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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세계: 이란을 보는 눈 -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드림렉쳐 초청특강)

Varsika 2023. 9. 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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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국고등교육재단 영상(본문 하단 링크)을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영상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을 하면서 추가한 내용입니다.

 

 

○ 이란에서 시작된 조로아스터교

우리에겐 배화교로 알려져 있지만, 불을 숭배하는 종교는 아니다. 단 불이 신의 상징으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란은 대대로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7세기 이후에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지금은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이란 Yazd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사원(Temple of Fire), 1,500년간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인류 최초의 유일신 종교였으며, 여기서 신, 사탄, 영혼, 천국, 지옥, 구세주, 부활, 최후의 심판과 같은 개념이 나왔다. 이후 유대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러아스터교는 조장 풍습으로도 유명한데, 현대에 와서는 전염병 등의 우려로 인해 더이상 조장을 하지 않는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좌측 하단의 이븐 루슈드(이베리아 출신 무슬림)와 우측 하단의 조로아스터(자라투스투라)

 

조로아스터교의 상징 프라바시(Fraavashi)

조로아스터교에서는 3가지를 강조한다. "올바른 생각과 말, 행위가 천국으로 이끈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이는 프레디 머큐리 집안이 조로아스터교를 믿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머큐리의 집안 파르시(인도에 거주하는 페르시아의 후예이자 조로아스터교인)였고 인도를 떠나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머무를 때 프레디 머큐리카 태어났다. (추가 끝)

 

 

- 쿠로슈 대왕(고레스 대왕, 키루스2세)

아케메네스 제국의 초대황제로 바빌로니아를 정복하여 당시 노예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쿠로슈 대왕의 무덤. 조로아스터교는 조장을 하기 때문에 무덤안에 시신을 매장하지는 않는다. flickr @davor

 

- 쿠로슈 실린더(키루스 실린더)

 

▷ 쿠로슈 실린더는 1879년 이라크 바빌론 신전 벽 속에서 발견된다. 길이 23cm 지름 10cm 크기로 쐐기문자를 해독하면 "제국 내 여러 민족에게 종교의 자유를 준다. 포로는 돌려보낸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피지배 민족의 종교의 자유와 해방을 명시한 내용 덕분에 어떤 학자들은 쿠로슈 실린더를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추가 끝)

 

본래 제국은 어떤 종교를 국교화하면 안 된다. 제국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 수 있어야 한다. 로마 역시 그리스도교를 국교화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페르세폴리스

쿠로슈 대왕 때 계획했다가 후대에 만들어진 곳으로 여름용 궁전이라는 추측이 있다. 훗날 알렉산더가 이곳을 침공하면서 모두 불타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다.

 

- 낙크시 에 로스탐(Naqsh-i Rustam)

영화 300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의 묘가 있다. 크세르크세스 역시 그리스식 발음이다.

 

 

○ 이란의 위치와 지리

이란은 한국으로부터 비행기로 10시간 거리에 있다. 그러나 현재는 직장이 없어서 더 먼 두바이까지 간 다음에 그곳에서 환승하여 이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란은 아라비아 반도에 인접해있고 자그로스 산맥과 엘부르즈 산맥에 둘러쌓인 분지지형이다. 수도는 테헤란이며 30개의 주로 이루어져있다. 한반도보다 7배 정도 크고 인구는 8800만 정도이다. 석유와 가스 등 풍부한 에너지원을 가진 나라다. 고원지대로 유명한데 수도 테헤란에서 스키를 탈 수 있을 정도다. 

 

 

○ 이란의 민족구성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전체의 60% 수준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민족주의로는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란 정부는 다른 나라의 언어는 외국어로서 교육하지만, 페르시아어가 아닌 이란어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즉, '이란어'라고 할 경우 다양한 언어가 한 데 묶여있으므로, '페르시아어'를 말하고자 싶을 때는 '페르시아어'라고 불러야한다.)

 

이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국가를 통합하고자 하며, 실제로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이슬람은 민족주의를 모른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페르시아 문화권 국가

 

1. 이란 / 파르시(페르시아어) / 시아 95% / PPP 16,484

2. 아프가니스탄 / 다리, 파슈토 / 순니 90% / PPP 1,665

3. 타지키스탄 / 타지키어 / 순니 95% / PPP 4,288

 

아프가니스탄 다리어와 이란 페르시아어는 소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페르시아어와 타지키도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하다.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토어도 페르시아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이나 분화된지 오래되어 현재는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 

 

 

○ 한국과 이란

과거 한국과 이란은 사이가 좋았다. 강남에 테헤란로, 테헤란의 서울로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고, 우리나라 주몽과 대장금이 수출되어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페르시아어는 독일어와 마찬가지로 J를 'ㅇ'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대양금'이라고 부른다.)

 

서구 드라마의 경우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부분을 검열, 삭제하는데 반해 한국의 사극은 그런 부분이 없어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이 인기 비결 중 하나이기도 했다. 

 

 

○ 이란의 등장

페르시아 언어는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다. 한계에서는 터키의 코카서스 산맥에서 인도/유럽어 조상들이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이란으로 남하하면서 자리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이란의 국호

파르사(Parsa): 고대 이란 쐐기문자에 나온 표현 

페르시스: 파르사를 그리스식으로 읽은 것

페르시아(Persia): 페르시스를 라틴어식으로 읽은 것

파르스: 현대 이란에서 부르는 말

아르야: 고대 '아리안'을 페르시아에서 부른 말. '고귀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도와는 반대로 아리안이라는 표현이 계급적 성격을 띄지 않았다. 인도와 다르게 선주민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 사람들은 스스로를 페르시아라고 부르지 않았고 '아리안'이라고 불렀다. 

