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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구덩이에 사제를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좀처럼 죽지도 못하고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애벌레처럼 몸부림칩니다.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어 용기를 잃게 하려는 것이지요. (소설 <침묵>에 대한 설명)

 

-. 에도시대 기리시탄의 후미에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우리 역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기는 신조, 동경하는 삶, 그런 것을 흙 묻은 신발로 짓밟듯이 살아야만 했습니다. 전후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 역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후미에'를 갖고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우리 소설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알 수 없고,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기 대문에 손으로 더듬듯이 소설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인생에 대해 결론이 나오고 미혹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소설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가는 헤매고 또 헤매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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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우리가 순문학 소설을 쓸 때는, 자기 안에 어떤 어렴풋한 생각이 들고 그것이 조금씩 굳어져, 이러저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상 그대로 쓰면 그건 비평이나 에세이지 소설이 아닙니다.

 

-. 순교한 훌륭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인간입니다. 평범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입니다.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밟았을지 모르니까요.

 

-.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침묵의 재 안에서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침묵의 재를 긁어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박해 시대에 그렇게 많은 탄식과 피가 흘렀는데도 왜 신은 침묵했을까, 하는 '신의 침묵'과도 겹쳐놓았습니다.

 

-. 신은 왜 잠자코 있을까, 저는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신은 왜 그런 부정에 대해 잠자코 있는 걸까. 여기서 부정이라는 것은 법률이나 정치의 부정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생명의 부정에 대해 왜 잠자코 있는 걸까, 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 나이쯤 되고 나서 저는, 어머니가 자기 마음대로 입혀준 그리스도교라는 양복을 몇 번이나 벗어버리려 했는지 모릅니다. 저에게 전혀 맞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벗어버린다고 쳐도, 벗고 나면 이제 저에게는 입을 게 없는 겁니다. 알몸뚱이가 되고 마니까 어쩔 수 없이 입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소설을 쓰려고 할 무렵부터 저는 인생에서 '버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벗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인생도 버리지 않고, 아내도 버리지 않고요.(강연장 웃음)

 

-. 아름다운 것이나 매력 있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바보라도 가능하지만 퇴색한 것, 낡아빠진 것, 많이 봐와서 싫증 난 것에 마음이 끌린다거나 계속 갖고 있는 데에는 재능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잖아요. 인생은 모두 그런 것입니다. 인생은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 반짝이는 것이 아니기에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버린다는 것에는 자살이나 자포자기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인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제가 성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매력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쫓아가는 내용이 한쪽도 나오지 않기 대문입니다. 예수는 더러운 것이나 퇴색한 것만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던 창부나 심한 병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을 만나 꼬박꼬박 위로해 주었습니다. 창부라는 단어가 여러분과 인연이 멀다면 인생이나 일상생활로 치환해도 좋습니다. 예수가 모든 사람이 겪는 일상의 고통, 슬픔, 번잡함을 자신의 십자가로 삼아 짊어지고, 마지막까지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 제게는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늙은 아내가 저의 십자가이고, 또 제 인생은 결코 재미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면 싱글벙글 히죽거리고 있지만 집에서는 가끔 '가스나 틀어놓고 죽어버릴까' 생각합니다.

 

-. 로드리고는 밟기로 결심합니다. 발밑에 놓인 후미에를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일본으로 오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근사하고 아름다우며 위엄과 영광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니라, 밟혀서 마멸되고 움푹 파여 굉장히 슬프고, 우리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지쳐 있는 비참한 얼굴입니다. 그런 그리스도가 로드리고에게 "밟아도 된다"라고 말합니다.

 

-. '아니, 엔도가 하는 말은 틀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는 분이 계시면 아무쪼록 사양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손을 들어 발언해 주십시오. 저는 도화선에 지나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텍스트를 읽어나가고 싶을 뿐이니까요.

 

-. <테레즈 데스케루>의 첫 부분에 여주인공 테레즈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이마가 넓다'라고 할 때 프랑스어로는 보통 '오트haut, 높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합니다. 모리아크는 '바스트vaste, 넓다'라는 형용사를 썼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데바스테devaste, 적막하다'라는 형용사를 연상시키지요. 요컨대 모리아크는 '테레즈는 이마가 얿니다'라는 묘사를 하면서 보통 쓰는 표현과는 다른 표현을 굳이 사용함으로써 이마가 넓을 뿐만 아니라 고독한 여자라는 이미지까지 부여한 것입니다.

