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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랍소사이어티] 아랍 알기 특강 1~3편(서강대 박현도 교수)

Varsika 2022. 3. 2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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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랍소사이어티] 아랍 알기 특강 1~3편

 

* 본 포스팅은 한국-아랍소사이어티의 아랍 알기 특강 방송을 참고하였습니다.

* 포스팅 내용은 방송 순서에 따르되, 일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재편집 하였습니다.

* 방송 내용 외에 추가한 내용은 별도 표시하였습니다. 

 

○ '아랍'이라는 명칭의 등장
아랍: 신아시리아 제국의 문헌에 최초로 등장. '유목민', '국경 밖에 사는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사용됨. 훗날 그리스인들이 그 표현을 보고 사용하면서 아랍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임

 

 

 

○ 메소포타미아 문명(기원전 4000년 ~ 600년)과 아랍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지금의 나일강 유역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를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지금처럼 그 지역이 아랍인의 땅이 아니었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고, 기원 후 600여년 경 아랍인들이 압도적인 이슬람 문명을 앞세우고 해당 지역을 정복하게 된다. 이후 이집트부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아랍인들이 자리잡게 된다. 

 

 

 

○ 아랍연맹과 아랍 국가의 분류

 

아랍 연맹(League of Arab States)

아랍연맹 가입국은 총 22개국이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이 포함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로부터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태지만 아랍연맹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아랍 국가는 산업구조에 따라 자원의존 경제 / 다변화 경제(비산유국)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정치형태에 따라 왕정/공화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자원의존형이면서 왕정(아랍 산유 왕정국)인 국가와 한국의 교류가 활발하다. 이들 아랍 산유국들의 모임을 GCC(걸프협력기구)라 부르며 여기에는 바레인,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아랍에미레이트가 속해있다. 이들은 1981년 GCC를 결성하였다.

 

이들 6개 국가의 인구를 합치면 약 470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천 달러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은 이슬람 문화이며, 아랍어를 사용하며, 왕정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안보 협력체를 만든 것이다. 본부는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에 있다. GCC는 1979년 이란 혁명의 영향으로 설립되었다. 혁명 전에는 이란 역시 친미 왕정 국가였기에 큰 갈등이 없었으나 혁명 이후 반미 공화정으로 변하면서 아랍 국가들이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산유국이면서 공화정인 국가로는 리비아, 알제리(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이라크가 있으며 다변화 경제이면서 왕정인 국가로는 모로코와 요르단이 있다. 그외 국가들은 다변화 경제이며 공화정으로 분류된다. (레바논, 모리타니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맨, 이집트, 지부티, 코모로-마다가스카르와 모잠비크사이의 섬나라, 튀니지, 팔레스타인)

 
흔히들 아랍 세계를 표현할 때 서쪽 끝에 모리타니아가 있오 동쪽 끝에는 이라크가 있다고 표현한다. 

 

 

 

○ 서구의 식민지배

 

아랍국가들 역시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동병상련의 역사가 있는 한국에 대해 친근감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 아랍 국가들 가운데 사우디 아라비아만이 직접적으로 지배를 받지 않았고, 나머지 21개국은 모두 식민지배를 겪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리비아)가 이들 국가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았고, 시리아와 레바논을 중심으로 서쪽 북아프리카 지역은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했던 곳이다. 

 

 


○ 아랍어와 '아랍인'이라는 정체성

 

아랍인들끼리는 혈연적 공통점이 없고 아랍어를 쓰는 사람을 아랍인이라고 인지한다. 물론 모든 나라들이 과거부터 아랍어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이라크는 과거 다른 언어가 오래 사용되었다. 수메르 문명(기원전 4500년 ~ 기원전 2000년)이 발현할 때에는 수메르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었고, 아카드 제국 시기(기원전 2334년 ~ 기원전 2154년)에는 셈어 계통의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랍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라크 역시 아랍 국가로 인정한다. 

 

아랍어는 지역마다 편차가크다. 푸스하라는 표준 아랍어가 있고, 약 30여개의 방언인 암미야가 있다. 아랍어는 이슬람과 함께 존재했고 퍼져 나갔다. 특히 쿠란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이란, 터키의 언어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쿠란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지만 예배를 드릴 때에는 아랍어만 사용한다. 과거 로마 카톨릭이 공식적인 미사를 라틴어로만 고집했던 것과 비슷하다. (로마가톨릭은 1965년 이후 각 나라의 언어로 미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함)

 

아랍어는 셈어 계통의 언어이다. '셈'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으로 노아의 아들이다. 성경에 따르면 셈이 이 지역(중동)에 살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언어를 셈어라고 지칭했다. 아람어(시리아어)와 히브리어 역시 셈어계통이다. 아랍어는 이러한 셈어 계통의 언어 중 가장 늦게 자리를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셈어 고유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 아랍국가의 출산율

아랍 지역은 대체적으로 출산율이 높아 대부분의 아랍국가는 30대 이하 인구가 총 인구의 50%를 차지한다. 

