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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 - 1부(이슬람교, 무하마드, 무슬림, 이슬람 영토, 이슬람 역사 개요)

Varsika 2023. 4. 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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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을 기본으로 추가 조사하여 내용을 덧붙임

 

- 조로아스터교 : 이란에서 창시된 종교로 창시자는 자라투스트라다. 중국에서는 이들이 불을 숭배한다하여 배화교라고 불렀다.

- 농경사회의 시작 → 씨족(clan)사회 → 부족(tribe)사회 → 부족연맹 → 고대국가. 국가 체계가 생기면서 법과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고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결정짓는 것은 종교였다. (법에 대한 존엄성 확보)

 

- 종교는 토속신앙과 달리 논리적은 교리를 갖춰야 한다. 교리가 왜곡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경전이 있어야 하며, 예배와 제사 같은 고유의 의식과 이를 집행할 교회 또는 사원이있어야 하며 이곳과 신도를 이어주는 성직자가 있어야 한다. 

* 종교의 조건 : 교리, 경전, 성직자, 교회, 의식

 

- 가톨릭 교회는 유대민족만을 위한 유대교와는 다르게 보편적인 보통 교회를 내세웠다. Catholic이라는 단어는 '보통의', '보편적인'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하였다. 

 

-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었던 로마 제국은 원활한 통치를 위하여 종교를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종교를 통일하는데에는 유일신 사상이 효율적이었고, 결국 기독교를 공인하게 이른다. 로마의 인간 중심사상에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합쳐진 것이 로마 가톨릭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교리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예수의 위치를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난 신, 즉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확립했다. 태양과 빛과 따뜻함은 분리할 수 없고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시내를 이루니까 샘, 물, 시내는 뗄 수 없는 삼위일체이다. 이 삼위일체는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가 된다. 

* 삼위일체는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리스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인간으로 예언자이자 신의 사도로만 인정한다. 구세주(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도 역시 예수를 예언자 중 하나일뿐이라고 말한다. 

 

- 삼위일체 교리는 신의 세계와 마주한 인간인 '나'를 깨닫게 해주어 자아의식과 개인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 (+ 인간은 특수한 존재다. 인간은 자연, 동물, 식물 등 신의 창조물을 지배하는 존재다.)

 

- 그러나 비기독교의 세계에서는 인간 세계의 서열과 계급을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화和'와 '우애'로 유지되는 공동체이다. (ex : 무슬림 형제)

 

 

<이슬람 / 아라비아>

 

- 아라비아는 아랍 + ia로 만들어진 명칭이다. 로마시대때 북부 시리아를 돌의 아라비아, 중북부를 사막의 아라비아, 남부를 풍요로운 아라비아라고 불렀다. 남부는 홍해를 끼고 띠 모양의 농경지대가 존재한다. 

 

 

- 메카와 메디나 역시 남부 아라비아에 해당하는 도시이며 지중해 - 인도양 - 인도를 잇는 주요 교역 통로였다. 

 

- 본래 메카의 한복판에는 '카바'라는 성소가 있었다. 카바는 본래 유대민족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야훼를 위한 신단으로 만든 것이라 전한다. 그러나 후에 온갖 종교가 메카에 유입되며 무려 300여종이나 되는 우상을 숭배하기에 이른다. 

 

-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였으며, 삼위일체가 가능하다는 교리는 기존 아랍인들의 믿음과 크게 대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기독교의 보편성을 갖고 오되, 삼위일체는 부정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쿠란 3장 171절에는 삼위일체를 주장하지 말라는 표현이 분명하게 나온다. 

 

- 쿠란 112장 구절인 "하느님은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도 두지 않으셨으며"는 모든 이슬람사원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 무슬림들은 이슬람교를 기독교보다 600년 뒤에 등장하여 비로소 완성된 종교라고 주장한다. (삼위일체라는 모순된 교리를 바로 잡았다)

 

- 그리스적인 인강중심 사상을 경험한 일부 유럽의 로마제국 영토 안에서는 기독교가 천천히 확산되었던 반면에, 이를 제외한 모든 세계는 인간중심 사상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기독교보다 훨씬 더 큰 호응을 얻었고, 100년 만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 메카에서 태어났다. 메카 지방의 명문인 쿠라이시족 하심 가문 혈통이다. 쿠라이시족은 하심, 주라, 타임, 아디(우마르), 옴미아드(우스만) 등의 가문이 있다. 무함마드의 정식 이름은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이며 이븐은 ~ 의 아들(bin)이란 뜻으로 아브드 알라가 아버지의 이름이다. 무함마드는 마호메트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데 이는 영국인이 임의로 사용한 것으로 무슬림들은 불쾌해하는 명칭이다. 

