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만난 독립서점에서 샀다. 나는 서점 사장님께 에세이를 추천해 달라고 했고, 그는 자신이 이묵돌 작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말을 던짐과 거의 동시에 다시 거두어들이면서 "그런데 좀 싫어하실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책 디자인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두 글자의 간결한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출판사까지 김영사라니. 호불호가 갈린다면 또라이 같은 작가라는 말인데 김영사가 그런 책을 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 첫 장을 넘기니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5분 정도 고민하고 책을 샀다. 그리고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나에게 있어 좋은 책이란 읽고 나면 나도 글을 쓰고 싶어지는 책이다. 여로는 아주 오랫만에 만난 그런 에세이였다. 작가는 출판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열 페이지만 읽으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읽힐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정확히 그런 책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8gntIuQamU
○ 책 속에서
- 꼴사나운 자기연민. 메타인지의 역설적 자기파멸성. 주제파악이라는 이름의 비극.
- 격리생활에 이골이 난 건 그 공간이 주는 암담함 때문이기도 했다. 공짜로 쓰는 처지니 불평하기도 뭣했고. 하여간 무조건적인 호의에는 그런 빈틈이 있다. 철판을 깔지 않는 이상 꼭 필요한 것조차 요구하기 쑥스러워진다. 나는 그런 교착상태에 매우 취약했다.
- 미술관에 가려면 QR코드가 필요하고, QR코드를 받으려면 공공의료서비스에 등록이 돼있어야 하는데, 공공의료서비스에 등록하려면 외국인 인증을 받아야 하고, 그 외국인 인증에는 여권이 필요하지만 러시아어로 번역된 공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공증은 또 여권이 있어야 한다고? 이게 뭔... 씨... 으아아악.
- "모든 이들의 죽음이 나를 위축시킨다. 나는 인류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 종은 바로 당신을 위해 울린다." (성공회 신부 존 던John Donne이 흑사병 시기에 쓴 시)
-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가. 일단은 일요일에 쉬는 가게가 많아야 한다. 나처럼 근본 없이 일요일에 입국한 관광객은 식사를 해결할 곳이 여의치 않아야 한다.
○ 그밖에
푸쉬킨을 비롯하여 러시아 문학에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전혀 모르는 분야라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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