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엄마(해옥)는 순애 이모를 '순애 언니'라고 불렀다. 순애 이모는 엄마의 친구 난이의 오빠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 아기가 생겼는데 엄마는 순애 이모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질투하기도 했다. 행복도 잠시, 순애 이모의 남편이 간첩으로 몰려 수난을 당한다. 순애 언니는 딸을 낳았다. 남편이 안양 교도소에 갇혀있는 탓에 아이를 혼자 길렀고 오래지 않아 안양으로 집을 옮겨야 했다. 엄마가 행복해지면서 여전히 불행 속에 사는 이모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
○ 책 속에서
- 언니, 미안해.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모를 향해 속으로 말했다.
- 사실 엄마는 행복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을 드러냈다간 이모가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 엄마는 처음에는 한달에 두 번 이모를 찾아가다가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계절에 한 번 안양에 찾아갔다. 가끔식 통화를 하면 더이상 할말이 없어서 피상적인 이야기만 주고 받았다. 이모는 엄마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엄마 또한 그랬다. 엄마는 살얼음판을 딛듯이 이모의 상처가 닿지 않은 마음들만을 디디려 했고 이모는 엄마가 이모를 조금이라도 가여워할까봐 애써 아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 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새으이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떄로느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 해옥아 잘 살아. 이모는 뭍에 걸린 배를 호수로 밀어내듯이 그 말을 했다.
- 이모가 열여섯 살짜리 아이의 얼굴로 엄마의 병실을 찾아왔을 떄, 엄마는 엄마가 이모에게 이미 오래전에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를 바라보는 이모의 얼굴은, 언젠가 형부의 연애편지를 읽을 때처럼 쓸쓸하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이모는 물에 닿은 비누처럼 점점 작아졌다.
- 엄마는 이모가 찾아온 날의 모든 경험들이 진짜였다고 진심으로 믿으면서도 엄마가 이모에게 용서받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의 감각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이모가 유품으로 남긴 오래된 가죽지갑 속에서 나온 두 소녀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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