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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중동 기자에게 듣는 탈레반의 역사와 실체(터키 알파고, 매불쇼)

Varsika 2021. 8. 28.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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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진행한 아프가니스탄 사태 해설(링크)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왕국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남하하게 되고, 아프가니스탄을 넘으면 바로 인도였다. 때문에 영국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고 아프가니스탄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힘겨루기(The Great Game)를 하게 된다.

(역자주)
아프가니스탄은 1823년부터 1926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아미르 국(아프가니스탄 토후국, Emirate of Afghanistan) 혹은 비라크자이 왕조(건국자가 비라크자이族)로 불렸으며, 1926년부터 1973년까지는 아프가니스탄 왕국(Kingdom of Afghanistan)으로 불렸다.

1800년대 중반부터 영국과 3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1879년 간다마크 조약을 거쳐 영국의 보호국(외교권 박탈)이 되었다. 현재의 국경선인 듀런드 라인도 비슷한 시기인 1893년 확정된다. 1919년 제3차 영아전쟁을 거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낸다.

<19세기 영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사건>
1757년 플라시 전투발발. 영국의 승리, 벵골에서 프랑스 세력 제거
1765년 알라하바드 조약, 벵골, 오리사, 비하르 3주의 징세권 영국에게 양도
1767년 동인도회사 인도지부 설립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발발
1813년 인도 무역 자유화 법안, 동인도회사의 독점권 박탈(정부 개입 강화)
1833년 동인도회사 아시아 무역 독점권을 영국 정부가 회수
1839년 제1차 영아전쟁, 영국군의 철수(~1842)
1857년 세포이항쟁
1858년 인도제국 전환(영국의 직접통치로 전환)
1878년 제2차 영아전쟁, 영국군의 승리(~1880)
1879년 간다마크 조약, 아프가니스탄의 외교권 박탈
1893년 듀런드 라인 협정, 아프가니스탄의 영토, 인구 상당수를 현재의 파키스탄에 할양
1919년 제3차 영아전쟁, 아프가니스탄 독립


1973년, 왕의 사촌동생이자 아프가니스탄 왕국 5대 국무총리였던 모하마드 다우드 칸은 진보성향 군인들과 합세해 쿠데타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보에 전통적인 이슬람 종교 세력은 동조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군부의 불만도 커져갔다. 결국 그는 1978년 발발한 쿠데타(4월 혁명)로 인해 살해된다. (역자주 - 그의 시체는 사후 30년이 지난 2008년에야 발견되었다.)

새로 집권한 군부는 아프가니스탄 인민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물론 뒤에는 소련의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종교 세력과 군부정권의 갈등이 심화된다. 종교 세력들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적인 세력이니 달가울 리 없었다. 군부는 소련에 지원 요청을 하게 되고 결국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역자주 - 이때 공산주의에 반대한 이슬람 무장세력이 바로 무자헤딘이다.)

미국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소련의 힘을 빼고 싶었다. 베트남에서 당했던 것의 복수로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반군)들을 지원한다. 간접지원을 위한 중간책으로 오사마 빈 라덴(당시 무자헤딘)을 활용했다. 아프간 내의 여러 세력들 중에서 탈레반은 미국이 가장 선호했던 조직이었다. 탈레반은 이름 뜻 그대로 학생들 출신이 많았고 대부분이 고아였다. 이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다른 조직에 비해 통제가 쉬웠다. (역자주 - 소련은 1989년 철수했고 탈레반은 1994년에 결성되었다.) 탈레반은 1996년 결국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탈레반의 과격성은 그 이후 적나라하게 나타나는데, 정권을 잡자마자 여성의 교육권을 박탈해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제적은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는데, 2001년 3월에는 유구한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폭파시켜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폭력적인 단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되기 시작한다.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석불(출처 : https://en.qantara.de/)


미국은 소련 해체 이후 중동과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9.11 테러가 일어나게 되고, 이를 빌미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침공 전에 탈레반에게 알카에다의 신병을 요구했지만 탈레반은 거부한다. 그들의 관습법 때문이었다. ("손님이 오면, 손님이 직접 떠날 때까지는 떠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후 탈레반 정권은 금방 무너졌고, 미국은 아프간 내의 세속주의자와 온건파를 모아 친미정권을 수립한다. 그러나 이들은 부패가 일상화된 사람들도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었다. 결국 미국은 20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철수하게 된다. 탈레반이 다시 집권할 것이 예상되자 아프간 내 친미 인사들, 반탈레 반파는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 미국은 터키에게 아프간 난민의 수용을 요청한 상태다. 터키 내부에서는 강한 반발이 있다. 이미 5백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역자주 - 터키는 아프간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이란과 접하는 국경에 240km가 넘는 콘크리트벽을 건설 중이다. )

알파고(유튜브 채널 '대한중동놈' 운영)
본명은 알파고 시나. 터키 출신이다. 터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 카이스트로 유학을 온 것이 한국과의 첫 만남이다. 이후 국제정치에 흥미를 느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해 졸업하였으며, 서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10년부터 터키 최대 민영 언론사인 '지한 통신사'에서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2016년부터 이어진 터키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지한 통신사가 강제 해산되었고 알파고는 2018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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