

- 정신적 탈바꿈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흔 살이란 분수령을 넘음으로써, 다시 말해서 한 단계 더 나이를 먹음으로써,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에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것은 예감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지날 무렵부터 그 예감은 나의 몸속에서 조금씩 부풀어 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오기 전에, 즉 내 자신 속에서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뭔가 한 가지 보람 있는 일을 남기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종류의 소설은 쓰지 않을 것이다(쓸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할 만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 

 

 

 
-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화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 가는 정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을 자기 존재의 수준기水準器(지면에 대한 각도를 측정하여 수평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 그렇게 사용해 나가는 것이다.

- 계속 쓴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유럽을 방랑하던 나와 방랑하기 이전의 나는 이 일본어 글을 매개체로 하여 마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문장을 써나가는 상주적 여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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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카나리 씨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 끔찍한 지하방에서도 인내하며 산 것이다.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다.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거기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대개의 경우 참을 수가 있다. 

 



- 나는 드디어 마흔 살이 되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마흔 살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날을 경계로 갑자기 늙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좀 묘하다는 느낌만이 아주 조금 있을 뿐이다.



- 이런 말을 하면 안 믿을지 모르지만 이탈리아의 자동차에는 표정이 있다. 아무튼 타고 있는 운전자만큼이나 표정이 풍부하다. 그래서 주차 공간을 발견하면 운전자와 함께 자동차도 싱긋 미소 짓는다. 그러나 그 공간을 간발의 차이로 다른 차에게 빼앗기면 자동차도 덩달아 낙담한다.



- 딱 한 번 콜라 디 리엔초 거리에서 이중주차 때문에 차를 빼내지 못하고 20분 정도 기다린 젊은 여자가, 휘파람을 불며 나타난 상대 남자에게 몹시 화를 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러자 남자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이중주차는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하지만 당신의 그 말투도 나 못지않게 나쁘다고."

재미있는 나라다. 싫증이 나지 않는다.



-  나는 지금까지 늘 여름에 그리스에 왔었다. 여름의 그리스밖에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겨울의 그리스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현실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실제 이상으로 강렬하게 추위를 느끼게 된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싸늘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우리의 존재를 불안하게 한다.



-  여성은 화를 내고 싶은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내고 싶으니까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화내고 싶을 때 제대로 화를 내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된다.



- 안타깝게도 한 번 왔던 사람에게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어중간하게 개발되어 소박함은 사라지고, 그렇다고 세련되지도 않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로도스에는 한 번 갔으니까 이제 더 이상 갈 필요 없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도 관광산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관광산업에 제대로 자본을 투자하면 반드시 그만큼 되돌아온다는 것을 다른 국가에서도 깨닫기 시작한 것이죠. 더구나 외화가 현금으로 들어오니까요. 터키나 튀니지,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일단 물가가 쌉니다. 옛날에는 그리스도 물가가 싸다는 이유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였습니다만, 최근에는 그렇지도 않아요. 싸다는 점에서 그런 관광 후진국들에게 우리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습니다. 특히 독일인들이 그런 쪽에 민감한 경향이 있습니다. 


(...)


관광은 정말로 힘든 사업입니다. 경쟁도 심해졌지만 그뿐 아니라 조그만 일에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을 겨냥한 테러가 있다고 하면 미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기는 겁니다. 전염병이 돌아도, 지진이 있어도 정세가 불안정해도 손님은 오지 않습니다. 바다가 오염되면 아무도 수영하러 오지 않습니다. (...)


당신들은 그리스는 관광자원이 풍부하니가 관광에 중점을 두어 나라를 발전시키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가를 그런 식으로 만들면 매우 위험합니다.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소한 우발적인 상황변화에도 국가 재정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안정된 국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스인 스파누디스 씨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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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다 힘들다 해도 사람을 부리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습니다, 하고 스파누디스 씨는 말한다. 호텔 경영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정말 진지한 사람들이다. 특히 지식층의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해서 점점 어두운 세계로 빠져들어 버리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진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현실적으로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그들은 분열적으로 암울해져 가는 것 같다. 이탈리아인들처럼 무턱대고 자신에게 편한 것만 생각하며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가자, 는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은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조르바도 언뜻 보기에 마음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꽤 철학적이다. 



