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 더 현대 서울이 개장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유통업계가 위축된 시기에 일어난 일이라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전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있었는데 현대백화점 6층에 ATL.1(알트원)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시설이 생겼긴다는 것이었다.
유통업계에서 '볼거리'에 투자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세계는 최근 야구단까지 인수했다. 서울 최대, 역대 최고를 노리는 현대백화점 또한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더 서울 현대에 실내 공원과 전시관, 대규모 문화센터까지 고루 갖추었다. 개장을 맞아 열린 알트원의 첫 전시는 <앤디워홀 - 비기닝 서울>이었다.
-. 전시개요
전시명 : 앤디워홀 - 비기닝 서울
전시기간 : 2021년 2월 26일 ~ 2021년 6월 27일
전시장소 : 현대백화점 더 현대 서울 6층 ALT.1
관람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월~목), 금토일은 30분 연장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할인 : 오후 5시부터 현장 구매 50% 할인(중복 할인 불가)
알트원은 백화점 6층에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층 마다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키오스크가 구비되어 있고, 안내원들도 굉장히 많이 배치되어 있어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전반적으로 길을 잃을 위험(?)은 없다. 더불어 손 소독제나 코로나19 관련 안내문(거리 두기, 자리 비우기)이 잘 갖추어져 있어 방역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인상을 준다. 심지어 직원이 에스컬레이터 탑승 시 거리 두기를 안내했다.
전시 구성은 총 6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실크스크린 작품이 많은 1~2관에서는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며 나머지 관에서는 촬영이 가능하다. 무료 오디오 가이드(오디오클립)를 제공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설명도 간편히 들을 수 있다. 전시된 작품은 총 150여 점으로 실크스크린부터 앤디워홀이 직접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 그의 작업실을 재현한 '팩토리'까지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관람문화는 여전히 한심한 수준이고 주최 측도 이를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작품을 관람하기보다는 포토존 앞에서 줄을 서서 촬영에 열중하는 사람들. 오디오 가이드를 듣지 않으면 타인의 대화 소리에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실내와 그것을 제지하지 않는 스태프들. 하나의 설치 미술이나 전시의 작품으로보다 단지 포토존으로 소비되는 전시공간들. 전시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의 한 부분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대 전시의 맹점이 온전히 드러난 전시였다.
특히 앤디워홀의 작업실을 재현한 '팩토리'의 경우에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두었을 정도로 전시 내 비중이 크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다른 작품과의 연결 없이 그저 동떨어진 포토존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앤디 워홀이 메세지가 아닌 이미지로 유명해진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전시가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그의 단순 반복적인 작품에서도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작가의 의도를 해석, 전달했다. 반면에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실제 전시공간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현저히 부족해 보였다. 시각과 청각의 엇박자가 전시의 흐름을 끊어놓는 듯했다.
주최 측은 이 전시를 알리면서 '이탈리아 순회전을 마치고 국내에 상륙한 전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어쩌면 이러한 설명은 이 전시를 '수입 브랜드'처럼 소개하고 싶었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문구가 알트원을 전시를 위한 전시공간이 아니라 백화점을 위한 전시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사실 이 전시로 나를 이끈 것은 11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앤디 워홀 - 위대한 세계展>이었다. 갓 20살이 된 그해에 만났던 그 전시는 이후 나를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현대미술이라는 장르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 전시는 그러한 설렘도, 다시 오고 싶다는 만족감도 주지 못했다.
좋은 전시는 책 읽듯 만나는 전시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전시는 쇼핑하듯 지나갔다. 아쉬운 경험이었다.
이 전시를 찾은 까닭은 2010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났던 앤디워홀 전시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이 전시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남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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