 

 

 

○ 페르시아만 혹은 아라비아만

산유국들이 밀집해있는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의 지역을 흔히 페르시아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란을 제외한 아랍국가들은 '아라비아만'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페르시아만 이라는 이름이 이란에서 나온 표현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 애매하기 떄문에 만(The Gulf)라고만 부른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전들도 대부분 페르시아만에 인접해 있다. 특히 가와르 유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으로 하루 약 500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사용하는 석유의 양이 280만 배럴 정도다. 가와르 유전 인근의 2개 유전을 더할 경우 하루 9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다. 


○ 아랍의 역사 - 고전 이전의 시대(기원전 5000년 ~ 599년)

이슬람 이전의 시대를 이슬람 학자들은 자힐리야(jahiliyyah)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말로는 '무지의 시대'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제대로된 삶을 살지 못하는 '야만'에 가까운 의미다. 이슬람 이전에는 문명이 없었다라는 뜻이다.

 

이슬람의 역사는 기원전 5천년부터 시작한다. 이 시대는 크게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알레산더의 동방 원정 전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다. 수메르 문명에서 이곳에서 태동하고 뒤이어 메소포타미아 문명(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과 이집트 문명, 페르시아 문명이 일어났다.

 

강연 내용 캡쳐(프톨레마이오스의 영토)


이 후 알렉산더가 이 땅을 정복하면서 그리스 문화가 중동에 들어온다. 알렉산더는 정복 사업 이후 오래 살지 못했다. 그 제국을 휘하의 장수들이 나누어 가졌는데 카산드로스, 뤼시마코스, 셀류쿠스(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 키프로스, 소아시아를 차지했고 셀류쿠스가 지금의 중동 땅을 차지한다. 

 

 

셀레오코스 제국(Seleucid Empire) 영향권

 

기후 기원전 63년에는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을 로마가 점령한다. 이후에는 로마의 문명이 중동 땅에 번지게 된다. 이처럼 지금 중동의 땅에는 여러 문명의 흔적이 첩첩이 남아있다. 아랍인들은 이런 과거의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이것은 이슬람 문화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수 있다.

 

시리아 부스라에는 지금도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이 남아있고, 레바논 바알백에는 바카스 신전이 남아있다. 요르단의 유명한 페트라 유적과 시리아의 팔미라 유적은 이슬람 이전 시대의 유적이다. 특히 팔미라 유적은 아랍인이 건설하였음에도 로마 양식을 따르고 있다. (팔미라 제국은 로마와 전쟁 끝에 멸망하였고, 여왕이던 제노비아는 로마르 끌려간 후 행적을 알 수 없다. )

 

시리아 부스라(Bosra)의 로마 원형극장(좌)와 레바논 바알벡(Baalbek)의 바커스 신전

 

 

○ 아랍의 역사 - 고전시대(600년 ~ 1000년)

 

이슬람 문명은 7세기에 시작된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 때 등장한다. 고전시대 이전의 아랍은 여러 부족이 나뉘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부족 혈연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유목 생활을 하며 혈연을 중시했고 남성의 용맹스러움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왕은 존재하지 않았고 각 부족에서 연장자들이 합의하여 지도자를 선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이슬람 이전의 아랍 세계의 특성이지, 이슬람의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목민 문화를 예를 들 경우, 이슬람이 발현한 곳은 아라비아 반도의 히자즈 지방인데 이곳은 유목민 문화적 요소가 있긴하지만 기본적으로 도시였다. 따라서 이슬람의 뿌리를 유목이나 사막과 연결 짓는 것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아랍 세계에 이슬람교가 등장하면서 혈연 중심의 사회를 타파하고 신앙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했다. 이것은 이슬람교가 가져온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는 부조리한 혈연사회의 기득권을 없앴고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구축했다. 

 

초기 지금의 터키-시리아 지방은 동로마 제국이, 반대편은 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제국 사이의 작은 아랍 부족, 소국들을 제국의 위성세력으로 만들어 지역을 통제했다. 이후에는 소국들이 멸망하며 제국간의 전면전으로 양상이 바뀐다. 제국간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제국의 영향이 닿지 않았던 아라비아 반도 북쪽을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이 성장한다. 이후 이들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점차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며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지역까지 정복(638년)한다.  651년에는 페르시아 제국까지 멸망시킨다. 이후 711년에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하여 거대한 이슬람 세계가 완성된다. 

