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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아프간 사태로 보는 이슬람 문화 정리! with 알파고 | 중동,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식Play)

Varsika 2021. 10. 28.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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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윤의 지식Play 9월 7일 방송(8월 30일 미군 철수완료, 8월 31일 탈레반 자유의 날 선포)

 

(알파고) '아프가니스탄 여행지' 혹은 '아프가니스탄 관광지'라고 검색하면 14세기부터 15세기 무렵 술탄국들이 만들었던 대학교와 아름다운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이것들만 보면 우리가 당시 이 지역이 부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이 역전된 것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부흥과 관련있다. 아프가니스탄 서쪽의 지역을 오스만 제국이 통일했고 그곳의 실크로드와 스파이스 로드(향신료 무역로)를 통제했다. 이로 인해 16세기 이후 아프가니스탄 지역 경제는 쇠퇴하게 되고 술탄국들은 약탈 경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국가다. 한국이나 아일랜드처럼 대륙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대륙의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여러 민족이 섞일 수 밖에 없다. 여러 민족 중 파슈툰 족이 42%로 가장 많다. 파슈툰족은 이란 계통의 민족이다. 파키스탄에도 파슈툰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내의 파슈툰족 보다 2배 가량 많다. 이처럼 중동은 지정학적으로 단일민족 국가가 성립하기 어렵다. 키르기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은 각각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이 70% 이상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것 역시 과거 스탈인이 인위로 민족을 이동시킨 덕분에 가능했다. 

 

(김지윤)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인 <연을 쫓는 아이>라는 소설을 보면 파슈툰족과 하자라족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이 파슈툰족이고 그와 모유를 함께 나는 하자라족 아이가 나온다. 모유를 나누었기 때문에 두 소년은 형제처럼 지낸다. 소설 속에는 하자라족에 대한 핍박과 억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국가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아왔기 때문에 아프간의 상황이나 문화가 익숙하지 않다. 

 

(알파고) 중동의 문화에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동에서는 모유를 나눈 사람과는 결혼도 할 수 없고, 파슈툰족은 자신의 모유를 하자라족(시아파의 12이맘파를 믿는 소수민족)에게 나누지 않을 것이다. 하자라족은 아프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민족이다. 약 10%를 차지한다. 이들은 몽골계통이다. 몽골계통 중에서도 유일한 시아파이고, 아프간 내에서도 거의 유일한 시아파라고 할 수 있다. 

*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계승자로 여김. 반면 수니파는 역대 칼리파를 계승자로 여김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의 <상상된 공동체>라는 책을 보면 다민족 국가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여러 민족들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거부하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을 통해서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 아프간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결집된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왕은 자히르 샤(1914-2007)이다. 국무총리이자 사촌동생인 다우드 칸이 쿠테타를 일으켜 자히르 샤를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 초대 대통령에 오른다. 1973년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수립된 것이다. 그러나 다우드 칸 역시 대통령이라는 이름 하에 전제군주처럼 집권했고, 이에 실망한 군인들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카불의 급진적인 개화바람(여성들의 미니스커트 등)에 반발한 지방 신학자들이 합세하여 1978년 다시 쿠테타를 일으킨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을 수립한다. 그러나 곧이어 공산주의자들과 신학자들이 다시 다투게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유를 인정하지 않고 이슬람에서는 사유가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사유를 통해 그가 선한지 선하지 않은 지 시험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항의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공립학교는 무신론을 가르치는 상황에 이르자 지방의 신학자들은 공산주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프간에서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단지 카불의 정권을 잡았다는 것을 말한다. 아프간은 과거부터 꾸준히 사실상 봉건제로 운영되었고 여전히 중앙집권 시스템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때도 그것은 단지 카불의 일이었다. 1%도 안되는 여성들의 삶만 달라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방에서는 여성들이 부르카를 쓴다.)

