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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인남식 교수의 중동학개론 6화 (예루살렘의 역사)

Varsika 2022. 5. 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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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인남식 교수

 

○ 인남식 교수의 중동학개론 6화: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싸움이 끊이지 않는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방송(본문 하단 링크)을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방송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을 하면서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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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이-팔 분쟁은 하나의 땅을 두고 일어난 분쟁이다. 

- 이스라엘의 입장 : 신으로부터 내려받은 땅을 한 톨도 양보 없이 지켜야만 한다.

- 팔레스타인의 입장 : 1948년 5월 14일, 나라와 함께 빼앗긴 땅을 언젠가는 수복해야만 한다.

 

70여 년 동안 두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고,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을 막기 위해 1993~1995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2 국가 해법'이라는 대원칙을 도출했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만들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따로 나뉘어 살자는 것이 대원칙의 주 내용이다.

 

- 오슬로 협정에 따른 조치

1차 - 서안지구 행정권 점진 이양 합의(예리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구성

2차 - 웨스트뱅크 7개 도시 자치권 이양(헤브론, 나블루스, 라말라, 예닌, 툴카렘, 카킬랴, 베들레헴)

* 실질적 평화 협정 이행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큰 협정

* 그러나 1995년 라빈 이스라엘 총리 피살 및 1996년 리쿠드 집권으로 인해 동력 상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개의 나라로 나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최종 지위 협상'의 지루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쟁점이 있다.

 

1. 서안 지구(웨스트 뱅크)에 건설된 이스라엘 정착촌. 여기에는 약 50만 명의 이스라엘인이 살고 있고, 이들은 정착촌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Gush Emunim(이스라엘 우익 운동)이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2. 전쟁 이후 외부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 문제. 이들은 70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을 쌓아온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이 정식 국가로 인정받은  뒤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온다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을 갖게 된다. 이스라엘의 공식 입장은 단 한 명의 난민도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는 총 870만 명으로 유대인 650만 명에 아랍인 180만, 기타 40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530만 명에 이른다. (서안지구 270만 명, 가자지구 210만 명, 동예루살렘 40만 명)

 

3. 예수살렘의 영유권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가장 큰 쟁점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예루살렘은 이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이다.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동예루살렘의 올드 시티는 절대로 이스라엘에 내어 줄 수 없으며, 오히려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의 성지이자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이슬람어로 평화를 뜻하는 '살람'은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다. 히브리어 인삿말인 '샬롬 알레카'는 '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이라는 뜻이며, 이슬람어 인사말인 '살람 말레이쿰' 역시 동일한 뜻이다. 

 

* 예루살렘 = 평화의 성(도시)?

예루살렘이 평화의 성이라는 설은 발음의 혼동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대인이 이곳에 살기 전인 기원전 40세기, 이곳은 가나안족의 땅이었다. 그들은 태양을 섬겼다. 추분에 이르면 황도가 정확히 예루살렘 위를 지나게 된다. 가나안족은 일몰의 신을 샬렘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말이 나왔다. 태양 신인 샬렘의 땅이라는 뜻이다. (일출의 신은 샤하르라고 불렀다.) 이후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한 후에는 샬렘이 그들의 단어 샬롬(평화)과 발음이 비슷하여 그대로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굳어지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과 예루살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동일하게 추앙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브라함이다. (* 아랍어로는 이브라힘)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가장 큰 서사는 독자 이삭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순간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땅을 떠나 신의 계시를 받은 아브라함은 신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먼 여정을 시작한다. 신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후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을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르러서야 독자 이삭을 얻게 되었다. 어느 날 메소포타미아를 떠나라 했던 그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하나뿐안 자식 이삭을 바치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으로 떠난다. 120살 정도에 이른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데리고 떠나 신이 말했던 산에서 신에게 이삭을 바치려는 순간 신이 아브라함을 멈추게 한다. 그 자리가 바로 지금의 예루살렘이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올려 두었던 그 돌이 동예루살렘의 자리에 있다. 즉, 유대교인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부자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시작된 곳으로 예루살렘을 인식하고 있다. 

