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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읽다 보면 베를린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글. 베를린 여행에 대한 나의 인상 역시 그리 화창하지 않았기에 더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동시에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처럼, 내가 오래 머물렀던 또다른 도시를 떠올리며, 그 속에 있던 나를 회고하며 읽었다. 좋은 순간이었다. 

 

* 2020년 2월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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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 고독은 현재 진행형일 때는 처참하지만, 과거 완료형일 때는 낭만적일 수 있다.

 

 

 

- 신해철의 죽음을 통해 다시 확인한 사실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는 죽었을 때에야 사람들의 일상으로 진정하게 초대받는 것 같다. 이는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현대에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것이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 모두가 낭만과 예술에 곁눈조차 둘 틈 없이 황망하고, 경망한 시대에 살고 있다.

 

 

 

- 유럽의 건물이 대개 그렇듯. 내가 사는 아파트도 오래돼서 수압이 약하다. 때문에 보슬비처럼 떨어지는 샤워기 물로 단비를 맞이하는 사막인처럼 감격에 젖어 씻는다. 하지만 온수는 꼭 2~3분마다 30~40초씩 나오지 않아, 냉기 속에서 물에 젖은 나체로 온수를 기다리길 발복 하며 샤워를 한다. (...) 유럽인들이 왜 눈인사를 하고, 즉각 동거를 하고, 시와 소설을 들고 다니고, 사소한 모임에 모이는지 알겠다. 이들은 춥고 외로운 것이다.

 

 

 

-"내 마음의 삶을 기록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미련하게 보낼 권리가 생긴다." -폴 발레리

 

 

 

- 베를린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고독을 견뎌 내야 하는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게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 베를린은 살기에 실로 적적하고 고단하지만, 그만큼 친구를 사귀기엔 좋다.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적적함과 고통을 겪어 봤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완전히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각자 심리적 결손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 낯선 길 위에서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새로운 와이파이 암호를 입력하고, 숙소의 위치를 머릿속에 새겨 두고,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과 건물의 차이점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불친절한 사람의 장점을 발견해 보려고 애쓰는 일에 이제 지쳤다(이제는 백림이 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 식상한 말이지만, 용서는 자신을 그 생각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기에 언제나 용서의 진정한 수혜자는 자신이다. 독일인 니체는 아마도 저 명언을 떠올리고 나서야, 에이 그래도 멋진 말 하나 건졌어라며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매력적인 외모와 화려한 스타일로 눈길이 가지만, 만날 때마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는 이성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시골은 실로 아름답다. 베를린에 오기 전에 이탈리아에서 한동안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사라졌다. 백림 생활이 나를 몹시 회의적이고 실용적인 인간으로 변모시켰다.

 

 

 

- 이곳에서 느끼는 지속적인 불편과 불합리성은 왜 청년들로 하여금 소시지와 맥주와 고독밖에 없는 백림으로 오게 하는지 이해하게 한다. 싸구려 호텔에서 잤지만, 영수증조차 없는 시 재정 세금을 1인당 3유로씩 현금으로 따로 받고, ATM기로 현금을 인출하면 수수료가 3천 원인데, 환전소에서 환전하면 수수료가 4~6만 원(총금액의 20%)이다. 오늘도 도로 한 군데가 공지 없이 폐쇄돼 있었고, 차에서 내릴 때마다 도난을 우려해 내비게이션을 떼어 어딘가에 숨겨놓아야 한다(영국도 마찬가지).

 

 

 

- 사실 고백하자면 이 글은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 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내가 멍청하게 지낸 모든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이들의 환대에 대한 어떠한 이성적 이유도 찾을 수 없다.

 

 

 

- 헤어지기 전 당연히 파비오와 나는 포옹을 했고, 엘레나는 볼 키스를 나누기 전, 파비오가 보건 말건 내 등 뒤로 자신의 양손 끝이 맞닿을 만큼 꼭 끌어안아 줬다. 결국, 우리는 꼴사납게 길거리에서 셋이 함께 포옹을 했다. 일처양부제의 첩이 된 느낌이다. 아마존 여인국 족장의 두 번째 남편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 "최 선생님, 여름에 꼭 다시 오세요. 제일 안 좋을 때 오셔서, 제일 우울한 경험만 하시고 가시는 거예요" (...) 하지만 제일 안 좋을 때, 제일 우울할 때 오니, 볼 것이 없어,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 많은 사람을 만났고, 해일처럼 그 만남들이 모두 지나가니, 결국 비수기의 해변처럼 쓸쓸하고 차가운 일상만이 남았다. 다시 할 일은 없어졌고, 어쩌면 1년 내내 이런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인가'하는 상대성이지만, 크게 보자면 지금 맞은 한 해가 여생과 별 차이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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