 

정통 칼리파조(Rashidun Caliphate)는 무함마드 사후 4명의 칼리파가 다르시던 시대를 뜻한다. 

 

○ 이슬람의 지도자, 칼리파

 

칼리파는 흔히들 '칼리프'라고도 하는데 이는 영어식 표현이다. 무함마드 이후 4대 정통 칼리파로 불리는 이들은 다음과 같다. 4명의 칼리파는 서로 혈연적인 관계는 없다. 4대 칼리파 알리 이후에는 세습으로 칼리파가 이어진다. 

 

▷ 무함마드 사후 '사도의 대리자'로 인정받는 칼리파의 시대가 결렸다. 초기 4명의 칼리파를 라시둔, 즉 하느님이 올바르게 인도한 대리자들로 믿으며 존경했다. 4명의 라시둔은 모두 협의회에서 선출했으며, 혈연보다는 신앙이 중시되었다. 마지막 정통 칼리파인 알리가 피살 당한 후에는 우마이야(우마야) 왕조가 설립되었고 이후 현대까지 칼리파의 자리가 세습된다. (추가 끝)

 

▷ 1대 ~ 4대 정통칼리파

- 1대 아부바르크: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 / 아부바르크는 무함마드 사후 이탈한 부족들을 통합하고 이슬람 교단을 재건했다. 또한 알라의 말씀이 전승되지 않고 끊기는 것을 우려하여 코란을 만든다.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아부바르크는 선출된지 2년만에 병사한다. 

 

- 2대 우마르: 예루살렘을 정복(638) / 우마르(오마르)는 예수살렘을 정복한 이후에도 거주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640년에는 바티칸의 지배를 받는 시리아를 공격하여 시리아 전역을 정복한다. 이어서 641년에는 이집트를 점령한다. 후에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도 정복하는데 정복지의 주민들 역시 이슬람교로 개종할 경우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정책을 펼쳤다. 644년 11월 메디나 예배당에서 예배 도중 페르시아인 기독교인에게 암살당했다. 

 

- 3대 우스만: 사산조 페르시아(244~651)를 정복 / 우스만은 70대 고령으로 3대 칼리프에 선출된다. 우스만은 정복전쟁을 이어가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킨다. 656년 반대파에게 습격당해 피살당한다. 

 

- 4대 알리: 시아파 첫 번째 이맘(661년 사망) / 알리가 선출되자 시리아총독 무아위야는 우스만 암살의 배후로 알리를 지목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657년 시핀에서 대치한 양측은 결판을 내지 못하고 휴전에 들어간다. 661년 알리는 쿠파의 예배당에서 암살당한다. 알리의 사후 정통 칼리프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무아위야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수도를 옮기고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다. 이후 이슬람교는 우마이야 왕조를 지지하는 수니파와 알리를 지지하는 시아파로 나뉘어 격렬히 대립하게 된다. (추가 끝)

 

(1) 우마이야 칼리파조(661~750)


(2) 아바스(압바스) 칼리파조(749~1258)

 

(3) 코르도바 칼리파조(후 우마이야 칼리파조, 756~1031)

:750년 아바스가 정권을 잡고 우마이야 세력을 숙청한다. 이때 빠져나온 잔여 세력이 지금의 스페인 지역에 코르도바 칼리파조를 세운다. 
- 아미르 시대
- 칼리파 시대

 

(4) 파티마 칼리파조(909~1171) * 파티마는 무하마드의 딸 이름이다. 
- 카이로, 알 아즈하르 건설

 

10세기는 아바스, 코르도바, 파티마 등 총 3개의 칼리파가 100년 이상 공존한 시기였다. 3개의 제국이 공존하면서 정치적 중심지 역시 분화되었다. 기존의 메카, 메디나, 바그다드(우마이야)에서 이스탄불(투르크), 카이로(파티마) 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기 945년에는 카스피해 지역에서 나온 12이맘 시아파인 부예조(부와이조 Buwaih Dynasty 혹은 부이조 Buyid dynasty, 945~1055)가 바그다드를 점령한다. 이들은 시아파 세력이었지만 종파를 강요하지 않은 통치를 했다. 아바스 칼리파조는 945년 이후로는 명맥만 유지한 채 힘을 잃는다. 

