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 루브르 요새, 루브르 궁전,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는 2016년 센강이 범람하지 지하 소장품 3만 5천점을 지상으로 옮겼다. 이는 루브르가 태초에 박물관으로 설계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루브르는 사실 해안지역을 침약하던 바이킹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군사요새였다. 실제로 바이킹들은 885년부터 887년까지 2년간 파리를 포위공격한 이력이 있었고,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고자 12세기 말 루브르 요새를 지은 것이다. 루브르는 전시에는 요새로, 평시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16세기 프랑수아 1세는 요새를 궁전으로 재건축한다.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앙부아츠 지역에 다 빈치의 마지막 작업실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궁전으로 바뀐 르부르에서는 살롱전이 열렸는데, 루브르의 살롱 디폴롱과 살롱 카레 방에서 전시를 시작하여 살롱전이라 불렸다. 당시 살롱전은 전시자격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정회원들에게만 부여될 정도로 까다로운 제한이 있었다. 관람 역시 신분이 높은 사람들 위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바뀌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실과 교회가 소유했던 예술품들을 국유화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루브르 궁전 역시 국유화되어 루브르 박물관으로 개편된다.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의 아폴론 갤러리 입구에는 "프랑스 혁명 정부에 의해 1792년 9월 16일 루브르 박물관으로 변경되어 1793년 8월 10일에 공개 개장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후 나폴레옹 집권기에는 나폴레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모두 루브르로 가져왔다. 이탈리아에서만 약 600여 점의 미술품을 파리로 가져왔다. 그는 산마르코 대성당 위의 청동 말장식을 가져와 파리 카푸젤 개선문 위에 설치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시기를 거치며 루브르는 세게적인 컬렉션을 보유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타국으로 원정을 갈 때 군대와 함께 예술가, 역사가, 건축가 등을 대동하여 전문적인 약탈을 진행했다. 당시 나폴레옹은 고전 예술을 가진다는 것이 유럽의 정신적 뿌리를 차지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 정부 칙령(1796년 5월 7일 발표)
이탈리아는 부와 명예의 많은 부분을 미술을 통해 얻어왔다. 하지만 이제 프랑스가 지배하는 시대가 왔으니 (중략)
국립 박물관은 모든 유명한 미술적 기념물을 보유해야 하며 (중략) 풍요롭게 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 후에 청동상은 베니스로 다시 반환되었고, 지금 카푸젤 개선문 위를 장식하는 청동상은 다시 만든 것이다.
* 고전미술의 정수 <벨베레데의 아폴론> / 당시 나폴레옹의 위상을 보여주는 판화
* 참고로 벨베레데의 아폴론은 원작이 따로 있는 로마 시대의 복제품인데, 원작은 청동상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원작은 전해지지 않는데 청동상은 본래 그 수가 적기도 하지만, 전쟁 등의 국가위기 상황에서는 녹여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박물관의 확산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점령한 곳의 전문적인 유물 관리를 위해 박물관을 건립했다. 루브르를 본관으로 삼고 베네치아, 밀라노, 암스테르담, 마드리드에 박물관의 세워 분점처럼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결국 나폴레옹의 이러한 정책 때문에 네덜란드 라익스 박물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벨기에 브뤼셀 왕립 박물관, 이탈리아 브레라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프랑스의 루브르, 리옹 미술관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1983년 미테랑 대통령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그랑 루브르'라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루브르 박물관은 본래 궁전으로 설계되었기에 'ㄷ'자 형태의 건물이었고, 박물관으로 쓰기에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자 중앙 정원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고 그 아래 지하시설을 만들어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루브르의 여러 공간을 연결하고자 했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던 탓에 당시에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루브르를 개선시킨 신의 한수가 되었다. 1989년 파리 혁명 200주년에 맞추어 대중에 공개되었다.
