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문화 리뷰

[전시] 환기미술관과 김환기 화백

Varsika 2021. 10. 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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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김환기의 작품세계는 1950년대 중반까지의 도쿄와서울시대, 이후 60년대 초반까지의 파리와 서울시대, 그리고 1963년 이후 별세할 때까지의 뉴욕시대로 나눌 수 있다. 

 

도쿄시대(1933~37)

 

서울시대(1937~56)

김환기의 서울시대 작품들에는 전통기물과 자연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사학자 윤난지 교수는 그 자연들도 상감청자의 운학문 등 한국 전통기물의 유물에서 따온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즉, 김환기는 서구 추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인화와 한국 전통공예에서 자연을 매우 추상화된 간략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계승한 것이다.

 

감환기는 직접 시를 쓰기도 했는데 <신천지> 1949년 2월호에 발표한 <이조항아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백자대호'로 불린 굽이 좁고 크고 둥근 백자 항아리가 오늘날 '달항아리'라는 시적인 이름으로 불리며 한국 미(美)의 대표로 자리잡게 된 중심에는 바로 이렇게 항아리와 달을 짝지은 김환기 그리고 그의 벗인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있었다. 

 

파리시대(1956~59)

 

서울시대(1959~63) 

 

뉴욕시대(1963~74)

김환기는 서울시대까지 해온 활동들로 명성을 얻었고 미대 교수로서 많은 벗들과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  명성과 지위를 뒤로하고 현대미술의 전쟁터와도 같은 뉴욕로 떠나 실험을 계속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

김환기는 생전에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그리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점은 광채의 여운을 남기는 별인 동시에 울림의 여운을 남기는 소리이자 음악 또는 그리움의 여운을 남기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은 그의 예술세계를 가리켜 "한국적이며 세계적이며 그리고 우주적인" 스타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환기미술관

1992년 11월 개관하였으며 '프리환기(Prix Whanki)' 공모전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있다. 환기미술간의 미래 비전은 "예술로써 활동하는 사회로의 꿈"이다. 환기미술관 입장료 수익의 일부는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환기미술관 예술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사용된다. 

 

* 본 포스팅은 대구미술관 소식지 2018 Vol.05, 환기미술관 팜플렛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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