 

파티마조의 영역(좌)와 부예조의 영역(우)

파티마조(Fatimah Khalifah, Fatimid Caliphate)는 909년 튀니지 지역에 세워졌고, 969년 이집트를 정복했다. 카이로(아랍어로는 까히라Qahirah)를 건설한다. 카이로는 '승리자'라는 뜻이다. 파티마조는 7이맘 시아파(이스마일리파)였다. 이들은 알 아즈하르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현재는 수니파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10세기에 이르면 이라크 지역은 12이맘 시아파인 부예조가, 서쪽은 7이맘 시아파 파티마조가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10세기는 시아파의 전성시대 였다. 

 

(추가) 알 아즈하르는 '가장 빛나는'이라는 뜻이다. 예언자 무하마드와 그의 딸 파티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추가2) 이스마일파는 12이맘파에 이어서 시아파에서 두 번쨰로 큰 분파이다. 

 

1055년에 시아파를 다시 밀어낸건은 셀주크 투르크다. 이들은 1055년 바그다드를 점령한다. 


○ 이슬람 세력 확장의 특징

 

(1) 엄청난 영토 팽창이 있었다. 그러나 피정복자들에 대한 이슬람교 강요는 없었다. 즉, 항간에 떠도는 '칼이냐 코란이냐'라는 말은 실제로는 없었다. 이슬람 왕조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전쟁을 한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들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걷기 위해서라도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

 

(2) 패배한 적이 없다. 

 

(3) 정복한 지역에 이슬람교라는 종교와 아랍어라는 언어가 뿌리를 내렸다. 특히 아랍어는 꾸란의 언어이기 때문에 이슬람이 가는 곳에는 항상 아랍어가 따라가게 되었다. 정복 후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현지에서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양성되고 그들이 지도자가 되면 아랍어가 공용어가 되었다. 아랍어가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는 이란 땅에서는 이란의 시스템, 동로마 제국의 땅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시스템을 유지했다. 이슬람 문명을 강요하기보다는 타 문명의 영향을 흡수해서 재해석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 했다.

 

우마이야 왕조 5대 칼리파인 아브드 알 말리크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기존에 각 지역별로 차이가 있던 행정체계를 통일하고 아랍어를 공용어로 공표(692년)했다. 이로써 이슬람교-아랍어의 표준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 이슬람의 역사 - 중간시대(1000년 ~ 1500년)

 

정통 칼리파국 아바스 왕조가 749년부터 1258년까지 존속하였으나 몽골에 의해 멸망 당한다. 몽골군의 항복제안을 거절 했기 때문에 바그다드는 모조리 파괴당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은 미군을 가리키며 '제2차 몽골군'이 몰려 온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1258년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당시 몽골군을 도와 바그다드 공략에 나섰던 시아파를 견제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파티마조, 코르도바 우마야조, 아유부조, 맘루크 등 다양한 세력들이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총 8차, 1095년부터 1291년까지) 또한 중간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전쟁 당시에는 십자군 전쟁을 유럽이 조직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근현대에 서구 열강이 중동을 침략하면서 십자군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게 된다. 실제로 리비아의 카다피는 제9차 십자군을 1798년 나폴레옹의 군대라고 하였으며, 제10차 십자군을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은 유럽이 인위적으로 무슬림들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십자군 국가라는 것이다. 

 

중간시대에는 고전시대에 이슬람 세계가 보여주었던 정치적, 종교적 통일성이 사라지고 튀르크인들이 힘을 갖게 되고, 아랍세계가 수니파 대 시아파로 분열된다. 

 

서기 1000년이 넘어가면서 아랍세계의 지배력이 하락한다.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영향이 강해지고, 정치적으로는 북쪽의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이 성장한다. 이후 근대 직전까지는 실질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을 지배한다. 오스만 제국은 튀르크어를 사용하여 중동의 아랍세력과 언어가 달랐지만 이슬람이라는 공통의 종교가 있어 이 지배가 가능했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아랍 민족주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랍 민족주의는 20세기 서구 열강이 오스만 제국을 해체한 이후 중동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조장한 측면이 있다.)

 

셀주크 투르크는 세력을 확장하여 1055년 부예조(부와이 왕조, 최초의 시아파 왕국)을 멸망시키고 바그다드를 점령한다. 수니파의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살라딘(쿠르드족 출신의 투르크 장수)은 1171년 파티마조를 멸망시키고 아유부조를 세운다. 

 

이 시기에는 유목민들의 이동과 인구의 변동에 따라 여러 세력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셀주크 투르크, 무라비트 왕조, 몽골 등). 철학자인 칼 둔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아샤비아(강력한 연대의식)에서 찾았다. 부족간의 역사의 부침은 강한 아샤비아를 가진 부족이 연대가 약한 부족을 정복하며 일어난 다는 것이다. 

