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제주] 북촌 너븐숭이 4·3 위령성지와 너븐숭이 4·3 기념관

Varsika 2021. 10. 19.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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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북촌리의 4·3 역사

북촌리는 제주시 조천읍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해변마을이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운동가가 많았고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조직이 활성화 됐던 곳이기도 하다. 1948년 4월 21일 무장대가 북촌리의 선거관리위원소 사무소를 공격하여 선거기록을 탈취했고, 1948년 6월 16일에는 경찰관 2명이 무장대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같은해 12월 16일 북촌리 근방 낸시빌레에서 군인이 주민 24명을 학살했고 이듬해 1월 17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숨지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을 대량 학살했다. 남녀노소 3백여 명이 한꺼번에 희생되었으며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겪었따. 북촌리 주민 대학살은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동·서쪽들과 밭에서 자행되었따. 

 

○ 북촌리의 4·3

다려도 : 북촌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해산물이 풍부한 다려도로 가서 숨기도 했다.

너븐숭이 : 대학살 사건 당시 인명 희생이 많았던 곳이다. 아이들의 돌무덤 몇 기가 당시 매장한 상태로 남아있다.

당팟 : 대학살이 이루어진 장소이며 몇 년 전까지만해도 당시의 탄피가 발견되기도 했다. 

등명대 : 구짓모루 동산에 세어진 등대이다. 비석에는 당시 군인들이 총질을 한 총탄 자욱이 남아있다.

북촌 성터 : 대학살 사건 이후, 무장대의 침입을 막는다는 구실로 토벌대가 주민들을 동원하여 쌓은 성이다.

서우봉 : 일제시대에는 일본군 진지동굴 공사에 주민들이 강제동원되었고, 4·3 당시에는 이 오름에서 주민들이 토벌대에게 총살당하기도 했다. 

 

○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제주 4·3의 상징인 조천읍 북촌리는 학살과 강요된 침물,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를 넘어 이제 진실과 화해, 평화와 상생의 새 역사로 나아가고 있다. 야외에는 위령비와 희생자 각명비, 순이삼촌비와 방사탑(防邪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의 돌탑)이 전시되어 있다. 

* 제주시 조천읍 북촌3길 3 /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 무료

 

○ 순이삼촌 / 현기영 작가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고, 씨멸족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 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게 인간이란 거지." - 현기영, 「제주작가」 22호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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