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쇼코의 미소>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지만 이 책은 뭔가 다 읽고나서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모든 이야기에 담겨있다. 그 부분이 좋기도 했지만 <쇼코의 미소>를 읽고 기대한 것과는 달라 처음엔 시간이 필요했다. <쇼코의 미소> 느낌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파종>, 그리고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아무리 봐도 최은영 작가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실과 갈등, 회복과 치유에 대해서 혹은 상대방이 영원히 상실된 이후에 남겨진 이가 그 관계, 시간과 스스로 화해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상실된 후에 남겨진 이들이 그 시간과 어떻게 화해하는지 조명하는 것은 읽을 때마다 늘 고마움이 든다. 그 이야기 자체가 어린 시절 자신에 대한 애도이자 위로이고 현재의 자신에게 건네는 최선의 응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 자체가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주는 파동과는 별개로 이야기 속에서 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감정을 묘사하는데도 정말 탁월한 것 같다. 그리고 독백처럼 흘러가는 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중에는 꼭 맥락과 장면을 정확히 설명하는, 하나로 명중하는 언어가 있다. 가령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다."라던가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 나오는 "따뜻한 통증이 기남의 등과 배에 퍼져나갔다."가 그렇다. 이 표현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읽어왔던 이야기와 감정이 단숨에 정리되고, 이윽고 다른 표현으로는 저것들을 대체할 수 없구나 생각했다.
단편들의 이야기가 모두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다보니 여러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모두 한사람처럼 느껴진다. 단지 공간과 나이만 달라진 채 한 인물의 서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보니 어떤 순간에는 그 이야기별로 인물들의 경계가 흐릿해져 그저 한 여성의 이야기로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한 착각은 <답신>에 이르러 '어떻게 한 인간에게 이런 비극이 모조리 몰려올 수 있나'라는 감정의 체증을 만들기도 했다. 그 부분이 조금은 힘들었고, 그러나 그대로 책을 덮을 순 없어 끝내 이 책을 단숨에 다 읽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그때는 뭔가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내 '몫'을 다했다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해설>
최은영의 세계가 지금껏 포착해왔다고 알려진 내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파동을 개인들 사이의 사적인 문제로 축소해서 살펴서는 안 된다. 최은영의 작품은 언제나 미묘한 파동이 만들어진 원인으로 여러 사회 조건 및 역사적,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짚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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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인물들이 특별히 더 작고 연악하게 느껴진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작고 연약한 면을 최은영의 소설이 기민하게 포착할 줄 안다고 해야할 것이다. (중략) 최은영의 인물들은 약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스스로를 성찰하기를 망설이지 않음으로써 회복하는 자리에 있고자 한다.
<작가의 말 中>
- 나는 여러모로 결핍이 큰 사람이었고, 어려서부터 삶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벌처럼 느낀적이 많았다. 그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포장할 때 조차 그랬다. 그런 내가 나의 결핍에 감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쉽게 점프하여 갈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나는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풀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 (한 인터뷰에서 발췌) 글을 쓰는 것 역시 하나의 노동일뿐, 글쓰기가 다른 노동에 비해 고귀하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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