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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아 + 중동 8

KBS다큐인사이트 충돌, 이스라엘 VS 이란(중동, 유대교, 이슬람, 중동 전쟁)

- 이스라엘은 2024년 4월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다. 13명이 사망했고, 경찰 두 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 건물이 영사관이 아니라 이란 혁명수비대의 안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공격으로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가 사망했다. - 4월 15일, 이란은 미사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다. - 4월 19일,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본토를 공격했다. 이란에서 이스라엘은 약 2,000km 떨어져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 공격 당시 170개의 드론과 150개가 넘는 순항, 탄도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여기에는 극초음속 미사일도 포함되어 있어 개전에 필요한 수준의 물량을 투입했다. 이스라엘은 저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아이언돔을 이용해 거의 대..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평 10부 - 팔레스타인 분쟁

- 유대인과 아랍인은 모두 셈족이며 둘 다 셈족의 선조인 아브라함을 숭배한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 이삭의 자손이 유대인이 되었고, 두 번쨰 아내 하갈이 낳은 큰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이 아랍인이 되었다. - 신은 이스마엘이 은혜를 입을 것이고 이삭에게는 가나안의 땅을 약속했다. - 지금은 지중해 동쪽 해안 지역을 레반트Levant라고 부르는데 이는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lever, levare)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이 지역을 위탁통치하게 되면서 쓰게 된말이다. - 출애굽기 이후 유대족은 북쪽엔 이스라엘 왕국을, 남쪽엔 유다왕국을 세웟으나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 제국이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후 기원전 586년엔 바빌로니아에 의해..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평 9부 - 후기 오스만튀르크 제국(16세기~1922)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막대한 군비로 인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핵심 권력으로 떠오른 예니체리는 술탄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특수신분을 세습하고 관직을 매매하는 등 폐해가 박심했다. 이에 지방의 권력자들은 예니체리와 결탁하여 술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자체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1683년부터 1718년까지 오스만 제국은 여러 번 합스부르크제국과 전쟁을 벌였지만 번번히 패하고 말았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러시아가 18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빼앗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지중해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 왕국 역시 발칸반도를 탈환하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무슬림 주민들이 기독교도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오늘날 발칸 반도 갈등의 ..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평 8부 - 오스만 튀르크제국(1299~1453)

11세기 이슬람 세계에 등장한 튀르크족은 1924년 공식적으로 칼리프제가 폐지될때까지 칼리프 자리를 장악했다. 셀주크 왕조의 군주였던 바이바르스(1223~1277)는 여전히 다마스쿠스 거리에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셀주크 투르크는 몽골의 침략으로 치명타를 입고 무너졌다. 셀주크의 본거지인 아나톨리아에 쳐들어온 몽골군 지휘자가 바로 티무르(1336~1405)였다. 유럽인들은 티무르를 타메를란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몽골인으로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1405년 오트라르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곳은 과거 칭기즈칸의 상인들이 영주로부터 살해된 바로 그곳이었다. ▷ 티무르 제국은 1370년부터 1507년까지 존속했다.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해체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평 7부 - 몽골과 맘루크

1218년 칭기스칸의 보호를 받던 몽골 상인 450명이 호라즘(지금의 이란)에 있다가 오트라트라는 도시에서 영주에게 떼죽음을 당한다. 격분한 칭기즈칸은 호라즘의 황제에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했지만 호라즘이 이를 거부했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1227년 칭기즈칸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오고타이는 이라크를 공략해 1240년 이라크의 절반을 정복했고 1255년에는 이집트까지 정복한다. 1258년에는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해 아바스 왕가의 칼리프를 비롯 모든 주민을 학살했다. 바그다드의 관개시절을 모조리 파괴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이라크는 지금까지도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다고 한다. 몽골군은 1260년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이슬람군에 대패하여 물러났고, 이란 지방을 1380년경까지 지배했다. 1260년 몽골군..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 6부 - 에스파냐의 이슬람 왕국들(레콩키스타)

후 옴미아드 왕조(=코르도바 칼리프국, Emirate of Cordoba) * 옴미아드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와 같은 뜻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우마이야'가 올바른 표기이나 본 포스팅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표기법을 그대로 따른다. 756년 아브드 알라흐만 왕자가 세운 후 옴미아드 왕조는 10세기 초 전성기를 누린다. 당시 아브드 알라흐만 3세가 왕국을 통치했는데 수도인 코르도바는 파리 인구가 3만 8천명이던 당시 인구 50만 명을 자랑하던 대도시였다. 코르도바 도서관에는 50만 권의 장서가보관되어 있었다. 전성기는 10세기 말 만수르 통치 시대까지 이어졌고 1002년 만수르의 사망과 함께 왕국의 전성기가 저물기 시작한다. 왕국이 허약해지자 베르베르인과 슬라브인 용병들이 반란을 이르켰고 1031년에는..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 3부 - 옴미아드 왕조

2. 옴미아드 왕조(661 ~ 750) - 무아위야 1세(602~680)는 661년 제5대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슬람의 수도를 메디나에서 다마스쿠스로 옮긴다. 다마스쿠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 도시 중 하나였는데 그의 천도는 이슬람 세력이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세계적 문명으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 무아위야 1세는 시리아 총독이었던 아부 수피얀의 아들로 강력한 시리아 군대를 바탕으로 제5대 칼리프가 되었다. ▷ 무아위야 1세의 아버지 아부 수피안(혹은 아부 수피얀)은 초기 무하마드에 반대하던 메카 상인 세력 중 하나였다. 옴미아드가는 무하마드가 메카에 입성한 이후에야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훗날 아부 수피안의 3대 칼리프이자 친척인 우스만 시기에 시리아 총독을 지낸다. (추가 끝) ..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 - 1부(이슬람교, 무하마드, 무슬림, 이슬람 영토, 이슬람 역사 개요)

*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을 기본으로 추가 조사하여 내용을 덧붙임 - 조로아스터교 : 이란에서 창시된 종교로 창시자는 자라투스트라다. 중국에서는 이들이 불을 숭배한다하여 배화교라고 불렀다. - 농경사회의 시작 → 씨족(clan)사회 → 부족(tribe)사회 → 부족연맹 → 고대국가. 국가 체계가 생기면서 법과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고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결정짓는 것은 종교였다. (법에 대한 존엄성 확보) - 종교는 토속신앙과 달리 논리적은 교리를 갖춰야 한다. 교리가 왜곡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경전이 있어야 하며, 예배와 제사 같은 고유의 의식과 이를 집행할 교회 또는 사원이있어야 하며 이곳과 신도를 이어주는 성직자가 있어야 한다. * 종교의 조건 : 교리, 경전, 성직자, 교회, 의식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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