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일상/역사

[한국사와 한국문학] 예산은자전과 최해의 삶

Varsika 2023. 12. 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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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산은자전(猊山隱者傳) 
최치원의 후손인 최해가 쓴 자서전적 작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 의탁하여 썼다. 최해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도 잘 지냈고 이제현과 가장 친한 학우였으며 민사평과도 교류하였다.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고 호를 지은 후 불우하게 살았다. 성리학자로써 불교와 큰 인연이 있지 않았지만 말년에 절로 들어가 사찰의 전호(佃戶, 소작농)가 되어 농사를 지었다. 
* 猊 사자 예
* 최해는 불교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딱히 좋아한 것도 아닌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 최해의 삶
최해는 경주의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나 관직없이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안이나 사대부로서 관직에 진출하였다. 성리학에 빼어나 원나라 관직에도 합격하였으나 기질상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 최해는 아첨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주장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았다.
 
고려 말, 원나라와의 네트워크가 있는 자라면 정2품, 정3품 수준의 관직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은둔하다 곤궁한 삶을 마감하였다. 
 
* 최해의 관직이력: 문과급제 - 성균관 학유(종9품) - 예문춘추검열(정9품) - 장사감무로 좌천 - 예문춘추주부(정8품) - 장흥고사(종5품) - 원나라 과거 합격(1320) - 요양로개주판관 - 귀국 - 예문응교(정5품) - 검교성균관대사성(정3품)
- 감무(監務)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속군현(屬郡縣)에 파견된 지방 관직으로 부임한 군현의 지방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장사長沙는 지금의 고창 무장茂長현을 뜻한다.
 
* 말년에 사자갑사(獅子岬寺)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은둔했다. 사자갑사는 현재 경북 영덕군 지품면 용덕길 512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3. 최해가 살았던 시대(원 간섭기의 고려)
최해는 원간섭기(1287~1340)에 살았던 인물로 당시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온 후 친왕체제를 선포하긴 하였으나 재정이 바닥인 상태였다. 세금 면제 등의 혜택을 주며 휴유지 개간을 장려하였으나 개간 3년 이후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그 이후에야 소유권을 인정하는 등 충분치 못한 조치로 인하여 큰 소득을 보지 못했다. 
 
또한 원간섭기 친원세력이 성장하였고 친원세력의 대다수였던 권문세족은 막대한 농장과 노비를 소유하며 충목왕대의 개혁정치에 반발하였다. 결국 반원정책과 개혁정책은 공민왕대에 이르러서야 성공할 수 있었고 이 시기에 비로소 사대부들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 1340년 최해 사망
* 1351년 공민왕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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