 

- 작은 아버지를 따라 무역에 종사했던 무함마드는 장사 수완이 좋았으나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는 못했다. 25살에 15살 연상인 하디자(부유한 상인의 미망인)와 결혼하여 부호가 되었다. 이후 장사에서 손을 떼고 종교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는 동로마제국와 페르시아 제국(사산조 페르시아) 간의 전쟁에 끼여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 무함마드가 40세가 되던 610년, 메카 근교의 히라산 동굴에서 최초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 대천사 가브리엘(아랍어로 지브릴)이 손에 신의 문서를 들고 나타났다. 기독교에서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예수의 잉태를 알려주지만(수태고지), 이슬람교에서는 그저 전령일 뿐이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신이자 그의 어록과 행동이 신약성서로 만들어진 구원자이지만, 이슬람교의 무함마드는 인간이자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전달자이다. 그가 전달한 신의 계시가 쿠란에 담긴다.

 

-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자 무함마드는 귀의, 복종의 뜻으로 '이슬람'이라고 외쳤다.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은 이날을 '정명의 날'이라고 하며 슬람람역 9월 27일로 라마단이 시작되는 날이다. 

* 쿠란은 '읽는다'라는 의미이다. (가브리엘이 신의 계시를 읽으라고 무함마드에게 3번 말했으나 무함마드가 글을 읽을줄 몰라 가브리엘이 대신 읽어 신의 계시를 전한다)

 

- 이후 돌아온 무함마드는 신의 계시를 전했고, 아내 하디자가 첫 번째 무슬림이 된다. 그러나 메카의 부유한 상인들은 다양한 종교의 순례자들이 끊길 것을 우려하여 무함마드를 비판하였고, 실력자였던 작은아버지 아부 탈리브가 죽자 무함마드에 대한 메카 상인의 위협은 더욱 격해졌다. 결국 친구인 아부 바크르의 조언에 따라 무함마드는 야스리브로 피난하는데 야스리브가 훗날 '예언자의 도시'라는 뜻의 '메디나(마디나트 안나비)'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 곳이다. 

 

-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동한 것은 이슬람이 메카를 벗어나 아라비아로 퍼지게 된 첫 계기였기에 이슬람교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천(聖遷)이라 하고 이주(移住)라는 뜻의 '헤지라'라고 부른다. 헤지라가 행해진 서기 622년을 바로 이슬람력 1년이라고 한다. 야스리브로 옮겨온 무함마드와 무하지룬(최초의 무슬림들)은 야스리브 원주민들과의 마찰을 ㅜㅇ려하여 메디나 헌장을 통해 동맹을 맺는다. 무함마드가 자신의 부족(쿠라이시족)에서 벗어나 다른 민족과 공동체를 이루어 전 아랍을 움마(이슬람 공동체)로 묶는 첫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 메카 세력은 집요하게 무함마드를 공격했는데 이 때문에 무함마드는 종교지도자이자 메디나를 지배하는 정치지도자 그리고 메카군과 싸우는 이슬람 군대의 지휘자로 거듭난다. 이로인해 무함마드 이래 이슬람 지도자는 정치지도자와 군대지휘자를 겸하게 된다. 메카군과의 전투 중 625년 무함마드는 큰 패배를 당하는데 군의 기강을 잡기 위해 술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지금도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는 술을 금지하고 있다.

 

- 627년 메카군이 메디나를 포위하여 약 40여일간의 공방전 끝에 철수한 일이 있었다. 이 때 메디나의 유대인들이 메카군과 내통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는 이슬람교와 유대교가 서로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모든 유대인 남자는 참수당했고, 유대교가 토요일을 안식을로 삼으니 이슬람교는 금요일을 안식을로 삼하도록 명했다. 

