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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프로TV] 알카에다에서 IS까지, 중동의 무장단체 그 계보는? [중세특집#4] (MBC 박정욱 PD)

Varsika 2022. 6. 1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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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삼프로TV 신과 함께 2020년 방송(본문 하단 링크)을 참고하였습니다.
* 본문 전개는 방송을 따르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순서를 조정하였습니다.
* 본문 내용 중 '▷' 표시는 방송 내용 외 포스팅을 하면서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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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 = 성전?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고하자 사우디 제다 대학교에서 이슬람주의 교육을 받던 많은 이들이 전쟁에 참전한다. 이교도가 무슬림들을 탄압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압둘라 아잡도 있었는데 그 역시 생업을 포기하고 아프간으로 갔다. 압둘라 아잡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전에는 무슬림 운동이 특정 국가의 국내적 이슈였다면 압둘라 아잡을 기점으로는 성전(지하드), 국제적인 운동으로 확산된다. 그는 자국뿐만 아니라 핍박받는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도처에 있는 무슬림들이 모두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급진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 (반면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을 이슬람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성전'이라는 것은 지하드의 의역이다. 본래는 수고하고 애쓴다는 뜻을 갖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투쟁'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코란에는 등장하지 않는 단어다. 코란에는 '사브르(외부와 타협하지 않고 내적 평안을 찾는다)'라는 표현과 끼딸(맞서 싸우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하디스(외경)에서 이 두 가지를 합쳐 지하드라고 표현했다. 물론 모든 하디스나 공인 받은 핵심 하디스에는 나오지 않고 일부 하디스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코란에서는 선제공격을 금지한다. 방어만을 인정한다. 그런데 모순되지만 이슬람은 무수히 많은 정복전쟁을 벌였다. 이런 과정에서 공격을 정당화할 명분으로 지하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슬람 제국의 확장은 모두 알라를 위한 성스로운 지하드라고 포장한 것이다. 이슬람 제국일 벌인 대부분의 전쟁은 지하드라고 불렸다. 이슬람 세력과 대항했던 외부세력은 이슬람에서 전쟁 = 지하드라고 부른다고 인식했고 결국 지하드가 성전으로 번역된 것이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독재자에 대한 대항을 할 때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를 성전이라고 해석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자살테러, 자살폭탄테러다. 자살테러는 이라크 전쟁 이후에 집중된다. 다만 이 번역이 명확한 것은 아닌데 테러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벌어진 대다수의 자살테러는 미군 혹은 외국군대와 협력하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영어로는 Suicide bombing, 자살공격으로 표현한다. 자살공격의 경우 가미가제, 중국 국민당 등 죽음을 감수하는 결사대의 형태로 역사 속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코란에는 알라를 위해 죽거나 수고한 자는 보상받는다는 표현이 2번 나온다. 근데 어떤 하디스에서는 그 보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천국에서 처녀를 받는다던지) 코란 자체가 무함마드 사후에 만들어 진 것이고 하디스 역시 무함마드와 활동했던 이들이 무함마드 사후에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설득력을 갖는 것은 실제로 무함마드 시기 함께하던 이들에게 전파하는 내용을 암송시켰기 때문이다. 기록이 전부 실제인지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신학자들이 후에 엄격하게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때 인정받지 못한 하디스도 어떤 학파에서는 정통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성경의 신약과 구약처럼 명확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중간지대의 성격을 갖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후에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순교자들은 죽을 때 알라꼐서 고통을 면제해주신다'와 같은 표현이 덧붙여지니 삶과 죽음을 잇는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란 혁명 이후 호메이니는 군대를 불신했다. 혁명 전까지도 샤(황제)에게 충성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군인들을 숙청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공격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열세에 놓인 호메이니는 10대 소년들까지 전투에 투입시켰다. 이슬람주의로 교육시킨 후 플라스틱 열쇠를 주면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고 말했다. 10대 소년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플라스틱 열쇠만 쥔 채로 진격했다. 자살공격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실 큰 차이가 없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슬람주의가 투쟁이념으로 확산되면서 기존의 전승에서 필요한 말들이 전승되거나 덧붙여지는, 종교를 오남용한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이슬람권이 통째로 그런 사상을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극단주의자 몇명이 자살공격과 같은 행동을 범한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자살공격을 하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저항하는 이들은 항상 극단적으로 저항하다보니 외부의 시각에서는 무슬림들이 모두 극단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인권을 바탕으로 이슬람권을 많이 비판하지만,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이미 점령군들에게 인권을 짓밟힌 상태에서 처절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수니파에는 성직자간의 위계질서가 없다. 시아파에는 최고 권위자 아야톨라가 있다. 가톨릭의 대주교, 주교, 교구사제와 같은 계층이 시아파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수니파에는 극단주의자를 통제할 수 있는 권위자가 없다.