 

이집트를 다스렸던 맘루크 왕조는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몽골을 무찔렀다. (1260년). 이 덕분에 이집트는 아랍의 고유한 특징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은 이 시기 페르시아와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맘루크 역시 1517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정복된다. 이후 이슬람 세계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고, 20세기부터는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 시기 이슬람 국가의 특징으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괴리를 꼽을 수 있다. 압바스 왕조의 경우 튀르크 용병을 고용하여 왕조를 유지했다. 이를 맘루크 제도라고 한다. 맘룩은 고용된 자, 노예, 용병이라는 뜻이다. 이 시기 지배세력은 자기 지역의 주민들을 병력으로 양성하지 않았다. 쿠테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민중과 거리를 두었고,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은 법학자의 역할이었다. 법학자가 군주의 신앙심을 칭송하며 군주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켰다. 

 

 

○ 이슬람의 역사 - 삼제국 시대(1500년 ~ 1800년)

 

1500년대 삼제국(오스만 - 사파비 - 무굴) 시대 -화약 제국의 시대로도 불렸다- 가 열리면서 오스만 투르크는 수니파,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를 정체성으로 잡았다. 무굴 제국은 소수의 무슬림이 대수의 비무슬림을 통치하는 구조였다. 때문에 이슬람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고 하나의 제국에 여러 종교가 공존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오스만 수니, 사파비 시아, 무갈 수니, 무갈 시아, 힌두, 그리스도교가 모두 공존했다. 


삼제국 시대에는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이 생기면서 종파적인 대치가 빈번해졌고, 튀르크어와 페르시아어의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아랍어의 영향이 줄어들기도 했다. 무굴제국에서는 우르드어(현재의 파키스탄 언어)도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에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때문에 지금도 스페인어나 프랑스어에는 아랍어에 어원을 둔 표현이 많다. 이슬람의 이베리아 지배는 정복당한지 800여년이 지난 1492년이 되어야 끝난다. 이보다 40여년 전인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점령당했다. 40여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독교 vs 이슬람교)

 

이 시기 이슬람교를 통해서 아랍의 철학과 의학적 업적이 유럽으로 전해졌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이슬람은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가 있었다. 서양의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것은 유럽이 잊고 있던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의학을 아랍이 전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때문에 아랍 이슬람 문명을 '중간자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랍인들은 중간시대에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나 문명을 잘 보존, 발전시켜왔고 이것이 오늘날 세계 발전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시기 이슬람은 평화적인 방법(수피즘, Sufism)으로 동남아에 진출하여 팽창을 거듭했다. 


○ 이슬람의 시대 - 근현대(1800년~)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침략한다. 이후에 서구 열강의 이슬람 침략이 본격화 된다. 이 때문에 1798년을 이슬람 역사의 한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후의 역사는 서구의 지배와 독립 국가의 발전이 주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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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이란 핵협상,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서강대 박현도 교수)

*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3월 21일 방송을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영상의 명칭이 3월 23일을 기점으로 [이란 핵협상,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에서 [미국 러시아 제재에서 이스라엘이 눈치보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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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지옥이 된 신장위구르 1~2부(서강대 박현도 교수)

*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2022년 1월 3일 방송을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방송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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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피비린내 나는 중동 석유의 역사 2부(서강대 박현도 교수)

*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1월 13일 방송을 참고하였습니다. * 포스팅 내용은 방송에 따르되, 일부 설명은 이해를 돕기 위해 순서를 재편집 하였습니다. * 방송 내용 외에 추가한 내용은 별도 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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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피비린내 나는 중동 석유의 역사 1부(서강대 박현도 교수)

* 본 포스팅은 2022년 1월 13일 삼프로TV 채널에서 방송된 백브리핑 라이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해당 방송은 2022년 1월 15일부터 1월 21일까지 이어지는 문재인 대통령 중동3개국 순방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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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아프가니스탄, 위구르 그리고 인도(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 교수)

* 삼프로TV 백브리핑 2021년 9월 15일 방송 Q. 현재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어떠한가? A. 판지시르를 중심으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판지시르는 '5개의 사자'라는 뜻이다. 과거 이곳에서 발생한 큰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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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아프가니스탄 사태, 원인부터 전망까지(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박현도 교수)

아프가니스탄 사태, 원인부터 전망까지(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박현도 교수) * 본문 하단에 요약 있음 Q. 중동 문제는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가? A. 그보다도 최근 사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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