 

- 이후 무함마드는 반격에 나서 메카로 진격했고 쿠라이시족과 후다이비야에서 강화를 맺는다. 10년간 휴전하며 무슬림은 매년 3일간 메카를 순례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이슬람공동체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게 된다. (627년)

 

- 630년 이슬람군은 메카를 공격해 함락시킨다. 무함마드는 카바신전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순수한 유일 신전으로 복원한다. 메카 정복 2년 뒤인 632년 무함마드는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10명의 아내와 2명의 첩이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하디자가 죽기 전에는 다른 아내를 얻지 않았으며 대부분이 정치적인 이유로 맺은 혼인이었다) 

* 1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 2대 칼리프인 우마르, 3대 칼리프인 우스만 모두 무함마드와 혼맥으로 엮여 있다. 첫째 부인 하디자와 무함마드 사이에서 얻은 딸 파티마는 사촌동생이자 친구인 알리의 아내가 되었다. 알리는 4대 칼리프이다. 

 

-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옮긴 직후 가장 친한 친구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를 아내로 맞았는데 아이샤는 무함마드로부터 직접 이슬람교를 가르침 받아 이후 하디스(무함마드 언행록)을 남기는데 공헌하기도 했다. 

 

- 이슬람교는 최고 경전인 쿠란, 순나(무함마드의 행동과 이슬람세계의 관습을 기록한 것), 하디스(구전되는 무함마드의 행동, 이야기) 3가지로 이루어 진다. 순나는 처음 만들어 진 이후 이슬람 법학자 앗 샤피이(767~820)가 8세기에 정비하였다. 이슬람교에서는 쿠란 다음으로 중시하는 경전이다. 

 

- 하디스는 순나와 같은 본문(가르침과 행동에 대한 부분)과 이스나드(전달 과정)이라는 전문,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나보다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 이슬람 세계의 법은 샤리아라고 한다. 샤리아는 '길'이라는 뜻으로 8~9세기 체계화된 성법聖法이다. 

 

 

- 이슬람 세계에서 한 남자가 아내를 4명까지 맞을 수 있지만, 아내를 모두 똑같이 대우한다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반면 노예를 후실로 맞는 것은 제한이 없었다. 20세기 들어서 이슬람 세계에도 서양식 개혁이 도입되었는데 터키는 1926년 샤리아를 폐지하고 스위스식 가족법을 채택했다. 이집트, 시리아, 튀니지도 서양식 가족법을 도입한다.

 

-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5개 범주로 나눈다. 의무, 추천(권장), 기피, 금지, 임의가 그것이다.

 

- 이슬람교에는 5가지 기둥이라 불리는 황금 규칙이 있는데, 샤하다(신앙고백), 기도, 희사, 단식, 순례가 그것이다. 

(1) 샤하다에서는 알라만이 유일한 신임을 강조하고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매일 다섯 번으 기도에서 처음과 끝, 명상 때마다 샤하다를 반복한다.

(2) 기도(살라트)는 하루 5번 행해야 한다. 

(3) 희사(자카트)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늘 행하는 것으로 이슬람교가 규정하는 인도의주적 세금 같은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희사할 수 없다면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

(4) 단식(사움), 이슬람력으로 9월에 있는 라마단 기간동안 성인 무슬림들은 엄격히 금식해야 한다. (참고로 이슬람력은 유대력과 마찬가지로 1년이 354일이다) 이러한 사움은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탈출 계획을 세울 때 머리를 맑게하기 위해 24시간 금식 한 데서 비롯되었다. 

 

- 라마단 기간에도 어린이, 임신부, 노인, 환자 등은 식사가 허영된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성인 무슬림들은 음식과 음료, 담배와성생활도 금지된다. 해가지면 허락의 밤(라일라 알바르)이 되어 이프타르(특별한 식사)를 먹을 수 있지만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 라마단은 유대인 금식일(1월 8일) 규정을 본뜬 것이지만 624년 첫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슬람력 9월로 옮겼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금요일을 고기먹지 않는 날로 정했다)

 

(5) 순례(하지), 무슬림들은 생애 최소 한 번 이상 메카로 순례여행을 해야 한다. 하지는 주로이슬람력 12월에 행한다. 이때 무하마드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함께 추모하는데 무슬림들은 아브라함 역시 지구 상의 많은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봄)

 

 

- 이슬람에서는 무릎만 꿇을 수 있다면 그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은 기도를 포함하여 쿠란을 연구하고 낭독하기 위한 장소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 이슬람은 11세기에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 동안 중동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이슬람 문명이 유럽 중세의 어둠을 걷고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게 된다. 수학(아라비아 숫자), 천문학(사막의 길잡이), 지리와 측량(거대한 제국), 의학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유럽이 질병을 운명의 탓으로 돌려 기도와 주술에 의존하고 있을 때 이슬람에서는 이미 치료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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