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격상의 영향으로 <퓰리처 사진전>이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지난 7월 전시 시작부터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던 인기 전시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움츠러든 전시 시장에 오래간만에 찾아온 대형 전시였기에 기대를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운 좋게(?) 임시 휴관 직전에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예매는 오래전에 했지만 코로나 여파로 인하여 차일피일 관람을 미루다가 광복절과 임시 휴관의 사이에 다녀온 것이다.
많은 사진들 덕분에 관람 시간이 3시간을 넘겼다는 사람도 있었고, 본 것을 다 눈에 담아가지 못할 정도로 즐거웠다는 평도 있었다. 반면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앞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그 점이 불만이었다. 전시 환경은 비교적 쾌적했지만 관람에 앞서 입장대기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2시간 남짓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하여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 "왜 이렇게밖에 운영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의구심에 휩싸였다.
오후에 도착한 나는 대기 번호 303번을 받았는데, 내가 발권한 직후 입장한 관객들은 141번부터 160번 사이의 번호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대기번호 기준으로 한 번에 일행 20팀이 입장했으니 대략 10분에 1번씩 입장을 진행한 것이다. 이 방식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주최 측에서는 대기시간을 줄이려는 노력도, 대기시간을 비교적 쾌적하게 만드려는 노력도 없어 보였다. 나의 의구심이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약 내가 운영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떠올려 봤다.
먼저, 티켓을 굳이 부스에서 발권해야만 할까. 비행기도 모바일 티켓으로 탑승하는 시대에 예술의 전당은 언제나 티켓 발권을 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사전예매를 한 관객들 조차도. 모바일 티켓으로 대체하거나 혹은 키오스크로 무인 발권을 진행할 수는 없을까. 그편이 코로나 시대에 대면 접촉도 줄이고 업무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에도 관객들은 부스 앞에 줄을 서고, 티켓을 건네받고, 다시 대기를 위해 줄을 서야 한다니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대기 중 번호 알림이었다. 대기 공간 내의 키오스크(이건 재미있게도 키오스크가 있었다)가 입장 차례를 알렸고, 오픈 카톡방에서 공지를 띄우기도 했다. 이 점은 굳이 관객이 키오스크 근처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 나름 괜찮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기시간은 알려주지 않았다. 입장 차례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게 모호했다. 요즘엔 식당 예약도 키오스크로 알림받고, 차례가 다가오면 앞서 대기 중인 팀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주는 시대다. 은행처럼 순환이 빠르지도 않은 곳에서 왜 우리는 굳이 번호만을 쳐다보고 있어야만 했을까.
세 번째는 대기 공간이었다. 오픈 카톡방이 있어 자리를 비울 수 있다곤 하더라도 어찌 됐건 대부분의 관객들은 전시관 앞에서 기다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곳은 앉을 곳도 부족하고 즐길거리도 부족했다. 기다림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념품을 파는 곳을 잠깐 둘러보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모자라서 많은 이들이 근처 계단에 쪼그려 앉기도 했다. 그들도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다못해 옥외 공간에라도 벤치를 더 구비할 순 없었을까.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네 번째는 진행요원들의 안내였다. 많은 관객들이 입장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문의했지만, 그들은 사람이 몰리는 것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무니 없이 부족한 설명이었다. 주말에 인기 전시에 사람이 몰린다는 것은 너무나 뻔하고 수없이 반복된 일이다. 특히 코로나로 전시가 많이 취소된 지금 시기에는 살아남은 몇몇 전시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광복절을 기점으로 발효된 탓이라고 설명한 것도 올바르지 못한 설명이었다. 주최 측은 이미 7월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 주말에는 사람이 몰려 일찍 발권을 종료한다고 공지하고 있었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 전에도 긴 대기시간, 예정보다 빠른 발권 종료는 그 전시에서 종종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처음 온 관객들에게는 그들도 그날의 일이 낯선 일인 것처럼 설명했다. 무성의하다고 느꼈다.
다섯 번째는 특별 전시 관람에 관한 것이었다. 해당 전시는 본 전시 이외에 별도의 공간에서 작은 특별전을 운영하고 있었다. 본 전시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였기에 금방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특별전을 볼 수 없었다. 대기 중인 관객 중에서 특별전 관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허용해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관객들의 회전은 더 빨라졌을 것이다. 관람의 연속성과 전시 기획의 의도에 따른 것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왜 특별전을 먼저 볼 수 없냐는 질문에 진행 요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퓰리처 사진전>의 리뷰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전시를 통해 관객과 작가가 소통하는 경험을 주어야 하는데,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최 측의 주관이 마치 작품의 제목처럼 표시되고 있어 오히려 제대로된 관람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주관 짙은 큐레이팅과 관객의 피곤함을 나 몰라라 하는 안내는 아마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상의 단절을 넘어 고립의 시대로 다가서고 있는 요즘, 관객들이 <퓰리처 사진전>에서 조차 외면의 정서를 느낀다면 그것만큼 역설적이고 씁쓸한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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