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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인남식 교수의 중동학개론 3부 (미국의 딜레마)

Varsika 2022. 3.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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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변화

 

중동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역내 국가보다는 미국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최근 미국이 보여주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대외정책의 배경에는 과거 미국의 중동 개입에 대한 여파가 있다. 미국이 중동에 대해 갖고 있던 이권은 크게 3가지였다. 석유, 냉전 시기의 친미국가 확보, 이스라엘 안보가 그것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중동에 공을 들인 이유가 이것이다.

 

그런데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 스스로 산유국이 되어버렸고, 냉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는 이스라엘 안보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없이 중동에서 철군을 결정했다. 그 변곡점에는 9.11 테러가 있었다. 미국은 단 한 번도 현대에 들어와서 본토에 전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은 어디서 누구와 싸우는지 알고 싸우는 전쟁이었으나 9.11 테러는 갑작스레 일상을 무너트리는 충격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후 19명의 용의자 리스트가 발표되었는데 15명이 사우디 사람이었고 4명이 이집트 출신이었다. 사우디는 거의 미국의 동맹 수준이고, 이집트 역시 중동의 공화정 중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미국이 가장 공을 들인 곳이었다. 특히 이집트에는 거의 매년 10억 불에 달하는 지원을 하기도 했었다.   

 

당시 미국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펜타곤, 백악관이 타깃이었는데 미국은 본토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당시 3개 국가를 적성국으로 지정했다. 이란, 이라크, 북한을 정해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표현했다. 2차 대전 당시 전범국가를 Axis(추축국)이라고 지칭하였으나 과거 레이건 정부는 소련을 악의 제국(the empire of evil)이라고 지칭했다. 즉 악의 축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 개념을 합친 것이다. 그 조어 자체가 영미권과 유럽권에 던진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러나 이 3개 나라는 알카에다와 연관이 없는 나라였다. 여기서부터 스텝이 꼬인 것이다. 악의 축 명명은 영미권과 유럽인들에게 과거 전범국을 연상시키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를 지정학적 코드화라고 한다. 미국은 악의 축 3개 국가는 심지어 전장을 뉴욕과 워싱턴으로 삼는 더 무자비하고 악한 존재라는 인식을 퍼트렸다. (소련조차 행하지 못했던 미국 본토 타격) 악의 축으로 선정한 기준은 크게 3가지였다. WMD(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알카에다와의 연관 있으며, 나쁜 독재국가일 것.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 국가는 알카에다와 전혀 상관이 없았다.

 

특히 이란은 중동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이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모하마드 하타미(이란 제7~8대 대통령, 1997~2005 재임)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던 거의 유일한 이란 지도자였다. 심지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재선 되기도 했다. (이란은 중동에서 드물게 비교적 공정 선거를 치른다.) 이란 국민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지지했던 것이다. 또 9.11 테러의 용의자들이 사우디와 이집트 국적이었던 것을 기회로 삼아 수니파를 견제하고 시아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란은 부시 행정부로부터 악의 축 1번 국가로 지정된다. 미국은 이란의 정권을 교체해버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당시 백악관의 외교안보 핵심세력은 네오콘이었다. 이들은 과거 70년대 학부시절, 케네디를 추종하는 민주당 지지자 혹은 리버럴 세력이었다. 그런데 카터 집권기에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이란에서 대사관 침탈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카터 정부가 특수부대를 파견했으나 결국 작전에 실패했다.) 이후 레이건이 집권하여 소련을 무너트렸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은 리버럴에서 conservative로 전향하게 된다. 압도적인 힘과 응징이 세상이 바꾼다는 것을 경험하고 믿게 된 것이다.

