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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중동편 3부 - 옴미아드 왕조

Varsika 2023. 4. 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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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옴미아드 왕조(661 ~ 750)

 

- 무아위야 1세(602~680)는 661년 제5대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슬람의 수도를 메디나에서 다마스쿠스로 옮긴다. 다마스쿠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 도시 중 하나였는데 그의 천도는 이슬람 세력이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세계적 문명으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 무아위야 1세는 시리아 총독이었던 아부 수피얀의 아들로 강력한 시리아 군대를 바탕으로 제5대 칼리프가 되었다. 

▷ 무아위야 1세의 아버지 아부 수피안(혹은 아부 수피얀)은 초기 무하마드에 반대하던 메카 상인 세력 중 하나였다. 옴미아드가는 무하마드가 메카에 입성한 이후에야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훗날 아부 수피안의 3대 칼리프이자 친척인 우스만 시기에 시리아 총독을 지낸다. (추가 끝)

 

- 무아위야 1세는 680년 세상을 떠나면서 장남 야지드를 제6대 칼리프로 지명한다. 이는 선거로 칼리프를 뽑던 전통에서벗어난 것으로 시아파들의 전면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시아파들은 야지드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고 알리의 차남이자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세인을 칼리프에 추대한다. 야지드는 시아파를 공격하여 후세인의 눈 앞에서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그 충격에 후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칼리프는 세습제로 승계된다.

 

 

- 옴미아드 왕조는 5대 아브드 알말리크1세(재위 685~705, 메디나 출생, 다마스쿠스 사망)의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는 우편제도를 창설했고, 아랍어를 행정어로 공식화했고 최초의 이슬람 금화를 만들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관개하여 농업을 발전시켰다. 

 

- 그의 업적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건설한 것이다. 이곳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 전해지는 곳이다. 아브 알말리크는 대중 예배를 위한 모스크가 아닌 순례자를 위한 최초의 대형 이슬람 성지 사원을 지은 것이다. 

 

- 711년 옴미아드의 장군 타리크(베르베르인)는 에스파냐 원정을 시작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한다. 타리크가 지나간 곳은 '타리크의 바위'라는 뜻의 '자발 타리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지브롤터다. 옴미아드 왕조는 713년 북부 갈리시아를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정복했다. 718년에는 나르본을, 725년에는 리옹을 점령하였으나 732년 카를 마르텔(카롤룻 대제의 선조)에게 푸아티(Poitiers)에서 패배한다. 이슬람군의 북진은 여기서 멈추게 되고 카를 마르텔은 기독교의 수호자로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된다.

 

- 이보다 앞선 717년 동로마 제국의 레오 3세에게 패배를 당했고 결국 옴미아드 왕조는 지중해 동쪽과 서쪽에서 모두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 이란 북동쪽 호라산에서 아바스 가문이 옴미아드 왕조에 대항한다. 아바스 왕조의 지도자 알아바스는 자신이 무함마드의 백부 아바스의 자손이라고 자칭했다.  749년 결국 옴미아드 왕조를 무너트린다. 이들은 왕미아드 왕가의 상징인 흰색 깃발에 대항하여 검은 깃발을 사용해 흑색군단이라 불리기도 했다. 750년에는 다마스쿠스를 점령해 옴미아드 일족을 모조리 살해하고 아바스 왕조를 세운다.

 

- 750년 다마스쿠스에서 옴미아드 가분의 왕자, 아브드 알라흐만이 살아 도망쳤다. 그는 아직 옴미아드 왕조에 충성을 바치고 있던 이베리아로 도망쳐 그곳에서 지배자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756년 서고트 왕국을 몰아내고 코르도바를 정복하여 전 에스파냐의 통치자가 되어 후 옴미아드 왕조를 연다. 스스로를 칼리프라는 칭호에 대항하여 에미르라 칭했다. 

 

 

- 이로써 동쪽에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서쪽에는 후옴미아드 왕조의 에미르가 이슬람 세계를 양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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