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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예수의 탄생과 기독교의 시작

Varsika 2024. 6. 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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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제국 최초로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지금의 터키 앙카라에서 발견된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에 따르면 42년간 총 3회에 걸쳐 인구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첫 조사에서 로마 시민들의 인구가 약 4백만 명으로 헤아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요셉과 마리아 역시 호적 등록을 위하 베들레헴으로 갔으나 당시 많은 사람이 몰려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마굿간에서 지내다 예수를 낳게 된다. 현재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는 '예수 탄생 교회'가 있다. 이곳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마굿간 동굴 위에 지어진 성당으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예수가 태어났을 당시 유대왕국은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위임받은 헤롯1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문헌에 따르면 헤롯대왕은 기원전 4년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바탕으로보면 예수의 탄생은 기원후 1년이 아니라 헤롯 대왕이 죽기전 기원 6~5년 전 태어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기원후 6세기 신학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사가 예수의 탄생을 잘못 계산하여 기원후 1년으로 전해진 것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지하는 바대로 그는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였고, 배우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쳤다.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이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요세푸스'가 쓴 <유대 고대사> 中

 

예수를 추종하는 자들은 하느님을 신성이라 여기며 로마 황제를 부정했다.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배척했다.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에 예수가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지 예의주시하게 된다. 또한 예수는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켰던 안식일(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와 전투 때는 안식일날 싸우지 않고 항복한 사례도 있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보이며 타인을 돕는 행위는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는 보수적인 유대교인들 입장에서는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지막으로 예수는 하느님 세상이 오면 성전도 제사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당시 제사를 주관하던 대사제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산헤드린이라는 자치기구를 통해서 형벌을 정하였는데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게한 후 유대 속주 총독인 빌라도에게 고발하였다. 당시 사형선고는 오직 로마총독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빌라도 앞에 끌려간 예수는 "당신이 유대인의 왕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지만 자신에 대해 변론하지 않았고 결국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된다. 에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사형 당한 이후에 가르침을 이어가기 위해 유대교에서 분리된 새로운 종파를 만들게 되니 이것이 바로 기독교다. 

 

이후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제자들이 해외로 선교활동에 나서게 된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중심인물이었는데 예수가 베드로에게 자신이 누구냐 물었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있는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답했다. 예수는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정답을 말했다며 하늘 문을 여는 열쇠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첫 교황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드로는 열쇠를 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그의 이름을 딴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은 열쇠 모양으로 건설되었다. 

 

기원후 65년, 로마 5대 황제 네로가 첫 기독교 박해를 일으킨다. 기원후 64년 7월 로마에 큰 화재가 발생했고 이 불을 네로가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는 당시 네로가 로마에 있지도 않았지만 불길한 소문은 계속 퍼져나갔다. 네로는 이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기독교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로 결정한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핵심 신앙은 종말론이었다. 기독교인들은 대화재를 종말론의 시작(곧 하느님의 세상이 열린다)으로 보았다. 이에 화가난 사람들이 네로에게 기독교인들을 고발하였고, 네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해를 가했다. 베드로와 바울 모두 이때 로마에서 순교했다. 그들 외에도 기독교인들은 짐승 옷을 뒤집어 쓰고 개와 싸워야 했고 십자가에 못박혔고 기름을 바른 옷을 입혀 기둥에 묶어 횃불로 쓰기도 했다. 

 

네로의 박해는 비교적 단기간에 끝났지만, 박해 과정에서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닌 별도의 종교인 것이 알려졌고, 로마 제국은 공인된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다. 

 

기독교는 민족간 차별과 계급간 차별(당시 로마 인구의 30%가 노예였고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을 철폐하고자 했다. 거기다 당시 팽배했던 남녀차별을 철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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