 

네오콘들은 9.11 테러 이후 앞으로 미국의 적이 될만한 국가들은 사전에 손을 봐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당시 미국민들 역시 결집되어 있었고, 애국법 등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특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원래 네오콘들이 싫어하던, 본래부터 제거하고 싶었던 존재였다. 실제로 과거 아버지 부시 시절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를 초토화시킨 후,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당시 참모였던 제임스 베이커 III 국무장관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보좌관이 반대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할 경우 중동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담을 제거하면 미국의 더 큰 적인 이란을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란-이라크 관계를 통해 이란을 견제할 수 있음) 네오콘들은 당시에 강렬히 반발했다. 대표적인 네오콘인 폴 월포비츠가 당시에도 강력하게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네오콘의 입장에선 사담 후세인을 제거할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당시 딕 체니를 비롯한 기존 보수세력은 이라크의 석유에 관심이 많아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는 설이 있다. 즉 네오콘의 이념과 석유 주의자들의 이익, 거기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신앙심(악의 무리를 응징한다)이 엮어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조 달러를 쓰고, 4천 명이 넘는 미군이 희생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지기는 커녕 이란의 영향력만 커져가는 것을 목도했다. 아버지 부시 때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사담 후세인(수니파) 제거 이후 미국은 시아파와 손을 잡고 이라크 재건을 추진했으나 시아파는 그전까지 나라를 통치해본 경험이 없었다. 결국 미국은 이라크에 남아 군정 비슷한 형태로 이라크를 통치하게 된다. 권력을 잃어버린 수니파는 격렬한 투쟁을 하게 되고 결국 이들이 알카에다와 연결되고 후에는 ISIS로 발전하게 된다. 미국 국민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라크 전쟁을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는 수립되지 않았고 현지 정부는 무능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다른 사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여기에서는 20년간 전쟁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다. 나토 27개국이 모두 참전했고 2.7조 달러를 썼으나 결국 탈레반을 없애지 못했다. 미국 내 여론이 좋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이 타국에 개입하여 좋은 결과로 귀결된 사례는 한국밖에 없었다. 중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여론은 "No boots on the ground(더 이상 지상군 투입은 없다)"로 정리되었다. 로컬 세력의 싸움을 지원해주는 정도로 정리되었고, 직접 관리 및 관할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후 미국은 중동을 떠나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인도 태평양으로 전선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은 다시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다. (수많은 비판을 감수하고 중동에서 철군을 했는데, 다시 파병을 하는 것은 큰 부담) 과거 부시 대통령 시절만 하더라도 2개의 전장(이란&이라크, 북한)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떠오른 새로운 2개의 전장(유럽, 중국)에서 모두 미국이 승리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러시아는 당연히 이것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최적기라는 것이다. 강력한 대외정책은 탄탄한 국내 지지율을 바탕으로 하는데 미국 내 경제 사정이 어려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교 1등과 반장을 겸하던 미국이 전교 2등(중국)에 위협을 느껴 반장을 내려놓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자 반이 엉망이 되어버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할 때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콜린 파월이 UN 안보리에서 이라크 전쟁을 발표했을 때 전통적인 우방인 프랑스, 독일, 캐나다가 모두 반대했다. 그러자 미국은 중동의 모든 나라를 민주화시키겠다는 '중동 민주화 구상'이라는 정책을 발표한다. (인남식 교수는 이를 아주 잘못된 정책으로 평가한다.) 이라크를 공격할 당시 사담 후세인 - 알카에다 커넥션과 WMD가 주된 명분이었는데 이 2가지가 모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난처해진 미국은 2004년 G8 회담에서 이라크 전쟁의 진정한 명분은 중동 민주화라고 발표했고, 실제로 중동 많은 국가의 선거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가 이루어진 몇몇 나라에서는 표가 모두 원리주의자에게 쏠리는 현상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2006년 팔레스타인에서 입법의회(한국으로 치면 국회) 의원 선거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미승인 국가이기에 투표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나 미국의 압박에 의해 선거를 실시한다. 그 결과 하마스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마스는 정강정책이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중동 도처에서 10년 경험한 미국이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promote 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철군을 결심한다. 이것을 정확히 판단한 것이 오바마였다.

