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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고기후학과 인류의 역사(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

Varsika 2024. 1. 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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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기 인류의 이동은 기후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인류는 약 500만년 전 출현하였는데, 첫 출현지인 아프리카를 떠난 시기는 약 200만년 전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떨어지던 시점과 일치한다. 

 

초기 열대 열대 초원지대(사바나 식생)에 살던 인류는 낮아진 기온으로 인해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고, 그 길을 따라 추위를 피해 유라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낮아진 기온으로 아프리카는 습윤해졌고 사막이 줄어 초원이 넓어졌다.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7만 년 ~ 5만 년 전에 이동한 호모 사피엔스가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본다.

 

- 홀로세 : 1만 2천 년 전 시작된 가장 최근의 시대라는 뜻이다.

 

-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기후가 변화하자 인류는 농사로 기후 변화에 대응한다. 이집트에서는 풍족한 생산물로 잉여농산물이 생기자 경제가 발전했고, 고대 문명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기후가 좋으면 정착과 농경이 이루어지기 쉽다. 

 

실제로 한반도의 시기별 주거지 수를 분석해볼 때 한랭-건조시기에는 주거지 수가 줄어들고, 온난-습윤 시기에는 주거지 수가 늘어난다. 절대적인 수를 확정할 수는 없으나 그 추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기원전 3천 년 전에 온난-습윤한 기후가 절정에 달했는데 주거지 수 역시 정점을 기록한다. 같은 시기 한반도 중부에서는 송국리문화가 시작된다. 

 

송국리문화는 지금의 부여 일대에서 발견된 것으로 한반도 선사시대 대표적인 문화, 한반도 최초의 벼농경 문화를 지칭한다. 원형 움집에 계란형 토기(하단이 뾰족하지 않고 세울 수 있는 받침이 있음)를 특징으로 한다. 벼농사가 시작되며 한반도 인구도 따라 증가했을 것이다. 기원전 3천년, 부여 일대는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며 초기 사회체계를 만들어 갔을 것이다. 

 

- 고대의 기후를 파악하기 위해서 지질 정보를 활용하곤 하는데 주로 습지에서 토양을 추출한다. (가령 제주 물영아리 오름) 습지는 퇴적물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 물영아리 오름도 생물지리학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긴 막대기를 찔러 추출한 토양에서 시기별 층을 분석해 연대를 측정한다. 학 연대별 층에서 꽃가루만 남긴 후 현미경으로 그 모양과 수를 관찰하면 해당 시기의 기후를 알 수 있다. 꽃가루는 수 만 년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는 타임 캡슐이다.

 

- 벼는 아열대 작물이다. 이 때문에 요동지역보다 한반도가 벼농사에 유리했다. 일종의 기후난민이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벼농경 뿐 아니라 문화, 언어, 기술이 함께 전파되었다. 

▷ 중국 북부는 벼농사보다 밀농사가 보편적이다. (추가 끝)

 

- 기원전 3천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한반도의 기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착했던 사람들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 규슈까지 진출해 야요이 문화를 탄생시킨다. 야요이 문화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이어진 일본 선사시대 최초의 벼농경 문화이다. 

 

실제로 송국리에서 출토된 반달돌칼과 일본 사가현에서 출토된 반달돌칼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토기 역시 마찬가지다.

 

- 적도 부근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편동풍, 즉 무역풍이 분다. 무역풍을 타고 페루와 에콰도르 앞의 따뜻한 바닷물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인도네시아, 호주에 닿는다. 인도네시아, 호주에서는 습윤해진 탓에 비가 내리게 된다. 그런데 엘니뇨가 시작되면 무역풍이 약해진다. 결국 동태평양의 따듯한 바닷물이 서태평양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간즘부터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동태평양의 수온이 급상승하게 되고 서태평양은 건조한 기후가 이어진다. 이 때문에 호주에서는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데 2019년 9월부터 6개월간 계속 산불이 이어지기도 했다. 반면 2017년 페루는 집중호우와 이에 따른 홍수로 62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 500년 주기로 초대형 엘리뇨가 찾아온다. 엘리뇨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는데 태평양에서 한반도 인근으로 유입되는 바닷물의 열에너지가 낮고, 수증기가 적어 가뭄이 발생한다. 기원전 3300년, 2800년, 2300년, 1800년 전에 큰 가뭄이 있었다. 