이란: 현재의 국호

 

- 이란의 왕조

(1)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9~330)

하카마니시(Hakhamanish) 왕조이나, 그리스인들이 이를 발음하지 못해 아케메네스 왕조라 불렀다. 

 

(2) 파르티아(Parthia, 기원전 250~ 기원후 226)

이란에서는 파르사바(Parthava)라고 불렸으나 그리스인들은 이 역시 파르티아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특이하게 안식(安息)이라 불렀는데 이는 초대 왕인 '아르사케스'를 음차한 것이다. 

 

(3) 사산조 페르시아

(4) 파사(波斯)

 

○ 샴솟딘 모함마드 하페즈(1325~1390)

이란의 시성이라 불리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시인.

 

○ 사파비 왕조(수도: 이스파한)

 

이스파한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카주 다리(Khaju bridge) 야경으로 유명하다.

이슬람 세계가 터키의 오스만 제국, 인도의 무굴제국, 이란의 사파비 제국 3개의 제국으로 이루어졌을 때 그 중 한 축이 바로 이란이었다.

 

○ 이란의 종교

아르메니아 교회, 유대교 회랑도 이란 내에 존재한다.

 

○ 이란과 석유, 그리고 1979년 혁명

세계 최초로 석유가 발견된 곳이 이란이다. 그리고 이 석유를 바탕으로 영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한다.

 

- 모사데크 총리

그러나 영국은 이란 석유로 얻는 수익의 약 14% 정도만 이란에 지급했다. 이에 분개한 이란 여론을 받아들여 총리였던 모사데크는 이란 석유를 국유화해 버린다. 미국과 영국은 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크를 축출한다. 

 

- 이란의 개혁

쿠데타 이후 이란 왕정은 미국의 개혁프로그램을 받아들이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고, 결국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을 끝으로 이란의 왕정은 폐지된다. 1979년 이후 이란은 공화정이자 세속정이 아닌 이슬람정을 채택하게 된다.

 

▷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 1980년 이후 주이란 미국대사관을 철수하였으며 지금까지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란내 미국인을 위한 업무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처리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구글맵에서 주이란 미국대사관을 검색하면 스위스 대사관이 나온다. (추가 끝)

 

- 시아파와 마흐디

맛지드 잼카란 모스크

시아파에서는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는 하느님이 마흐디(구원자)를 보내줄 것이라고 믿고있다. 맛지드 잼카란은 바로 그 마흐디가 나타날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고, 실제로 1979년 혁명 이후 호메이니옹이 해외에서 귀국하자 일부 지지자들은 그를 가르켜 기다려왔던 마흐디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이란의 핵개발

2002년 이란 내 반정부 단체의 폭로로 인하여 이란의 핵개발이 공개되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경제제재를 가했고, 2015년에 핵협상에 나서가 된다. P5+1(상임이사국 5개국 + 독일)이 협상에 참여했고, 이란은 평화적으로만 핵을 사용하고 20% 이상 우라늄 농축을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2018년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협상을 파기해버렸다. 

 

핵 협정이 성사된 2015년 7월에는 1달러 = 32,370 이란 리알이었으나 2023년 6월에는 51만 이란 리알로 리알화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50만 리알이면 테헤란 공항에서 리무진 택시를 타고 테헤란 시내로 들어갈 때 지불하는 금액이다. 이 금액이 이제 1달러 수준으로 폭락한 것이다.

 

 

○ 이란의 여성들

이란의 젊은 세대들은 1979년 혁명 이후 민주공화정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슬람 공화정이 들어섰고 새로운 정부는 여성들에게 히잡을 써야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여성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고 소리쳤다. 

 

"우리는 히잡을 쓰기 위해 혁명을 한 것이 아니다.", "이란은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축구경기장에서도 여성 관객의 입장이 금지되어 있다.

 

이란 축구의 영웅 알리 다에이도 히잡 반대 시위에 지지를 표했다가 체포되었고,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1996년 이란이 한국을 6-2로 대파할 때 무려 4골을 넣은 선수다.

 

○ 이란의 미래

이란은 5천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다. 1979년 이후 잠시 바뀌었을 뿐이다.

 

- 이란이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이유

1979년 혁명 당시 이란의 구호는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하라"였다. 초기 혁명은 왕에게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혁명 이후 이란은 팔레스타인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것이 이란이 국가적 아젠다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이란은 레바논 남부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수니파인 하마스 역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서 지원하게 된다. 

 

- 다민족 국가 이슬람

다민족 국가라면 가장 좋은 방식은 연방제이나 이란은 이것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슬람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분리주의자들을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미국 등 적성국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란 히잡 혁명 때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분리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히잡 시위 자체만으로는 사형까지 선고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파악된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

 

- 여성 인권

이슬람 근본주의 자들은 여성의 자유를 (이슬람의 가치가 아닌) '서구의 문화'라고 보고 배척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여성의 인권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xEEEmwpRs&list=WL&index=3&t=66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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