 

과거 부시 행정부는 (9.11을 계기로) 이상을 갖고 중동을 민주화시키면 전 세계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 네오콘들이 신봉했던 이론이 바로 '민주 평화론'이었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국가들 간은 전면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적용하고자 했으나 두 곳 모두 민주주의가 실패했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 철군과 중동 문화에 맞는 정치체제 인정(민주주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2가지를 결정한다. 이후 미국은 고립주의로 나간다.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모두 고립주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입장이다. 

 

또 다른 사례로 아랍의 봄(2011~) 이후 이집트에서는 최초의 민선 대통령으로 2012년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선된다. 그는 무슬림 형제단 출신인데 서구에서는 조금 과장을 보태면 무슬림 형제단을 알카에다의 원류로 보기도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국가의 대통령이 무슬림 형제단 출신이라는 것은 기함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고 있다. 홀로코스트 당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대인들의 피난선이 미국으로 오자 돌려보내기도 했다. 전쟁 개입에 대한 일종의 거리두기였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미국의 워싱턴 전략가들은 승인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스라엘을 편들었다가 석유를 갖고 있는 중동 국가와 척을 지면 안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이것을 바꾼 것이 트루먼이었다. 미국과 말이 통하는 중동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아이젠아워 때에도 거리두기가 있었다. 오슬로 협정의 주역이자 이스라엘 전 총리였던 이치하크 라빈(1922~1995)이 주미 대사로 파견된 이후 관계가 개선되었다.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가 좋게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라빈이 미국이 주미대사로 파견될 무렵, 이스라엘 총리였던 메나헴 베긴과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인 다비드 벤구리온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의회 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스라엘과의 온도도 달라지곤 했는데 이들은 미국을 좀 더 확고한 친이스라엘 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에 따라 대중들을 파고드는 공공외교로 진행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에 가장 맞닿아있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미국 남부에 밀집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한다. 그전까지 기독교와 유대교는 상극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유대인들의 학살은 모두 기독교권에서 이루어져다. (러시아 짜르의 학살, 중세 내내 있었던 유대교 탄압,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역사적으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관계는 좋았다. 실제로 이베리아 반도의 레콘키스타가 이루어질 당시 아랍인들이 떠나자 유대인들도 기독교인을 피해 함께 떠났다.

 

1970년대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남부의 복음주의자들, 목회자들, 신학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대거 초청한다. 이후 구약성서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사상들을 함께 공유한다. 세대주의 신학(종말론, 예루살렘이 유대인에게 회복되었을 때 마지막 재림의 시대가 오고 세상에 평화가 온다)을 바탕으로 기독교와 유대인이 하나의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강력하게 promote 한다. 이후 미국 내 반유대주의가 사그라들면서 친이스라엘 정책이 힘을 받게 된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논란을 일으켰던 정책이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을 옮긴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근본주의자들, 성서 종말론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정책은 트럼프가 성서를 실현시킨 것이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손으로 가도록 역사를 순방향으로 진척시키는 것이고 다음 단계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성서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로로 들어간 것이다.

 

또 하나는 중동 내 정보를 이스라엘 첩보기관(모사드 등)들이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단독으로 중동정책을 만들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버렸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거기다 미국 내 유대인들의 정치적 로비를 활발히 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미국이 이스라엘과 친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이 이스라엘과 군사협정을 맺은 동맹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 외교 무대에서도 이스라엘 편을 든다. 이것을 인지적 동맹관계라고 한다. 종이 협정이 없어도 서로를 동맹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미-이스라엘의 인지적 동맹관계가 미국을 수렁에 빠트렸다고 생각한다. 

 

 

중동과 러시아

 

미군이 중동에서 철군하면서 반대로 러시아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0년 동안 시리아의 독재정부인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을 거치며 약 50만 명이 희생되었고, 시리아 정부는 통폭탄(barrel bomb)을 비롯해 2013년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중동의 민심은 "차라리 미국이 났다"라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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