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210822)
- 지금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이어진 전쟁, 학살, 기근으로 삼국지 시기를 전후로 정부가 파악한 인구가 1/7로 줄어든 참혹한 시기였다. 사회체제가 모조리 파탄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시기를 역사가 진수가 <정사 삼국지>로 펴냈다. 난세를 실제로 겪은 진수는 살아남은 승자에게만 집중했다. 도덕적 평가보다 건조한 팩트 중심으로 서술했다. 거기다 진수는 위나라를 계승한 진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위나라가 정통이 아니라고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정사 삼국지에서는 위-진이 역사의 정통으로 서술된다.
-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중국에서는 구전으로 삼국지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를 14세기 나관중이 정리해 탄생시킨 것이 <쌈국지연의>이다. 연의에서는 정사와는 다르게 유비의 촉을 정통으로 선택한다. 이유는 유비가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라는 점, 그리고 후대 군주에 대한 민중의 평가를 볼 때 유비에 대한 평가가 가장 긍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독자들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파트는 정사에는 없고 연의에 추가된 야사다.
* 가령 동탁을 구해준 유비가 의용군이라는 소식을 듣자 동탁이 괄시하는 대목 등 - 정사에는 없으나 실제 인생에서 민초들이 무수히 겪는 일들이 반영된 것이다.
* 조조의 여백사 살해 였기 정사 삼국지에는 없는 허구다.
* 수어지교 "내(유비)가 제갈량을 만난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는 표현은 정사에도 나오는 기록이다.
조조 (210829)
- 조조 왈, "나는 6명의 적에게 포위되어 있다."
여기서 6명의 적이란 원소, 도겸, 원술, 유표, 손책, 마등을 뜻한다.
- 說曺操, 曺操到. "조조를 말하면 조조가 도착한다."
조조의 빠른 기병을 이르는 말.
- "원소가 막강했을 때 나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없었는데 일반 백성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말하며 편지를 불태웠다. (위씨 춘추)
조조가 원소를 평정한 이후, 원소와 내통한 자들의 편지를 발견하였으나 조사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 조조는 항상 가장 유리한 것을 택한다. 지나간 것은 묻지 않는 성격이다. 현재에 발을 딛고 실용을 선택했다. (임용한)
- 조조는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새로운 전략을 제안하며 사기를 북돋았다. 설사 패배를 하더라도 탁월한 감각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그 이후에 결과로서 자신을 입증했다. (임용한)
- 능력위주의 선발 - "조조는 영을 내려 말했다. 오직 재능으로만 천거하라," (삼국지 위서 <조조전>)
조조의 능력위주 선발은 훗날 과거제의 기반이 된다.
- 노숙 왈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조조에게 낮은 관직이라도 받을지 모릅니다. 허나 주군은 항복하면 이 천하에 갈 곳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조조에게 항복해도 살 수 있지만 주군은 다릅니다."
유비
- 책 읽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개와 말, 음악과 아름다운 옷을 좋아했다. (정사 삼국지 촉서)
유비는 실제 가난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돗자리를 팔았다는 기록은 있으나 가난하여 팔았는지는 알 수 없다. 고장에서는 나름 영향력 있는 가문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또한 기록에서 말하는 개는 사냥개를 뜻하므로 유비는 글공부보다는 사냥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 삼국지의 특징 - 등장인물 중 모범샘 없음(임용한)
-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에게 잘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다투어 그를 가까이했다." - 정사 감국지, 촉서 -
유비는 반평생 실패하며 살았으나 관우, 장비를 비롯한 신하들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 유교가 엄격했던 사회에 유비는 넓은 포용력으로 많은 인재를 품었다. 다혈질 법정, 군주와 말다툼을 벌이는 방통, 유비를 두 번이나 퇴짜놓은 제갈량까지. 그리고 유비는 각자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끌려다니지만은 않았다.
- 실제 유비는 군사적인 안목과 판단력이 뛰어났다.
- 보통은 나라를 차지한 후 세력을 키우는데 유비는 10만 명의 마음을 얻는 곳이 곧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관우, 장비
- 관우, 장비는 1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호랑이 같은 시하였다. (정사 삼국지)
여기서 1만 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1만 명을 지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갈량
- 제갈량은 실제 통치와 행정분야의 천재였다. 분지처럼 고립된 촉은 지역감정이 극심했다. 이주민과 토칙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제갈량은 이 모든 것을 관리했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정적인 학자보다는 진취적이고 과감한 인물에 가까웠다.
여포
- 여포는 현재의 내몽골 지역 출신이다. 삼국지 인물 중에서도 유난히 먼 곳에서 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동탁 역시 유목민족 접경지대 출신인데 이들이 맺었다는 부자의 관계는 사실 유목민들 사이에 군사동맹을 목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진 안다(Anda) 수준일 수 있다. 유목민들은 부족단위로 모여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수시로 의형제, 의부자의 서약을 맺는다. 이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부자관계와 같다고는 전혀 볼 수 없다. 따라서 여포를 패륜아로 묘사하는 것은 여포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