 

▷ 모리아 산 Moria Mountain : 현재 이스라엘 성전이 있는 산이다. 성전산(Temple Mountain)이라고도 불린다. 예루살렘 자체가 해발 700~800지대에 위치해 있으므로, 모리아 산 역시 언덕에 가까운 지대다. 헤롯이 솔로몬 성전을 중건하여 헤롯 성전을 세웠으나 로마제국의 침공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때 남겨둔 성벽 한쪽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바로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다. 이후 7세기에 예루살렘을 점령한 우마이야 왕조는 헤롯 성전의 자리에 바위의 돔(황금돔 사원)을 세웠으며 지금까지 이른다. (추가 끝)

 

(좌) 예루살렘 올드시티 지도. 총 4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 성전산 항공사진

 

후에 헤롯(Herod)이 이곳에 큰 성전(제2 성전)을 짓는다. 무너진 솔로몬 성전(제1 성전)의 자리에 더 크게 중건한 것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환호했다. 유대 공동체의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헤롯은 유대인 혼혈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가 성전을 드나들었다고 하는 성전은 바로 이 제2 성전을 뜻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정체성의 뿌리가 바로 이곳에 있다. 로마시대인 AD 70년에 장군 타이투스(티투스)가 이곳을 초토화시켜 버린다. 이후 이슬람이 지역을 차지하자 그 위에 이슬람 모스크를 짓게 된다.

 

 

(좌) 솔로몬 성전 (중) 헤롯 성전 (우) 로마의 장군이자 10대 황제 티투스 

 

 

왜 예루살렘이 이슬람 성지인가?

 

기독교에서 예루살렘은 예수가 죽은 곳이자 부활한 곳이다. 올드 시티 안 쪽에는 예수무덤교회도 있다. 이슬람교는 610년에 전개가 된다. 다른 두 종교보다는 한참 늦게 생겨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두 종교에 비해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몇 안 되는 기적 중 하나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블라크라는 동물이 무하마드를 데리고 떠난다. 하늘을 날아가 도착한 곳이 이곳 예루살렘이다. 신성한 바위에 무하마드가 발을 딛는 순간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를 밤의 여행(Night Journey)이라고 하는데, 무하마드가 도착했던 그 자리에 알 아크샤 모스크가 세워진다. 이곳은 메카(하람 성원), 메디나(선지자의 성원)와 함께 이슬람 3대 성원으로 추앙받고 있다. 

 

밤의 여행은 무슬림 공동체에서 천 년 넘게 이어져 오는 이야기로 이스라(Isra)와 미라지(Miraj)라는 두 사건을 가리킨다. 밤의 여행의 내용은 무함마드가 메카에 있는 카바(Ka'ba) 신전에서 잠을 자던 중 가브리엘 천사의 부름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예루살렘의 알 아크샤(al-Aqsa) 신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승천하여 여러 사건을 겪은 후 다시 메카로 돌아온다.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난 것이 이스라, 예루살렘에서 승천하는 것을 미라지라고 한다. (추가 끝, 출처 : 서울대학교 도서관)

예루살렘 이슬람 성지는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이슬람 성지이며 현재 요르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기독교는 아브라함보다는 이후의 역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슬람이나 유대교보다는 예루살렘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유대교는 하루 빨리 이슬람 성지를 걷어내고 다시 유대교 성지를 건설하고자 한다.

 

 

동예루살렘에 속한 올드시티

 

올드시티는 약 1제곱 킬로미터 수준이고, 성벽을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올드 시티 안은 4개의 면으로 나뉘어 있다. 무슬림 쿼터, 유대인 쿼터, 아르메니안 쿼터, 기독교 쿼터로 이루어져 있다. 아르메니안 수도사들은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끝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올드시티에 남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슬람 성지 성벽의 절반 정도가 유대인 쿼터와 마주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 아르메니아는 301년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인정한 나라다. 로마보다 12년이나 앞선 것이다. 아르메니아 민족은 기원전 900년 경 아라라트산(현재는 터키 영토)에서 코카서스 지역 최초의 왕국을 세웠다. 아라라트 산은 노아의 기적에 등장하는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예루살렘의 성 무덤 성당을 관리하는 6개 종파 중 하나가 아르메니아 종파다. (가톨릭, 그리스 정교, 시리아 정교, 콥트, 에티오피아 정교, 아르메니아)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역사는 끝까지 찬란하지 못했다. 아르메니아는 페르시아, 아랍, 비잔틴 제국 등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다 끝내 나라를 잃게 된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터키로부터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9백만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이 본국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다. (추가 끝)

 

1967년 전쟁 때 이스라엘은 올드시티가 속한 동예루살렘을 접수하게 된다. 당시 무슬림 쿼터를 제거할 수도 있었으나 이슬람권의 반발을 의식해 유지해두었다. 그 전까지 예루살렘은 요르단의 관할이었다. 지금의 국경은 국경이 아닌 점령지역 경계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은 서, 동 예루살렘을 모두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빼앗긴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두 국가 해법이 실현된다면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FD3DBv7B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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