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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말레이시아편

Varsika 2023. 9. 2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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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인구 중 말레이인은 62%, 중국계는 22%다. 

 

- 14세기까지 부족경제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5세기 말라카가 건설되면서 비로소 역사가 시작되었다.

 

- 해상무역이 발달하면서 페낭, 말라카, 바타비아, 싱가폴이 성장하였다. 

 

- 15세기 초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 1511년, 포르투갈 함대가 말라카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말라카 술탄은 도망친 후 말레이 반도 남부에 술탄령 조호르를 설치했다. 알부케르케가 파모사 요새(A Famosa, The Famous)를 건설하였는데 이 요새는 130년간 함락되지 않았다. 이후 1640년, 네덜란드가 이곳을 7개월 간의 전투 끝에 함락 시킨다. 1800년대 초,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점령하자 네덜란드는 동남아 식민지를 영국에 넘겨 버린다.  나폴레옹 이후 네덜란드가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바타비아를 중심으로 섬을 돌려주는 선에서 정리한다. 1824년 조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분리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 포르투갈 군인 알부케르케는 1510년 인도 고아를 점령해 교역의 본거지로 삼았다. 이듬해 국왕의 명령을 받은 알부케르케는 병령 1,200명으로 말라카를 공격했다.당시 말라카를 지배하던 술탄 마후므드는 인근에 지원을 요청했고, 조호를, 파낭(페낭), 수마트라,자바의 술탄들이 지원에 응했다. 약 2만 명의 방어군을 준비했으나 포르투갈의 포탄에 술탄의 군대는 쉽게 무너졌다. 술탄 마후무드는 조호르로 도주했다. 7월 1일 시작된 교전은 8월 24일 종료되었다. 포르투갈은 단 28명의 전사자만 발생했다. 말라카 술탄국은 110년만에 멸망하고 인도네시아 빈탄섬에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명나라는 조공국이던 말라카가 정복당하자 포르투갈에 강경하게 보복조치를 시행했다. 포르투갈은 남방의 왜구와 해적을 소통하는데 기여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비로소 마카오 무역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추가 끝)

 

- 1786년 영국군이 페낭에 함륙했다. 술탄에게는 태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영국은 술탄을 축출한다. 1819에는 래플즈 경이 싱가포르를 점령한다. 

 

 

- 영국은 제임스 브룩은 보르네오섬 북쪽, 브루나이 왕국에서 일어난 이반족의 반란을 진입하고 술탄으로부터 북부 영토를 선물로 받는다. 처음엔 사라왁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점차 사바까지 확장되었다. 비룩 가문은 리차(왕) 칭호를 받으며 1946년까지 105년간 보르네오섬 북쪽을 지배한다. 

 

- 1824년 영국과 네덜란드가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지역에 대한 조약을 체결했고, 1826년 영국은 해협 식민지를 통합한다. 1867년, 영국은 식민 사무소를 통해 직접 통치에 들어간다. 1847년 말레이 연방이 수립되고 수도를 쿠알라룸푸르로 옮겼다. 쿠알라룸푸르는 '흐린 강물이 만나는 곳' 켈링강과 곰박강이 이곳을 지나는데 주석 광산 때문에 강물이 흐리다. 

 

- 1906년 북부 보르네오도 말레이 연방에 가입한다.

 

- 1910년대 고무 농장이 활성화 되었고, 반도 경작지의 2/3이 고무 산업을 했다. 주석(Royal Selangor) 세계 1위, 타이어 생산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이 시기 일하러 온 중국인들이 엄청 많았고,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해 도시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다.

 

- 1930년대 말레이 - 이슬람 민족주의가 떠올랐고, 중국은 화교사회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인도는 반영국 민족주의가 발달하게 된다.

 

-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말레이시아를 점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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