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야기들/독서

<여름의 빌라>(백수린)

Varsika 2023. 7. 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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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화자의 독백을 통하여 독자도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화자의 독백이 너무도 섬세하고 자세했다. 그 정도가 단순히 기억력이나 취재력에서 비롯된 것을 넘어선 것 같아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진공포장 해두었다가 이야기를 쓰면서 다시 꺼내어 옮기기만 한 것 같았다. (같은 책을 읽은 지인은 그때의 감정을 쓸어 담아둔 것 같다고도 표현했다.)

 

작가의 감정표현에 이리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것이 단순히 정확하다거나 유려해서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 나이때에 느꼈을 법한 감정의 온도(쑥스러움, 부끄러움, 억울함, 설렘)도 함께 옮겨지고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행복했고 문장들이 너무 좋아 아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의 온도뿐만 아니라 장소의 온도도 잘 활용하는데 실제로 계절과 날씨에 대한 묘사가 많고, 장소와 공간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환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독백은 등장인물 간의 대화보다도 오히려 독자를 차분히 집중하게 만든다. 실제 내가 그 공간에 함께 한다는 느낌을 준다. 

 

* 몇년 전, 박상영의 소설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낌 감상은 '뭔진 모르겠는데 엄청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게 되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굳이 따지다면 불닭볶음면이나 닭발 같다고 할 것이다. 그에 비해 백수린은 자극적이지 않으나 한 번 입이 닿게 되면 끝까지 잔을 비우게 되는 차茶 같은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 무언가 가득 찬 느낌을 받기보다는 비운다 느낌이 든다. (백수린의 글에 어찌 '가득'이란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

 

<시간의 궤적>

크게 웃다가도 심야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떄면 마음을 박탈당한 사람처럼 공허해지던 나.

 

언니는 프랑스에 한시적으로 머물다 돌아갈 사람이고 나는 여기에 남을 사람이라는 사실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은 듯했다.

 

행복에는 정해진 양이 있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여름의 빌라>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고요한 사건>

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말들은 끈끈하게 내 발바닥에 들러붙어 어디든 걸을 떄마다 쩍쩍,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나와 무호의 삶이 교차할 수 있는 순간으 ㄴ너무나도 짧고, 우리는 이제 몇 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며, 더이상 우리의 인생은 겹쳐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내가 너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 폭설 >

그녀의 엄마가 남들과 다르다는 건 검은 강물 위를 부유하는사금처럼, 창백한 겨울밤에 댕겨진 불꽃처럼, 명백한 사실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어쩌면 미국에 갈 때마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엄마의 불행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사라지고 난 이후 그녀에게 생긴 커다란 구멍처럼 엄마에게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생겼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흑설탕 캔디>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든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 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선주는 "너도 소중하지만 새 친구들도 똑같이 소중해"라고 나에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똑같이'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느라 봄을 온통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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