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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 스리랑카(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

Varsika 2023. 5.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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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국기는 사자가 그러져 있는데 이는 건국설화와 관련있다. 기원전 5세기 경, 인도 벵골 지방의 위자야 왕자가 이 섬으로 건너와 사자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스리랑카 인구의 75%는 싱할라족인데, '싱할라'라는 이름이 바로 '사자의 후예(SInha 사자 +  La)'라는 뜻이다.  시크교도를 칭할 때 붙는 '싱', 싱가로프르의 '싱'역시 모두 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싱할라족은 스리랑카 섬을 '랑카디파'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랑카'가 사자, '디파'가 섬이라는 뜻이다. (사자의 섬)

 

독립 후인 1972년 헌법을 바꿔 국호를 스리랑카로 정했는데 여기스 '스리'는 영광, '랑카'는 사자를 뜻하며 영광스러운 사자의 나라라는 뜻을 갖고 있다. 

 

스리랑카는 기원전 247년 인도로부터 초기 불교를 전파받았는데, 지금까지도 불교의 초기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전 세계 불교의 총 본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정작 불교가 탄생한 인도에서는 현재 불교도 비중이 1% 미만에 불과하다. 힌두교에서는 불교를 한 종파라고 여길 만큼 힌두교가 불교를 흡수했다고 보고 있다.  

 

원시불교는 훗날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갈라지는 데, 개인의 열반을 중시하는 소승불교는 스스로 대승불교보다 상위에 있다고 하여 '상좌부 불교'라고 칭한다. 스리랑카에 전해진 불교 역시 우너시불교이자 상좌부 불교에 가까웠기 때문에 훗날 스리랑카는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가 되어 동남아시아에 상좌부 불교를 전파한 종주국이 된다. 대승불교는 개혁이 일어난 인도를 중심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북상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전파된다. 

 

싱할라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벵골지방에서 건너온 아리아계 민족이고, 이와 비슷한 시기 남인도의 타밀인이 건너와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드라비다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싱할라족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종교 역시 싱할라족은 불교, 타밀인은 힌두교를 믿는다. 훗날 영구이 스리랑카섬의 차 농사를 위하여 남부 인도에서 타밀인들의 대거 이주시켰는데 이 역시 훗날 갈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스리랑카는 1815년 영국의 식민지(영국령 신론)이 된다. 그 전에는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아 1518년부터 1658년까지 포르투갈의 영향하에 있었으며, 이후에는 네덜란드가 이곳을 1796년까지 지배한다. 이후 프랑스와 스리랑카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다 결국 영국이 점령하게 된 것이다. 

 

독립 이후, 타밀인들은 싱할라족 우대 정책에 반발하며 정치 투장단체 '타밀엘람해방호랑이'를 창설한다. '엘람'이란 소중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정부의 탄압을 거쳐 결국 무장 투쟁단체로 발전했는데 공산화를 노린 소련의 지원을 업고 1983년부터 정부군과 내전에 들어간다. 남인도의 타밀나두주 역시 타밀호랑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파키스탄과 중국이 타밀 호랑이를 지원했다. 

 

반면 인도 정부는 자국내 타밀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스리랑카 정부군을 지원한다. 인도는 군대까지 파견해가며 스리랑카 정부군을 지원했지만 32개월만에 철수하고, 이에 격분한 타밀인이 1991년 라지브 간디를 암살, 1993년에는 스리랑카 대통령까지 암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2004년, 태풍으로 인하여 반란군 보급 운반선의 대부분이 파괴되자 정부군이 승기를 잡게 되고 2009년 5월 16일 정부는 승리를 선언한다. 이틀 뒤인 5월 18일, 반란군 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이 사살되고 반란군이 항복하면서 1983년부터 26년에 걸친 스리랑카 내전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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