-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대중 술집에 가는 사람이 있듯이,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여자와 자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달린다. 달릴 때의 느낌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시실리에서 로마로 中)



-  그리스의 주부가 쓰레기 버리는 시간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섬의 고양이 숫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3분의 1로 격감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으므로 그리스는 고양이들로 넘쳐 나고 있다. 어느 동네를 걸어도, 어느 골목길을 지나도, 어느 계단을 올려다보아도, 어느 타베르나에 들어가도, 어느 모퉁이를 돌아도, 고양이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마디로 말해 온통 고양이 투성이다.



-  내가 살고 있는 스펫체스 섬 근처에 이드라라는 섬이 있다. 이드라는 원데이 크루즈 선이 매일 몇 척씩 오가며 관광객을 우르르 내려놓는 아주 인기 있는 섬이다. 이 섬에도 역시 고양이가 많다. 그런데 이드라의 고양이들과 스펫체스의 고양이를 비교해 보면, 그 성격이나 생활상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우선, 한눈에 알 수 있는 사항인데, 이드라의 고양이는 아름답다. 털도 매끈매끈 윤기가 흐르고, 상처 입은 고양이도 거의 볼 수 없다. 사람을 잘 따르며 겁을 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별로 뻔뻔스럽지도 않다. 항구 근처의 타베르나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테이블 주위로 고양이가 대여섯 마리 모여든다.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남은 음식을 조금만 주세요. 조금이면 된답니다"라는 분위기로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부르면 꼬리를 세우고 다가오고, 쓰다듬어 주면 크릉크릉 거린다. 매우 느낌이 좋다.

 

 

 

- 하루키 섬은 에게 해의 터키 연안을 따라서 펼쳐지는 도데카네스 군도의 열세 개 섬 중 하나다. 도데카네스란 그리스어로 '열두 개의 섬'이란 뜻인데, 이 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 전부 열세 개 있다. 영어에서는 13이라는 숫자를 싫어해서 열세 개쨰인 것을 '빵집의 덤Baker's dozen'이라고 하는데 이 도데카네스가 바로 그런 것이다. 열세 개째에 해당하는 것이 카스텔리초라는 섬으로, 이 섬은 다른 열두 개 섬이 동맹을 결성하여 대터키 독립전쟁에 나설 때 조금 늦게 열두 개 섬 동맹에 가담했기 때문에, 혼자만 빵집의 덤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잘 들어보니까 스퐁고란 해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스펀지다. 이 주변의 섬 주민들은 대부분 해면 채취 전문가로서, 이것이 예전에는 상당히 큰 돈벌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 스펀지가 생기고 해면이 옛날만큼 채취되지도 않아 생활이 곤란해지자, 모두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고 한다. 플로리다에 타폰 스프링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하루키 섬 출신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섬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한 해면 채취 전문가인 것이다. 

 

 

 

- 이 섬도 로도스와 마찬가지로 무솔리니 시대에 약 30년간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이·터 전쟁 당시 트리폴리와 터키를 연결하는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해 도데카네스 제도를 점령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렌터카 사무소의 가트리스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혼혈이다. 

 

가트리스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군인으로 이 카르파토스 섬에 주둔하고 있었다. 원래는 밀라도에서 과자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이런 촌구석에서 여자도 없이 지낼 리가 없었다. 어느새 이 섬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군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이탈리아군은 귀국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트리스의 아버지는 아가씨와 헤어지기가 싫어 그만 탈영을 하고 말았다. 이탈리아군은 온 섬을 뒤졌지만 아가씨가 꽁꽁 숨겨 준 가트리스의 아버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모두 포기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가트리스의 아버지는 우여곡절 끝에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다. 그리고 가트리스는 무뚝뚝한 아저씨가 되어 다 낡아 빠진 렌터카를 관광객에게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역사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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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단 한번의 삶(김영하)

○ 감상김영하의 에세이는 언제나 많은 사유를 하게 한다.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자극이 아니라 지속적인 진동을 남긴다. 마치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의 분량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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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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