(...) 이야기가 다른 데로 빠졌습니다만, 소설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질퍽한 부분, 죄와 악의 부분도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인간의 심리나 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까지 포함한 여러 가지 심리가, 얽히고설킨 나무의 뿌리처럼 뒤얽혀 차츰 하나의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밝혀졌습니다. 모리아크는 그런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테레즈 데스케루의 내면에서 찾아내려고 합니다.

 

-. 매력적인 것에 끌리는 것은 정열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사고에서는 매력이 없는 것, 퇴색한 것, 괴로운 것도 버리지 않는 게 사랑입니다. 사실 인생이랑 종기 같은 것입니다. 종기 같은 인생이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고, 소중하게 맛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쩌면 종기 같은 아내라서(강연장 웃음)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 예수는 인간들에게 버림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는가. 예수는 버림받기 위해 있었다. 그러면 버림받은 여자는 예수와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버린 여자>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작품을 그렇게 생각하며 읽어보세요. 굉장히 좋은 소설이니까요. (강연장 웃음)

 

-. 확정된 예수의 어록집은 없습니다. 보통 독일어 자료Quelle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따서 'Q 자료'라고 부릅니다.

 

-. 성서를 읽어오며 제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예수라는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굉장히 무력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분이었다는 생각이 성서에 일관되게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가 활동했던 기간은 불과 3년 정도인데, 그 시기에 많은 사람의 찬양을 받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그의 친구나 제자들도 그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서가 말하려는 것은 이 두 가지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사랑을 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더군다나 구약성서철머 노하는 신, 벌하는 신, 심판하는 신의 이미지에 익숙한 제자나 친구나 주위 사람들은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많이 오해했습니다. 오해라기보다는 자기 꿈을 멋대로 의탁한 것이지요. 당시 로마인이 유대를 점령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로마를 몰아낼 메시아, 즉 구세주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는 로마인을 내쫓아줄 메시아가 될 사람이 아닐까, 하는 오해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효과를 요구했다고 할까, 병을 치료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습니다.

(...) 사람들의 기대는 예수가 정말 전하려고 한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기대 위에 예수를 놓고 그를 찬양한 시기가 있었지만, 얼마 후 이 남자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중은 잔혹한 법이라 조금씩 그를 버리고, 제자들도 대부분 그를 떠나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 예수에게 현실적인 효과는 없습니다. 현실적인 효과가 없기 때문에 무력한 사람입니다. 무력한 사람은 민중으로부터 반드시 버림을 받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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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재미는 예수를 일단 배반한 제자들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 되지 않았던 그 남자, 무용한 남자, 인생의 모든 것에 실패한 남자를 잊을 수 없어 언제까지고 그 사람만을 생각하고, 최종적으로는 그 사람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인생을 산다는 점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죽은 예수를 떠날 수 없어 결국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 그런 투미한(어리석은) 사람들이 왜 투미한 채 있을 수 없었을까, 그런 점이 성서의 재미랄까, 저에게는 큰 화두였습니다. (...) 그들은 자신의 선생을 잊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일생을 관통하는 뭔가로 삼았습니다.

 

-. 성서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이런 나약한 제자들이 다시 모여들어 자신을 배신한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 결국은 박해를 받아 죽어간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나약한 사람이 의지가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게 궁금해서 저는 <예수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썼습니다.

 

-. 애정은 좀 더 노력이나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연민은 도피하려는 것입니다.

 

-. 이 나이가 되면 잘 알게 되는데, 인간은 많은 정열을 불태우며 살 수 없습니다. 많은 사상이나 운명을 살 수 없다고 해도 좋겠지요. 자신과 진정으로 맞는 사상으로 밖에 살 수 없습니다.

 

-.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예술은 데모니슈demonisch한 협력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데모니슈는 '신들린'이라는 의미입니다.

 

-. 대체로 소설가는 교활하고 엉큼하고 겁쟁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신의 이야기로 끌어들여 사람들의 하루를 감히 허비하게 할 만큼 교활하고, 은연중에 세상의 믿음들에 균열을 가하고도 시치미를 뗄 만큼 엉큼하며, 인물 뒤에 숨어 자신의 생각을 감출 만큼 겁쟁이다. 그러니 훌륭한 소설가는 교활하고 엉큼하고 겁쟁이어야 한다. 거기다 엔도 슈사쿠는 풍부한 유머까지 갖췄다. 아주 매력적인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옮긴이 송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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