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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인도는 어쩌다 가난해졌는가(서울대 강성용 교수, 남아시아 인사이드 1부)

Varsika 2022. 6. 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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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강성용 교수(방송 캡쳐)

 

*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신과 함께 210화(본문하단 링크)를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방송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을 하면서 추가한 내용입니다.

* 6/10 영상 제목에 '남아시아 인사이드'라는 표현이 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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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빈곤

인도를 여행한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물어보면 대부분 인도의 극심한 빈곤을 꼽는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통해서 인도의 빈곤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은 벵골 대기근(1942~1944년)이었다. 3년 동안 200~3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굶어 죽었다. 인도 극우파들은 당시 영국의 총리이던 처칠이 고의로 기근을 방치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벵골 대기근 당시의 사진

 

영국에 대한 인도의 입장

 

최근 인도 외무부 장관은 200년 간의 식민지배를 통해 인도가 유럽에 착취 당한 돈이 45조 달러에 이른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한화로 5~6경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대러시아 제재에 인도가 동참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자 인도는 오히려 과거 유럽에 착취당한 역사로 응수한 것이다.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부 장관

▷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부  장관은 다동맹 외교정책(multi-aligned foreign policy)을 제시하며 인도가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인도 국익을 위해 행동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최근 대러 제재에도 인도는 저렴한 값에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인도의 정유업체들은 이를 정제유(경유, 휘발유 등)로 바꿔 해외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대러 제재의 큰 구멍이 생긴 셈이다. 인도는 냉전시대에도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확보하기 위해 등거리 외교를 펼친 역사가 있다.  (추가 끝)

 

 

특히 인도 우파의 기본 프레임은  다음과 같다. '인도의 사회문제 = 영국의 탓' 

 

인도의 당뇨 환자는 약 5억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유럽 전체 인구보다 많다. 통계에 따르면 인도인의 유병자는 15%에 달하며, 이중 57%는 병원에 가지 못하여 진단을 받지 못한 유병자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는 기근을 겪은 세대의 손자세대에는 심혈관 진활 발병률이 2.7배가 높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인도 우파들은 이 연구를 빌미로 식민지 시대의 기근이 현재 인도의 유병자 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식민시기에 기근이 총 31번 일어났으며, 8400만 명이 굶어 죽었으니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인도의 현실

 

인도의 농촌 가구 중 60%는 아직도 화장실이 없다. 그나마 화장실을 갖춘 40% 중에서도 80%는 사용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따라서 발전한 몇 개의 도시, 가령 뭄바이만 보고 인도 사회 전체를 본 것이라 착각하면 안 된다. 전국적으로 상수도 연결망의 혜택을 받는 가구도 아주 적은 수이다. 그나마 상수도 혜택을 받는 가구의 대부분은 하루 중 3시간만 물이 공급된다. 

 

인도에서는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들이 그들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선출직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중앙 정부의 통제도 거의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LH(토지주택공사), 한전과 같은 공기업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그들의 입맛이 맞는 동네에만 전기, 수도 등을 공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자의적으로 통제하는 지역은 불법 건축물로 이루어진 마을이 많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상수도를 끊어도 불법이 아니다. 

 

이처럼 인도는 기반 시설이 부족하다. 공장을 세워서 산업을 키울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공식적으로 고용된, 4대 보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이 없다. 4대 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 당연히 세금도 내지 않는다. 결국 세수가 적어 기반 시설에 투자하지 못한다. 한국, 중국, 태국의 제조업 비중은 30%대 수준이나 인도의 제조업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 경제

 

2011년~2012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인도 GDP의 10.8%만이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액이다. 인도 전체 인구의 1%만이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낸다. 연 소득 50만 루피(약 7천 달러) 미만은 소득세가 면제된다. 그렇다면 국채 발행 등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국가 신용도가 낮다. 세금 징수체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으니 세율을 올리는 것 또한 정치적 부담이 크다.

