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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왈종미술관(2018, 제주 서귀포)

Varsika 2021. 10. 19.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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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제주에 정착하여 20여년이 넘게 그동안 나는 <제주 생활의 중도와 연기>란 주제를 가지고 한결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도대체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오는가 만을 깊게 생각해왔다. 인간이란 세상에 태어나서 잠시 머물다 덧없이 지나가는 나그네란 생각도 해보았고 세상은 참으로 험난하고 고달푼 것이인생이란 생각도 해봤다.

 

살다보니 새로운 조건이 갖춰지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또 없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들에서 연기라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중도와 더불어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내 인생을 걸었다. 

 

사랑과 증오, 탐욕과 미움, 번뇌와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 모두가 다 마음에서 비롯됨을 그 누구나 알지만 말처럼 그렇게 마음을 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마음이 내재하는 한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희 흰머리로 덮여가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행복과 불행, 자유와 구속, 사랑과 고통, 외로움 등을 꽃과 새, 물고기, TV, 자동차, 동백꽃, 노루, 골프 등으로 표현하며 나는 오늘도 그림속으로 빠지고 싶다. (2013년 5월, 작가노트)

 

* 이왈종(1945~) : 1945년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91년부터 서귀포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삶과 자연과 예술 - 이왈종의 근작에 대해(오광수 / 미술평론가 ·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같은 주제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구현하려는 작가의 관심은 그만큼 자기 세계를 넓혀가려는 의욕의 반영이랄 수 있따. 어느 한 매체에 고집스럽게 매달려 있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폭넓게 자기 세계를 넓히는 작가가 있다. 예컨대 같은 입체파 작가 가운데 브라크는 타블로 중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면, 피카소는 타블로, 판화, 조각, 도자 등 조형 전 영역에 걸쳐 왕성하게 자기 세계를 펼쳐보였다. 가히 탐욕적이라 할 만큼 여러 매체를 섭렵하였다. 전자는 어느 한 곳을 파고드는 성향이고 후자는 확대해가는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편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전자가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면 후자는 자기 세계에 대한 다양한 기능성을 탐구하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왈종의 작품의 편력도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그 관심을 다양하게 넓혀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다루는 내용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만큼 그것을 담는 형식은 상대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따라서, 다양한 형식적인 실험은 자기 세계에 안주하지 않으련느 작가의식의 자연스런 발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작품의 내용은 극히 제한된 소재의 반복이라 할 정도로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주에서의 일상의 풍경이다. 낮은 방안엔 언제나 남정네가 누워 책을 읽는가 하면 남녀가 작은 차탁을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밖엔 개와 사슴과 닭이 한가롭게 노니는가 하면 때로 시장에 갔다 돌아온 여인네가 점경되기도 한다. (...)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 은밀하게 암시되면서 무르이겅 가는 자연 속에 파묻히는 모습은 해학적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화면은 농익어 가는 장면들로 인해 몽환적인 경지에 이른다. 화면마다 넘쳐나는 것은 꽃이다. 동백, 유두화, 수선, 매화, 감귤나무,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남국의 정서가 투명하고도 밝은 채감을 통해 아로새겨진다고 할까. 일상과 꿈이 겹치고 인간과 자연이, 인간과 동물이 범신적인 차원에서 서로 혼융된다. 

 

그의 형식 실험은 단조로운 내용을 풍요롭게 가꾸는 장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여기에 가해지는 각종 서술적 내용은 그가 추구해가는 제주에서의 삶의 풍경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예술은 어쩌면 꿈꾸는 일이고 꿈의 차원을 부단히 모색하는 작업이라고 할 떄 이왈종의 작품은 일상을 꿈으로 치환해놓은 놀라운 연금술의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야흐로 무르익어가는 꿈의 경지가 꽃처럼 활짜 ㄱ열리고 있음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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