 

아프간에서는 전통적인 공산주의 세력이 없었고 단지 카불에서만 정권을 잡은 위태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위기를 느낀 아프간 정부가 소련에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다민족 국가였던 소련은 초기 군사개입을 주저한다. 특히나 1968년 프라하의 봄(체코슬라바키아의 자유민주화 운동이 소련의 침공으로 저지됨) 이후에는 타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내부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아프가니스탄 성직자들은 충격에 빠진다. 종교를 없애려는 하나님의 적들이 이슬람의 땅을 침략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자헤딘(게릴라 의용군)이 탄생한다. * mu(~하는 사람) + jihad(성전) + in(~들) = 성전을 하는 사람들 = 무자헤딘.

 

무자헤딘은 공식기구나 조직이 아닌 일반적인 단어다. 이들도 통일된 조직 하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종파별로, 지역별로, 학교별로 생겨난다. 삼국지로 치면 반(反)동탁 세력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무하마드 오마르(미상~2013)도 있었다. 그는 신학자로 이슬람 율법 공부를 위해 파키스탄에 유학(당시 아프간은 공산주의 국가였으므로)가 있는 상태였다. 대소 항전에서 뛰어난 전공을 올려 유명세를 떨치게 되고 소련 철수(1989년 2월 15일) 이후에 벌어진 무자헤딘 군벌간 분쟁에서도 주둔한 지역의 치안 유지에 성공한다. 결국 세력이 점차커저 1994년에는 탈레반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이후 갈수록 세력이 확장되어 1996년에는 카불까지 점령한다. 

 

미국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위해서 중간책을 활용했다. 그 중 하나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오사바 빈 라덴은 아프간 서비스센터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MAK라고도 알려진 이 단체가 바로 알 카에다의 근간이 된다. 소련을 견제하고자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아 훈련을 진행했고 서방 세계의 지원금을 아프가니스탄 내 무자헤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아프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또다른 이슬람 국가인 수단으로 넘어가서 거기서 알카에다를 선포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에리트리아, 소말리아 등에 개입) 이후 미국의 폭격으로 입장이 난처해진 수단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에게 출국을 요청했고 마친 이 시기가 탈레반이 카불의 점령한 시기와 맞아떨어져 다시 오사바 빈 라덴은 아프간에 돌아온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간을 공격하고 전쟁 발발(10월 7일) 한달여 만에 아프간은 항복한다.(11월 19일) 1990년대는 테러 활동이 왕성하던 시기였다. 소련 붕괴(1991.12.26 해체)와 유고 붕괴(1992.4.28 해체)가 일어나자 체첸, 보스니아 등 독립을 요구하는 지역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테러 조직들인 이들을 고객삼아 외화벌이를 시작했다. 알카에다 역시 이때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아프간의 탈레반 정부가 무너지자 이동하여 이라크를 본거지로 삼게 된다. 이들 중 일부가 오늘날 IS로 재탄생하게 된다.

 

IS 호라산은 IS의 아프간 지부라고 보면된다. 호라산은 '태양의 땅'이라는 뜻으로 역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변 지역을 호라산이라고 부르곤 했다. IS가 2021년 8월 26일 카불 공항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IS 입장에서는 탈레반은 이제 이교도다. 미국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IS 호라산과 탈레반은 현재 치고박고 싸우고 있다. 

 

(김지윤) 과거 개방적이고 융성했던 이슬람,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 왜 폐쇄적으로 변하고 몰락하게 되었는가? 

 