 

국민 저축율은 아주 낮다. 인도 은행법의 기본 오리엔테이션(방향)은 금융 안정성이다. 즉, 은행이 소비자(예금주)에게 이자를 넉넉히 줄 수 없도록 세팅되어 있다. 거기다 인도 국민들은 은행을 믿지 않는다. 언제든지 중앙정부가 계좌를 추적해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금이 있어야 기관에서 그 돈을 활용해 투자를 하거나 국채를 매입할 수 있는데 예금 자체가 없으니 돈이 돌지 않는다. 인도 사람들은 돈이 모이면 침대 밑에 보관하거나 차명 자산(땅 등)으로 쟁여 놓는다. 이를 베나미(Benami)라고 한다.

 

전체 인도 노동자 중 24%는 임시직 형태라 고용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자영업자 비중은 52%인데 이들은 대부분 혼자 근무하거나 식구끼리 운영하는 곳들이다. 따라서 3차 산업에서 고용을 거의 창출하지 못한다. 세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인도 노동자 중 97%가 계약 없이 일하며 전체 노동자 중 사회보장보험의 혜택을 받는 수는 4.2%에 불과하다고 한다. 

 

 

독립 이후의 인도와 네루

인도의 초대 총리인 내루는 1950년부터 1964년까지 총리로 재임했다.

 

독립 이후 네루가 인도의 경제정책을 세웠다. 네루는 사회주의자였다. 독립 전에는 간디가 워낙 강력한 전통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기에 사회주의 티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간디가 암살 당한 이후 네루가 권력을 잡게 되고, 소련의 경제발전에 격앙된 네루는 인도식 혼합경제체제(쉽게 말하면 인도식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국가가 경제의 큰 틀을 설계하는 사회주의 방식에 자본주의의 경쟁을 섞은 것이다. 그러나 양단의 정책을 혼합했던 대부분의 사례가 그러하듯 이 방식은 철저히 실패한다.

 

이 방식을 '라이센스 라즈(Raj)'라고 하는데 기업체에 허가권을 주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A, B 2개의 업체에 연간 생산량을 배분하여 허가된 생산량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해당 업체들은 생산성 개선을 통해 더 많이 제품을 생산해서는 안된다. 이 경우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경제에 해를 끼친 것으로 간주되어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형식적으로는 A, B 2개 업체가 동일한 경쟁체제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성 경쟁이 아니라 허가권을 얻기 위한 뇌물 경쟁만 이루어진다. 가장 좋은 투자가 뇌물인 상황이 계속된다.

 

1948년 만들어진 공장법에 따르면 공장 내부의 벽 색깔, 페인트 도장 상태, 화장실과 구내식당 상태, 하절기 냉수 구비 여부까지 규제 대상이었다. 하나라도 어기면 공장은 올스톱된다. 규제 부풀리기가 만연해있었고, 관청의 모든 부서가 규제를 쏟아냈다. 관료의 상위 포식자로는 정치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관료의 청탁을 받고 청부입법이 나섰다. 생산품 1개를 만들기 위해 평균적으로 80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허가 부서가 80곳이라는 뜻이다.

 

네루 시기 이후 수십년 동안 이러한 방식이 유지되었고,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고치지 못했다. 결국 1991년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야 자유경쟁체제로 바뀌게 된다. 

 

* 간디를 암살한 RSS는 현재 집권당인 BJP(인도 국민당)의 기반이 되는 힌두교 세력이다. 이들은 간디를 암살했다는 원죄로 인해 90년대까지 인도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들이 한동안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네루 집권 당시 우파 진영에는 네루의 라이벌이 없었다. 

