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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 2

[충북 보은] 신라의 꿈, 난공불락의 삼년산성 (2부)

- 난공불락의 삼년산성 삼년산성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삼년산군이었던 고간 도도의 활약이나 인근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 때문만이 아니다. 진정 삼년산성이 유명세를 탄 이유는 바로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번도 함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50전 149승 1패라고도 말하는데 정확한 통계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기 김헌창의 난 당시 반란군이 삼년산성에서 농성을 벌이다 토벌된 적을 제외하고는 함락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는 내란 규모의 전투였으니 국가간 전투에서는 함락된 적이 없는 셈이다. 축성 이후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7세기 후반까지 200년 동안 신라의 성으로 남았다. 후삼국 시대에는 후백제 견훤의 세력권에 포함되었는데 왕건이 친히 공략하였으나 실패해 돌아갔다..

[충북 보은] 신라의 꿈, 난공불락의 삼년산성 (1부)

- 기록 속의 삼년산성 충북 보은에 위치한 삼년산성은 5세기 후반(470년) 신라가 쌓은 석축식 산성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기에 삼년산성으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향산성으로 기억되어 있고, 다른 역사서에는 산의 이름을 딴 오정산성으로 전해진다. 삼년산성은 삼국사기에 유일하게 축성시기와 과정이 기록된 산성이다. 이를 통해 삼년산성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5세기 초까지만해도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발전이 늦었다. 광개토대왕 시기 고구려 원군의 도움을 받은 이래로 신라 영토에 고구려군이 주둔하고, 고구려 장수가 신라의 벼슬을 받을 정도로 종속된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신라는 김씨 세습 안정화 등을 통해 자주국가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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