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충남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Varsika 2021. 10. 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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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기념관은 2001년 개관하였으며 회중시계를 비롯한 여러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 윤봉길 의사(1908~1932)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의 우의(禹儀)이다. 11세가 되던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일어난 3.1 운동을 보고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보통학교를 자퇴하였다. 14세 떄 유학자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의 어치서숙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5세가 되던 해에 결혼하였으나 같은해 오치서숙에서 교육을 모두 수료한다. 스승 성주록은 세상에 나가는 제자 윤봉길에게 성삼문의 호 매죽헌(梅竹軒)을 따서 매헌이라는 호를 수료 선물로 지어주었다. 

 

이후 글을 몰라 아버지의 묘를 찾지 못하는 청년의 일화를 계기로 문맹퇴치운동과 농민운동에 전념한다. 20세에 <농민독본> 3권을 저술했고, 21세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꼐 농촌계몽운동을 실천하는 부흥원을 지었다.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不還)라는 출사표를 남기고 고향을 떠났으며, 중국 단둥을 거쳐 1930년 4월 칭다오에 도착했다. 이후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 겸 상하이 침공 전승 축하식이 열리자 폭탄을 투척하여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제거한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오사카 육군위수형무소에 수감된 후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 이사카와현 가나자와 육군공병작업장 곤내 산골 험애지(險隘地)에서 총살 당한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5월 15일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부산을 통해 환국하여 부산공설운동장에서 합동추도식을 올린다. 그해 7월 6일 최초의 국민장으로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묘역 중앙에 안장된다.  

 

 관람후기

전시내용이 아주 알차고 관람환경 역시 쾌적했다. 전시 유품 및 텍스트 또한 풍부하고 다양해 윤봉길 의사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기 민족운동 전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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