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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Varsika 2023. 11. 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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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주인공 아름이는 일찍 늙어버리는 조로증에 걸린 환자다. 나이를 따르자면 중학교에 다녀야하지만 아픈 몸으로 인해 학교를 다녀본 기억은 거의 없다. 유일한 친구는 옆집 할아버지 정도다. 아버지 대수와 어머니 미라는 각각 열일곱에 나를 거졌다. 그들의 고향은 충남이었으나 지금은 온 식구가 부천에 살고 있다. 

 

어머니의 친구인 한수미씨는 학창시절 반장이었다. 그의 남편 승찬은 현재 방송국 PD를 하고 있고, 아름의 사연을 프로그램에 소개하여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대수와 미라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이것을 들은 아름의 결정으로 인하여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방송 덕분에 아름은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방송을 보고 연락을 했다며 이메일을 보내준 '이서하'라는 이름의 또래 친구도 얻게 된다. 그렇게 모든 일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 후기(스포일러 포함)

먼저, 글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이 들었다. 장편소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데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경쾌한 리듬으로 읽었다. 슬픈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소소한 재미가 있어 크게 무겁거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물론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충분히, 선명하게 슬펐다. 경쾌한 리듬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가 아이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일 때면 슬픈 상황을 잊고 그저 아이의 일기를 보듯 즐겁게 읽었다. 

 

특히 시종일관 나이에 비해 불필요하게, 그리고 슬프게 담담하고 어른스러웠던 아름이가 서하라는 친구와 연락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땅히 누려야했던 설레는 감정, 이성에 대한 호기심 등이 피어나 하루를 그것으로 채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본 독자는 그 부분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름이가 누군가의 자식이나 환자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아름이'로만 존재했던 순간이었다. 

(아름이는 시종일관 또래보다 어른스럽다가, 펜팔을 하는 순간에만 온전히 소년으로 돌아갔다.)

 

이서하라고 자신의 소개한 여자아이가 사실은 30대 남자였음을, 그것도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집필하는 시나리오에 도움을 얻고자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었음을, 심지어 그런 과정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치명적인 질문을 아름이에게 던졌음을 목격한 순간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는 순간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의 다른 사람들도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상처가 큰 탓인지, 혹은 끝까지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아서 인지 아름이는 자신을 속인 30대 남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오히려 용서한다. (이 무렵엔 아름이의 눈이 실명된 상태라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아름이는 낯선 이를 보고 이서하라고 짐작했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독서모임의 한 분은 그 에피소드가 꼭 이야기에 필요한 것 같았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 '아이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장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름이는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자신의 삶을 대했지만 세상은 아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비정했다. 그 두가지 감정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이가 그린 모든 장면과 풍경이 아름답고 슬펐다. 이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은 김애란의 소설이다. 그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책 속에서 

-. 여름을 여름이라할 때, 나는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11)

 

- . 물에 뜬 물감처럼 죄책감과 우월감이 섞여 가슴팍에 이상한 무늬를 만들어 냈다. (23)

 

-. 늘 있던 정적이고, 피부 같던 고요인데 새삼 어머니는 그것이 버겁다고 생각했다. (42)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50)

 

-. 글쓰기는 매순간이 결정과 서냍ㄱ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자주 멈췄다. 그럴 때면 홀로 북극에 버려진 펭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막막하고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 오전엔 과학잡지를 읽었어. 거기 보니까 우주에서 사람이 터져 죽는 건, 우리 내계이 힘이 외계의 힘보다 커서 그런 거라더라. 그리고 나는 네게 이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대부분 우리 바깥보다 힘이 센 존재들일지도 모른다고. 

* 이 구절을 읽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온 외력과 내력에 대한 대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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