영국박물관
영국박물관은 본래 진귀한 책들을 모아둔 도서관 기능을 했다. 찰스 다윈, 간디, 버지니아 울프, 찰스 디킨스 등의 걸출한 저자가 쓴 원본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은 장서가 늘고 박물관의 기능이 확대되며 도서관은 이전했다. 영국박물관에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8만 점의 컬렉션이 있다.
영국박물관은 시작은 17세기 만들어진 몬터규 하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과의사이자 박물학였던 한스 슬론이 그의 소장품 7만여 점 중 절방은 기증, 절반은 판매한다. 그는 매도 조건으로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해줄 것을 요청하고 이것이 받아 들여진다. 이렇게 설립된 것이 몬터규 하우스인데 초기 몬터규 하우스는 한스 슬론이 전세계를 떠돌며 수집한 다양한 생물 표본 등을 위주로 했기에 자연사 박물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한스 슬론은 지금도 영국 공공 박물관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후 영국 상류층 자제들이 만든 소사이어티 오브 딜레탕티(1734년 설립,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예술을 연구, 후원하는 미술 애호가 협회)가 박물관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이들은 그랜드 투어를 하며 유럽 각지에서 미술품을 사오기도 했고, 다양한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국박물관은 대중에게 먼 존재였는데 1790년 당시 하루 30명에 한정하여 1시간 공개하는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예약하는데만 보통 3주가 걸렸다.
* 엘긴 마블
엘긴 백작(1766~1841)은 영국이 외교관으로 1799년 오스만 제국의 영국 대사로 파견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을 가져 온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시기였고 엘긴은 오스만 제국의 지방관에게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801년부터 10여년 간 기원전 5세기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의 핵심 조각을 뜯어가니 이것이 바로 엘긴 마블이다. (총 253점에 달한다.)
이후 엘긴 백작은 이를 3만 5천 파운드(현재 가치 약 60억원)에 영국박물관에 판매하여 영국박물관은 그리스 고전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그리스와 영국의 주요 외교 사안이다.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최초의 국립 미술관이다. 약 2,3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회화 전문 미술관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 큰 인기를 얻자 부러웠던 영국은 1824년 내셔널 갤러리를 개관한다. 위치 역시 프랑스와 싸워 이긴 넬슨을 기리는 트라팔가 광장으로 정했는데 프랑스를 의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에는 사업가였던 존 앵거스틴의 개인 컬렉션 38점을 영국 정부가 구매하면서 시작했다.
여기서 '내셔널'은 귀족 등 일부 계층에서만 향유하던 문화를 국민 전반에 공개한다는 것을 뜻하며 내셔널 갤러리는 소수 특권 층이 아닌 국민을 향한다는 의미가 있다. 본래 영국은 이러한 큰 사업 앞에 로얄(royal)을 붙이지만 당시 영국의 진보정당이 집권하면서 '내셔널'이라는 명칭을 강력히 제안하여 관철시킨다. 지금은 내셔널이 '공립', '국립'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박물관의 역사에서는 이 명칭이 국민이 세게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은 사치가 아니라 문명화된 삶의 본질"
- 토마스 와이즈(1791~1862) -
내셔널 갤러리가 점점 인기를 끌자 영국은 1982년 공모를 통해 내셔널 갤러리 신관을 설계하기로 한다. 당시 뽑힌 공모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격렬했고 현실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영국 왕실 관례와 다르게 찰스 왕세자 역시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찰스 왕세자의 대학 전공이 건축학이다.)
결국 설계안을 변경하여 미국의 포스트모던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 데니스 스콧 브라운이 설계한 안으로 확정된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에 따른 1991년 내셔널 갤러리 신관이 완공되었다. 프랑스가 변화와 혁신을 선택했다면 영국은 보존과 존중을 추구한 방식으로 확장했다.
대한민국
- 대한제국 황실 박물관(제실박물관): 1909년 창경궁 안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다.
- 우리나라에는 2018년 기준 영화관에 483개, 박물관이 873개, 미술관이 251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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