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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카를로스 전쟁)과 스페인의 몰락

Varsika 2023. 5. 1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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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개입으로 1823년 왕권을 되찾은 페르난도 7세는 아들이 없었다. 네 명의 왕비를 두었으나 아들을 얻지 못했다. 스페인은 여성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살리카 법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인 카를로스 대공에서 왕위가 돌아가야 했다. 페르난도 7세는 1830년 일방적으로 살리카 법을 폐지했고, 법을 폐지하고 6개월 뒤 네 번째 왕비로부터 이사벨 공주가 태어난다. 

 

3년 뒤인 1883년, 페르난도 7세가 세상을 떠나자 3세의 공주가 이사벨 2세로 즉위한다. 카를로스 대공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카를로스 5세로 칭했고 섭정 중이던 모두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이를 반역으로 선포해 7년에 걸친 카를로스 전쟁이 발발한다. 보수적인 왕당파와 귀족, 성직자들은 카를로스를 지지했고 온건 군부세력과 자유주의자들은 이사벨을 지지했다. 따라서 이 전쟁은 보수대 진보, 봉건대 공화 세력의 전쟁으로 전개된다.

 

19세 중반 유럽은 봉건 세력에 도전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투쟁이었다면 스페인에서는 자유주의 세력에 도전하는 봉건 세력의 투쟁적 성격이 짙으며 이는 스페인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가톨릭적 국가인지를 드러낸다. 두 세력은 시대를 거쳐 정치 집단으로 성장하였으며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전개된 스페인 내전은 물론,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할 때까지 스페인 정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사벨 2세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스페인을 통치한 1833년부터 1868년까지의 35년간 헌법이 6번 바뀌었고, 내각이 41번 교체되었으며 15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두 번의 내란이 일어난다. 결국 1868년 후안 프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이사벨 2세는 퇴위 후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 쿠데타는 무혈로 성공하여 스페인의 명예혁명으로 불린다.

 

1년간 공석인 왕위를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고 1869년 프림 수상은 새로운 왕으로 사부아 왕가의 아마데오를 스페인 왕으로 결정하였다. 그너 아마데오 1세가 스페인으로 도착하기도 전 프림 수상이 암살되었고, 카를리스타들이 일으킨 세 번째 내란으로 스페인이 혼란에 빠지자 1873년 아마데오 1세는 스스로 양위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스페인 우회는 투표를 통해 군주정과 공화정 사이에서 공화정을 채택하고 1873년 제1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10개월 간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고, 쿠바 독립 전쟁이 지속되자 국민들은 강력한 군왕을 바라게 된다. 결국 이사벨 2세 퇴위 직후 왕위 계승 후보자에 올랐던 이사벨 2세의 아들 알폰소가 알폰소 12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당시 17세의 나이로 영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 중인 상태였다.

 

알폰소 12세는 헌법을 고쳐 입헌 군주국의 틀을 갖추었고, 보수당과 자유당 2개의 정당이 의회를 이끄는 정당제가 채택되었다. 알폰소 12세는 28세의 나이로 결핵에 걸려 사망하고 이듬해인 1886년, 그해에 유복자로 태어난 그의 아들이 알폰소 13세로 즉위한다. 

 

1898년,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군함 메인호가 폭발해 미국 해군이 다수 사망한다. 미국은 이것을 스페인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스페인-미국 전쟁을 일으킨다. 스페인의 해외의 마지막 영토를 잃고 몰락한다. 1976년 조사에서 이 폭발은 스페인의 소행이 아니라 보일러실 폭발로 밝혀진다. 스페인은 400년에 걸친 쿠바 지배를 끝내고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미국에 넘거야 했다. 이로써 스페인은 거의 해외 식민지를 잃어버린다. (남은 해외 영토는 모로코의 세우타와 멜리야, 서사하라와 적도기니) 1492년 신대륙 발견과 함께 시작된 스페인 식민지의 역사는 1898년에 400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된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파멸하는 조국의 1898년을 겪은 세대를 98세대라 부른다. 

 

1905년 스페인은 프랑스와 함께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점령하고 있었는데 모로코인이 반란을 일으키자 모로코만은 지켜야한다는 절박함에 온 힘을 쏟아 붓는다. 스페인-모로코 전쟁은 1893년부터 1921년까지 총 3차에 걸쳐 발생하였고 정부는 전력을 다했으나 국민 대다수가 이 전쟁에 반대했다. 특히 카탈루냐 지방의 반대가 심했고 이 지방에 동원령이 내려지자 바르셀노나 노동자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정부는 이를 유혈진압하여 바르셀로나가 화염에 휩쌓인다. 스페인에서는 이를 비극의 한주라고 기록하고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만 모로코에 발이 묶여있던 스페인은 중립을 지킨다. 또한 해외 식민지를 모두 빼앗긴 상황에서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스페인은 세계 대전으 양측 진영에 모두 물자를 수출하여 경제가 개선되었고 금 보유고가 세계 4위에 이를 정도로 재정이 건전해진다. 그러나 1917년 세계대전이 끝나자 경기가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이 총파업이 전국적인 규모로 번져나간다. 이와중에 1921년 제3차 리프 전쟁(스페인-모로코 전쟁)으로 인하여 스페인 병사 1만 3,000명이 사상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하자 결국 1923년 바르셀로날르 비롯해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카탈루냐 총 사령관이었던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혼란을 수습한다. 국왕 알폰소 13세 역시 모든 권한을 리베라 장군에게 넘기고 이 때부터 7년간의 독재정치가 시작된다. 각 주의 자치, 지방 의회, 언론의 자유와 의회를 폐지했다. 1929년 대곻ㅇ황으로 스페인 경제가 더욱 파탄나자 리베라 정권도 공격을 받기 싲가했고 결국 1930년 정권을 내려놓고 프랑스로 망명하였ㅇ며 그곳에서 몇달 뒤사망한다. 

 

1931년 4월, 스페인은 군주제와 공화제를 놓고 투표를 시행했는데 진보성향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공화제가 우수하였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내전의 기미가 보이자 알폰소 13세는 왕권을 내려놓고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후 스페인은 몇시간뒤 공화국을 선포한다. 같은해 제헌의회가 구성되고 그해 12월 새 공화국 헌법읫 ㅓㄴ포와 함께 스페인 제 2공화국이 정식 출범한다. 새 헌법은 헌법 1조에 스페인이 노동자의 공화국임을 천명했다. 또한 정종 분리를 명시했고 이혼과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햇다. (가톨릭ㅇ ㅣ이혼을 당시까지 금지하고 있었음) 군 감축과 노동권 보호 조항까지 추가되자 군부와 자본가들은 저항했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 대로 사회주의적 국가 건설을 위해 더 추구했다. 스페인 전역이 혼란에 쉽싸였고 바스크와 카탈루냐는 독립하고자하는 말도 생기자 파업, 투장, 발낭니 끊임없이 어졋꼬,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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