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전북 익산] 익산 백제 왕궁리 유적과 왕궁리유적전시관

Varsika 2021. 10. 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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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익산의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공주의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등 8개 유적으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왕궁리유적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백제 말기 왕궁으로 조성되어 일정기간 사용된 후, 그 자리에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다. 변화 과정에서 정전 건물은 철거하고 땅을 평평하게 고른 후 탑과 금당, 강당, 승방 등을 조성하였다. 왕궁의 중심축과 사찰의 중심축이 일치하며 사찰로 기능이 변경된 이후에도 왕궁의 담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단순한 사찰이 아닌 왕가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찰임을 짐작케하고 있다. 무왕이 사후 익산 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408호로 지정되었다. 

 

○ 왕궁리유적전시관

2008년 개관된 왕궁리유적전시관은 3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보수 과정 사진자료를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야외에는 왕궁리 5층 석탑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던 석제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기단석(건물의 기초부를 구성), 초석(기둥을 받치는 건축부재), 담장석(담장 외부를 구성), 정원석 등이 있어 다양한 석제품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초석 중 상부에 인방을 걸친 홈이 있는 장초석은 백제 말기 익산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한편 왕궁리 오층석탑은 초기 목탑으로 지어졌다 후에 석탑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측되며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통일신라 시대 혹은 고려 초기 등 의견이 분분하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 왕궁리유적후원

왕궁리유적후원에는 방형초석 건물지가 남아있다. 후원의 남측에서 1/3정도 되는 지점에 있으며 기단은 흔적만 남아 있으나 건물지의 중심축이 북문지 중심축과 일치하여 후원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백제왕궁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40m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의 주변부에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점을 미루어보아 격이 높은 건물로 연회나 제례 등을 행하던 누각형태의 건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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