(알파고) 첫 번째로 대항해 시대에 무슬림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유럽은 이때 엄청난 부를 챙기게 되었다. 무슬림들이 방심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당시 유럽에 비해서 앞선 교육과 과학기술을 갖고 있던 이슬람이 개혁의 시기를 놓친 것이다. 유럽에서는 보수적인 기독교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이것이 교육개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러한 개혁의 시기를 놓쳤다. 실제로 10세기 이븐 시나(학문의 왕으로 불린 중세 이슬람 철학자이자 의사)가 쓴 의학서가 17세기까지 유럽 대학의 교과서였다. 유럽과 몇 백년 차이가 날 정도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마치 청나라처럼 한참 후에야 뒤쳐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경제적 몰락이다.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된 이슬람 세력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실 원리주의 이슬람이 생겨난 것은 13세기 몽골의 침략 때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후에도 한참 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이븐 타이미야라는 시리아의 법학자 겸 신학자가 원리주의를 가르쳤으나 결론적으로는 아웃사이더로 비판받는 학파였다. 그러나 이후 제국주의 시절이 되면서 원리주의가 고개를 들게 된다. 실제로 지금도 이슬람 원리주의가 문제가 되는 나라들을 보면 식민지배를 강력하게 받았던 곳들이다. 실제로 영국은 이슬람 식민지들에 대해서 저항의 싹을 자르기 위해 신학교 교사들을 죽였다. 사료에 따르면 영국의 입장에서는 저항군의 장군보다도 신학교 교사들이 제거의 우선순위였다. 영국은 이 방법을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던 네덜란드에 전수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식민지배를 받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종교 지식인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종교는 극단적이고 무지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이것이 현재 우리가 보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씨앗이다.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던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런 원리주의문제가 없다. 터키가 그러하다.

 

와하비즘은 18세기 중엽부터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이슬람교의 복고운동파를 지칭한다. 이슬람에서는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지는데 수니파 안에도 크게 4가지 종파가 있다. 하나피파, 샤피이파, 말리크파, 한발리파가 그것이다. 이 중 하나피와 샤피이가 가장 많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 신자는 주로 이 2개 종파라고 볼 수 있다.  (하나피파에서는 새우를 먹을 수 없다.) 이 2개 종파에서는 아직 테러리스트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말리크파는 북아프리카 일대와 사막에 사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한빌리파는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에 주로 퍼져있다. 한빌피파 안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파가 살라프파인데 과거 이슬람 근본주의의 시작인 이븐 다이미야가 여기에 소속된다. 가장 극단적인 살라프라 직전에 있는 것이 와하비파이다. 

 

(김지윤) 왜 미국이 탈레반과 손 잡았을까? 미국이 제대로 아프가니스탄을 운영하지 못한 것 같다. 디테일이 없는 것 같다.

 

(알파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무시했기 때문에 디테일을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외교정책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영국은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고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현지에서 전문가를 양성하기도 한다. 또 자국에 우호적인 현지국가의 위정자들도 양성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준비가 없었다. 만약 미국이 디테일을 알고 싶었다면 미국 내에만 해도 어마어마한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가이드 라인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처음에 손을 잡은 하미르 카르자이(아프가니스탄 초대 대통령, 2004~2014)도 배경은 괜찮은 인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마지막 왕과 같은 부족) 그러나 돈을 밝혀 부정부패가 너무 심했다. 그나마 하미르 카르자이는 부족에 기반한 지지세력(리얼 마피아)이라도 있었지만 2014년부터 집권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지지세력도 없었다. 그냥 카불에서 잘 나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결국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에 항복 후 망명했다. 둘 다 파슈툰 출신이다. 

 

미국의 철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신의 한수였다. 미군 철수로 가장 골치 아파치는 곳은 이란과 중국이다. 탈레반이 정권을 제대로 잡으면 이란이 제일 먼저 골치가 아플 것이다. 종파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위구르 문제로 골치를 썩게 될 것이고 러시아와도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이란은 종파로 인해서 이슬람 세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슬람 모임에 가도 아무도 이란인과는 악수를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을 수립하려고 도모하고 있다. (터키도 시리아를 위성국가로 만들려다가 들통났고, 파키스탄도 아프가니스탄을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노력 중)

 

- 국민저항전선

아흐마드 마수드 2세가 이끄는 국민저항전선은 아직(방송일 기준) 본격적으로 탈레반과 교전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들은 수 십년간 아프간 북쪽을 통치해온 세력이고 지지기반이 단단하다. 따라서 탈레반도 이들과 협상을 할 지 무력으로 정복할 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탈레반이 후자를 택한다면 타지크족들은 무조건 싸울 것이다. 비 파슈툰 동맹이 형성될 수도 있다. 