 

 

 

 

이슬람 무장단체

 

ISIS, ISIL, IS

 

IS는 과거 팔레스타인으로 진출하면 이스라엘보다 하마스를 먼저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그들만의 독립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IS는 하나의 이슬람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IS의 입장에서는 분리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IS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이슬람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의 경우 강력한 독재(사담 후세인)가 내부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독재자가 사라지자 혼란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혼란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도그마에 빠진다. 극단의 상황에서는 다양한 담론이 나올 수 없다. 흑과 백 2가지만 살아남는다. 선명성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중동은 끊임없이 혼란스러웠다.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다.

 

하마스 역시 무슬림 형제단 팔레스타인 지부에서 갈라져 나온 급진세력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인티파다)를 보고 결성되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이 목적이다. 

 

 

알카에다

 

알카에다를 만든 오사마 빈라덴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이다. 빈라덴의 아버지는 사업가로 사우드 왕가와 가까운 사이였다. 빈라덴의 모친은 정식 부인이 아니었다. 무슬림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두기도 하지만 빈라덴의 모친은 한 집에서 살지도 못하는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빈라덴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모친을 만나지 못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에는 자신의 자금으로 수단에 사업체를 만들었고 사업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수단에서 사업을 하면서 만난 이들 규합하여 알카에다를 만들었다. 알카에다는 '토대'라는 뜻이다. 아프간 전쟁 참전 용사(무자헤딘)들을 수단으로 불러 하나의 사적인 군사조직을 만들었다. 이슬람 대의를 위하여 투쟁을 멈추면 안된다는 의미로 수단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걸프전이 일어난다. 사우디 왕가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후 사우디를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 왕정 국가들의 대표격이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라덴은 국왕을 찾아가 참전 경력이 있는 무자헤딘임을 내세우며 자신들을 고용해주길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을 믿지 못했던 사우디 왕가는 거절하고 미군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이 때 사우디 아라비아에 미군기지가 생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충격을 받는다.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라는 명분을 내세우던 사우디가 왕가가 무슬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교도들을 불러온 꼴이기 때문이다. 무슬림을 보호하는 것을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가 갖춰야할 제 1의 의무였다. 종교적으로 독실하지 않은 술탄들도 이 의무만큼은 충실히 행했다. 그런데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임을 자칭한 세력이 성스러운 땅에 이교도들이 그것도 군홧발로 들어오게 문을 열어준 것이다. 무슬림 보호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중동 지역 미군기지 현황(2021년 기준)

 

실제로 9.11 테러에는 대다수의 사우디 아라비아인이 참여했다. 당시에 느꼈던 분노가 테러로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왕가에 반대하는 이른바 사우디 운동권들도 이때 많이 생겨난다. 걸프 전 당시에 미군을 사우디에 주둔시킨 것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 복수가 9.11테러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도 마찬가지다. 이슬람주의 서적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여 조직을 결성한 케이스다. 이후에 이런 조직들은 스스로 IS와 같이 큰 조직에 충성을 맹세해 그들의 휘하로 들어간다. IS가 조직원을 보내 해외에 지부를 차린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생겨나고 자의적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이슬람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알카에다가 맹위를 떨칠 때에도 동일한 현상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간판을 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슬림 형제단에서 극단주의자들이 나와서 알카에다를 결성했고, 알카에다 내의 급진세력이 다시 IS를 결성했다. 알카에다는 IS를 인정하지 않고 알카에다로의 복귀를 명령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에 IS는 알카에다를 압도했다. 알카에다는 미국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IS는 미국을 공격하기 이전에 시리아와 이라크의 정부를 모두 무너트리고 그 자리에 이슬람 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도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먼저 아랍 지역을 통일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IS는 혼란에 빠진 나라에서 세력을 키웠다. 이라크로, 시리아로, 내전이 발생하는 곳으로 옮겨 다녔다. 

 

 

헤즈볼라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탄생한 조직이다. 레바논 내전 당시에 결성되었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하던 PLO가 남부 레바논을 점령하여 근거지를 마련한다. 이후 PLO를 제거하기 위해 남부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로 인해 많은 현지 난민들이 발생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시아파 이슬람이었다. 이들은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감동을 받아 헤즈볼라를 결성한다. 설립 당시부터 이란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제거하는 것이다. 

 

헤즈볼라 활동 지역

 

이스라엘은 여러 아랍국가와 갈등을 빚다 나세르 대통령 사후 후임인 사다트 대통령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이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퇴치에 집중한다. 지금도 레바논은 하나의 국가임에도 레바논 정규군과 별개로 헤즈볼라군이 존재한다. 레바논 정부도 이를 묵인한다. 헤즈볼라군이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북진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정치에도 참여해 총선에 후보를 내고 당선자도 배출했다. 이후 이란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 정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레바논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란은 물러가라, 헤즈볼라와 이란은 레바논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주축이기 때문에 아랍 민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포함할 수 있다. 탈레반의 수장이었던 오마르는 오사마 빈라덴을 보호해주었다. 오마르는 빈라덴 송환을 요구하는 미국에 증거를 가져오라고 대답했다. 또 증거를 가져온다면 미국의 법정이 아닌 이슬람 법정에 빈라덴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부를 무너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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