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야기들/독서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최은영, 쇼코의 미소)

Varsika 2023. 7. 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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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와 영주

○ 줄거리

한지는 프랑스 수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흑인 친구다. 그는 나이로비에서 수의사로 일하다 수도원에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영주)는 불어를 하지 못하지만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27살의 나이에 휴학까지 한 상태에서 이곳에 머물고 있다. 나는 한지와 함께 나이프 가드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2주간의 나이트 가드가 끝나고 우리는 종종 마주쳤지만 예전처럼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나는 한지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조금 억누르려 한다. 나는 한지에 비해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한지가 먼저 나이로비로 돌아가게 된다. 한지는 이별하기 2주 전부터 아무런 계기도 없이 나에게 거리를 두고 나는 그런 한지를 보고는 당혹감에 휩싸인다.

 

 

○ 책 속에서

- 단지 그의 열등감이 나의 열등감보다 더 컸으므로 나는 그를 경멸하며 나에 대한 경멸을 피해왔을 뿐이었다.

 

- 사랑과 애착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나를 위해서 야생동물들을 곁에 두려는 생각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했어. 

 

-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 침묵은 나의 헐벗을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 그 말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깊은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 그 눈물에는 떠난 이들에 대한 감미로운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생활을 함께했다는 행복. 그 지속될 수도, 반볼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함께 존재했다는 행복. 그 눈물은 고독이 없었던 시간에 대한 애도였다. 

 

- 노트는 별다른 저항 없이, 미끄러지듯 얼음 속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적어도 일만 년간 썩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거듭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그 기억들이 나를 떠나 이 얼음에 붙기를

 

 

먼 곳에서 온 노래

○ 줄거리

미진 선배는 내가 대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노래패 선배다. 그녀는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녀가 대학원에 입학한 지 10년이 되어서야 나는 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왔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먼저 그녀의 룸메이트로 지냈던 '율라'라는 폴란드 여성을 만난다. 페테르부르크엔 네바강이 흘렀다. 나는 율라와 함께 미진을 회상한다. 

* 97학번 김미진과 02학번 소은(나)

 

 

○ 책 속에서

- 미진이 점점 더 러시아 말을 잘하게 될수록, 저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수록, 매력적인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미진에게 화가 났습니다. (...)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미진이 떠난 이후였습니다. 

 

- 무리를 해서 한국에 왔던 선배에게 나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선배는 언제나 어른스러운 사람이고, 나는 미숙한데다 아프기까지 한 덜떨어진 인간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 마지막 노래는 선배와 내가 함께 부른 <녹두꽃>이었다. 스물셋의 나와 스물여덟의 선배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곱고 가장 뜨거운 마음을 그 시에 담아 부르고 있었다. 내가 병자도, 선배가 망자도 아니었던 그때, 우리가 아직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때. 우리는 그렇게 이별했다.  

 

○ 감상평

사람의 마음속에서 찰나의 순간 생기다가 사라지는 그런 감정의 온도를 잘 묘사한다. 용서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열등감, 소외감, 관계를 틀어지게 만드는 미세한 뒤틀림의 모습들.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 중 가장 평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였지만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고 그때의 감정을 설명하는 장면에선 아주 깊게 빠져들었다. 

 

'미숙한' 나의 감정에 기인해서 균열이 생긴 관계. 항상 상대방은 나보다 조금 더 성숙한 탓에 관계에 이미 충분히 금이 가고 나서야 나는 그 일을 후회한다. <먼 곳에서 온 노래>를 포함하여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기억에 붙은 감정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던 상대방에게 애도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미카엘라

 

-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 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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