 

- 나이테를 통해 기후를 분석할 수 도 있다. 나이테를 바탕으로 현재 8천년의 연대기를 완성했다. 

 

- 기후는 전쟁을 분석하는데도 쓰인다. 과거의 중론은 몽골의 기후가 척박해 다른 나라를 약탈하기 위해 침략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이테를 통해 분석한 결과 13세기 몽골은 습윤한 좋은 기후를 가졌었다. 이때 몽골의 말은 어느 때보다 건강했을 것이다. 강수량 또한 풍부했고 몽골은 최강의 기병을 보유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 고려는 가뭄에 무신정권이 겹쳐 대혼란 속에 있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230년과 1256년에 큰 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자들이 속출하고 시체가 길을 덮었다는 기록이 있다. 

 

- 중국역시 왕조 교체기마다 건조한 기후를 만났다.

 

- 한반도의 1670년 ~ 1671년 경신대기근 역시 꽃가루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경신대기근 시기 실록에 기록된 기상 이변만 207차례에 달한다. 당시 사망자만 약 100만 여명으로 추정된다. 이 때는 분반구의 소빙기(16세기말 ~ 19세기초)였다. 아일랜드 역시 1840년대 기근에 역병이 겹쳐 약 백 만 명이 사망한다. 영국의 템스강이 얼어붙기도 했다. 

 

태양의 흑점수와 화산 때문이었다. 태양의 흑점수가 감소하면 복사에너지가 낮아진다. 화산이 폭발하면 대기 중에 이산화황이 많아진다. 이산화황이 수증기를 만나 층을 형성하여 태양의 복사에너지를 차단하고 이는 곧 지구 기온의 하락을 야기했다. 

 

경신 대기근 시기 현종은 빈민 구제 기구였던 진휼청을 분리독립 운영하고 수리시설과 제방을 관리하는 제언사를 설치했다. 그리고 조선 최대의 혁신인 대동법을 확대 시행했다. 쌀은 다른 공물과는 다르게 저장과 비축이 용이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대응한 현종 때문에 실학의 토대가 쌓일 수 있었다. 

 

훗날 조선 후기의 전성기를 열었던 영조와 정조시대에는 기온이 상승하며 현종, 숙종대에 비해 온난한 기후가 펼쳐졌다. 이러한 점 역시 태평성대의 주춧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조대에 이르면서 다시 흑점수가 감소하고, 화산이 폭발하며 기근이 이어졌다. 이는 1811년 홍경래의 난을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814년 순조 14년 호구 조사 결과 조선의 인구는 790만 명이었는데, 1816년 조사 결과는 659만 명으로 2년 동안 인구 131만 명이 감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4월 폭발하여 3개월간 분화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화산 폭발이었다. 100메가톤의 이산화항이 성층권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1816년을 학계에서는 여름이 사라진 해로 기록한다. 미국의 BRIDGEPORT 6월 12일 깃에 따르면 하루만에 기온이 27,8도에서 11.1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영국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1850년대부터 강수량과 기온을 기록했고 1861년 기상 예보를 실시한다. 

 

- 시리아 역시 내전 발생 직전인 2006년부터 2010년간 기록적인 가뭄을 겪었다. 

 

- 과거에는 기후가 인류 역사의 부수적인 요소였으나 이제 빅히스토리 연구가 시작되며 기후는 인류사를 바꾼 주요한 동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 마이클 만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1991년 온난화 회의론을 불식시킨 논문을 통해 하키스틱 이론을 발표했다. 기온 상승이 유례없이 급격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2020년 WMO 세계기상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의 바다는 1초마다 히로시마 원폭 5개를 떨어뜨린 것과 같은 열량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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