 

- 중국

중국은 탈레반과 협력한 수준은 아니고 단지 인사만 한 수준이다. 현재 이슬람 세계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위구르 이슈로 인해 아주 좋지 않다. 지금은 탈레반도 안정화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다. 혁명 초기에는 항상 로맨티즘이 있고 사상이 먼저다. 그러나 혁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는 국익 우선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탈레반 내부에서도 위구르의 이슬람 형제들을 위해 싸우자는 여론이 있을 것이고 탈레반 수뇌부는 이러한 의견을 잠재우는데 골치가 아플 것이다. 

 

중국 내에는 위구르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카자흐족(약 125만 명), 키르기스족(약 16만 명) 등 다양한 이슬람계 소수민족이 분포해있다. 중국은 이들도 탄압하고 있다. 또 이들 민족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내부에도 있다. 이들 역시 중국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과 연결된 불안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 마약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양귀비 생산의 약 90%를 담당한다. 아프가니스탄 양귀비가 이란으로 건너가고 이란에서 다시 터키로 건너가 터키에서 아편으로 제작된다. 이후 이것이 유럽으로 유통되는 구조다. 최근에는 남미 양귀비가 터키로 건너와 아편으로 제작되는 비율이 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산지는 칸다하르(파슈툰 거주지역)다. 터키에서는 아프가니스탄 하면 제일 먼저 칸다하르를 떠올린다. 양귀비와 동성애(여자를 배척하고 오랜 전쟁 기간 동안 남자들만 생활하는 환경으로 인하여 동성애가 유명하다.)의 도시로 인식한다.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정식 정부로 인정을 받으려면 양귀비와 손을 끊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테러리즘과 마약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냉전시대에 유명했던 테러 조직들은 대부분 남미에 있었다. 이들은 주로 좌익계열이었고 공산화를 추진했으나 자금이 모자라 마약을 팔곤 했다. 이처럼 테러리즘의 가장 보편화된 자금줄이었다.

 

과거 Assassin(니자리 이스마일파라고도 불리며 정적을 암살하는 것으로 유명한 분파)이라는 종파가 있었는데 아사신은 '하사신'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하사신은 중동어로 양귀비(하사시)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마르코 폴로가 하시신을 아시신이라 발음했기에 이것이 유럽에 어새신이라는 발음으로 건너가 암살을 뜻하게 된다. 

 

아사신 교단의 창시자인 하산 사바흐는 대원들에게 약을 먹이고 취하면 자신의 성(알라무트 요새, 이란 북부에 위치)으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잠시 천국에 온 것이니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설명하고는 향락에 취하도록 만든다. 이후에 다시 약에 취한 대원을 일상으로 돌려놓고 다시 요새로 데려가는 것을 반복하여 중독시킨다. 이후 맹목적으로 하산 사바흐를 따르게 된 대원들을 셀주크 제국(이스마일파의 적국)에 투입시켜 고위 간부들을 암살한다. 따라서 테러리즘에 있어 여자와 마약은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IS에 성노예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탈레반의 변화

탈레반이 과거에 비해 겉보기에는 달라진 것이 확실하다. 아마 사우디 아라비아 정도로만 변해도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탈레반 2세대이기 떄문에 과거 미국과 투쟁을 시작했던 과거 세대는 거의 남지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IS의 입장에서 보면 꼰대들이다. 

 

탈레반은 이제 IS와 전쟁을 할 것이다. 그리고 IS 내부에 있는 위구르족들이 독립하여 IS를 탈퇴하고 탈레반과 손을 잡고 아프가니스탄 내부에 근거지를 마련하게 된다면 이는 다시 중국과의 마찰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미지수다.

 

탈레반도 제대로된 통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내분의 가능성도 있다. 내분이 일어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처럼 분리될 수도 있다. 현재 이라크내의 쿠르드족들은 사실상 독립하여 이라크 북부에 쿠르디스탄을 수립했다. 그들은 바그다드에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간에 신경쓰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민족 국가

이란 역시 호메이니 혁명 이후 나라가 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 호메이니가 페르시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의 혼혈이었기에 가장 비중이 큰 두 민족을 제대로 합쳐버릴 수 있었고 이란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란 인구 중 페르시아인은 54%, 아제르바이잔인은 16%를 차지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런 운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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