 

▷ 힌두교 우파 사회단체 RSS(민족자원봉사단)는 단체의 정치기구로 1980년 BJP를 창설한다. RSS는 1925년 창립되었으며 당시 힌두교와 이슬람 전체에 관용적이던 마하트마 간디의 리더십에 반발하여 출범했다. 간디의 인도국민회의당은 세속적인 민족주의를, RSS는 힌두 중심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추가 끝)

 

 

토지개혁과 최저임금법

 

네루가 실각한 이유는 토지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신생국가 중 토지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 북한, 중국, 대만, 일본뿐이다. 지주들이 순수히 토지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크게 한번 판을 뒤집는 것(몰수)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는 과정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주들은 보유한 토지 중 농사가 불가능한 저급 토지만 농민들에게 불하, 배분하였고 주요 토지는 그대로 소유했다. 겉으로는 토지를 배분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차명재산의 형태로 그대로 소유권을 가진 경우도 많았다. 농민들은 이러한 부조리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주들의 눈밖에 나면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농촌의 생존 압박은 더 높아졌고,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대거 도시에 유입된다. 

 

인도의 최저임금법은 1948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인도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국가가 구제해야할 대상이라고 봤다. 효율적인 구제를 위해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다양한 기준을 만들었다. 업종별, 지역별 기준을 설정했다. 그러나 입법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최저임금을 정하는 기준은 1200개에 달하게 되었다. 결국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았다. 거기다 노동법에는 노동단체들의 개입하에 최저임금을 합의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결국 최저임금을 정하는 기준은 1200개에 더하여 무한대로 증식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용자들은 규제를 피해갈 궁리만 하게 되었다. 소수의 노동자들만 법적 계약을 통해 고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임시직, 일용직의 행태로 고용했다. 이들은 보험혜택도 받지 못할뿐더러 장기근속을 하지 못하니 숙련공이 되지도 못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인도의 특성으로 인하여 사업의 규모도 확장시킬 유인이 없었다. 당연히 투자도 하지 않았다. 인도의 제조업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 고착되고 말았다. 

 

 

인도의 화폐개혁, 그리고 주갓(Jugaad)

 

인도는 2016년 11월,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명분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부정부패 근절이었다. 유럽에서 유로화를 도입할 때 이탈리아의 리라, 프랑스의 프랑을 유로화로 교환하기 위한 기간을 10년으로 세팅했다. 10년의 시간을 두고도 100% 교환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략 98~99% 수준에서 그쳤다. 인도는 몇 년 전 화폐개혁을 하면서 구권과 신권의 교환 기간을 60일에 한정했다. 고의로 짧은 기간을 설정해 교환하지 못하는 금액을 발생시켜 그만큼을 정부 재정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인도 정부의 속셈이었다. 

 

* 구권 -> 신권으로 교환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액수만큼 정부가 신권을 발행하여 정부 재정으로 사용하는 방식. 전체적으로 보면 유통되는 화폐의 총량은 동일하므로 정부는 인플레이션 없이 재정을 확충할 수 있다. 

 

그러나 60일의 짧은 기간 동안 인도의 지폐 교환율은 99.3%를 기록했다. 거의 모든 화폐가 신권으로 교환된 것이다. 정부도, 언론도 놀랐다. 언론에서는 브로커 등 암시장에서 암약하는 세력이 미리 교환을 준비했다는 설과 이와 별개로 일반 대중들이 최선을 노력을 다해 그들의 재산을 지켰다는 설 2가지를 제시했다. 많은 학자들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둔다. 브로커 등은 화폐가 아닌 금 등의 대체자산을 중심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Jugaad 문화의 사례

 

인도인들은 수십 년 동안 아주 높은 생존 압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오늘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에 익숙한 민족이다. 이를 주갓(Jugaad)이라고도 한다. 한국말로는 땜질, 임기응변이라고 번영할 수 있다. 구조적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개인의 노력과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기는 문화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인도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모디 총리가 주갓 문화에 한 방 먹은 셈이다. 한 편으로는 네루 이후에 지속된 허가권 통치의 악순환을 끊고자 인도 정부가 나름의 작전을 시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18HClyW_Tc&t=1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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