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정치사 7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

Varsika 2023. 8. 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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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경제위기의 정치적 결과

 

가.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인제 경선불복종, DJP, 이회창 아들 병역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아니었으면 졌을 선거, 한국전쟁 후 최대 국난에도 불구하고 1.6% 차이 밖에 이기지 못한 선거. 
(c.f) 2008년 금융 사태와 오바마

 

나. 전략적 지역주의

다. 구조적 제약

경제 위기때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필수였따. 한국의 루스벨트가 아니라 대처가 될 운명이었다.

 

○ 김대중 정부 

-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외국인 지분 제한을 3%에서 40%까지 완화하였다. 알짜 기업을 헐값에 매각하였다. (삼성, 대우 자동차) 식민지 시대가 아니면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올 수록 좋다는 주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결국 이후 외국자본들이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이 된다. 

 

- 사영화 

한전, 포철 등

 

- 노동의 유연화

빅딜(노사정 대타협), 정리해고 합법화

 

- 결과

외환위기 극복, 외환보유고 증대, 양극화, 절대빈곤, 비정규직의 일상화

 

○ 김대중 정부의 전개과정

1기 : 개혁기(99년 봄까지). IMF 개혁

2기 : 수구화기(2000년 봄까지). 옷 로비 사건

3기 : 재개혁기(2001년 여름까지). 남북정상회담 등

4기 : 재수구화기(~임기 말까지). 홍삼게이트

 

○ 개혁의 잘못된 이중주

하지 말아야 할 신자유주의 개혁을 급진적으로 추진하였고, 정작 해야할 민주개혁(국보법 폐지 등)은 흐지부지 지나갔다. 거기다 DJP 연합은 호남의 도덕적 우월성을 떨어트리는 결과가 되었다. 

 

 

○ 노무현 정부 

홍삼 게이트로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해지자 민주 진영은 사당 정치의 혁파를 기치로 내걸었다. 국민경선제를 실시했고 노무현 돌풍이 불었다. 막강한 이회창 대세론을 꺾기 위해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진행했다. 전략적 지역주의 + 행정수도 이전 + 햇볓정책을 통하여 실리적 지역주의를 내세웠다. 

 

투표에서 세대 갈등이 출현하였다. (2030세대와 5060세대가 각각 노무현을 6:4, 이회창의 4:6 수준으로 지지하였음)

 

- 분재정책의 실패. 박정희에 대한 향수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부패가 무능보다 낫다"

- 이른 바 중산층과 서민의 정부라 불리던 1998년부터 2007년 시기에 중산층은 -7.7% 줄어든 반면 하류층은 10.6% 상승하였다. 노동자 구속자 수역시 김영삼 정부에서는 연평균 126명이었으나, 김대중 정부에서는 178명, 노무현 정부에서는 연평균 208명으로 증가했다. 

 

- 1997년 이후 한국은 기존의 고용안정성은 없어지고 복지는 그대로 부재한 최악의 조합으로 변경되었다. 

 

○ 이명박 정부

-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의 연속성과 단절성

신자유주의, 반생태주의(부안, 새만금)라는 점에서 연속성을 가짐. 그러나 대북정책과 반생태주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단절성을 가짐. 

 

- 안철수, 박원순 현상

: 공익에 대한 갈구, 보수세력에 대한 실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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