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야기들/독서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허영선)

Varsika 2024. 3. 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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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제주 4.3에 대해 간결한 문체로, 그러나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 양이 많지 않으나 중요한 부분은 빠짐없이 서술하고 있어 4.3을 처음 공부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 실질적인 사료(통계, 당시 문건)가 함께 서술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선 전적으로 작가의 서술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이러한 사료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 4.3은 매번 새로 알아갈 때마다 그 실상이 너무 참혹하여 마음을 졸이며 읽게 된다.

 

 

<책 속에서>

 

- 잊어라, 지워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

 

- (미군정 시기) 공출은 물론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까지 있던 그 시절, 할당량을 못 채운 중년의 아버지들은 구젱기닥살(소라 껍데기) 위에 무릎 꿀게하거나 석돌꿀림이라고 해서 현무암 돌 위에 꿁게하는 고문까지 이뤄졌던 공출이었다. 

 

- 송요찬의 포고문이 발표된 다음 날, 제두도 해안은 즉각 봉쇄된다. 이 작전을 수행하기 전, 토벌대는 섬의 유지들을 일제히 검속한다. 제주읍은 싸늘한 공포에 휩싸였다. 법원장이 연행되고, 신문사 편집국장, 제주 중학교 교장 등이 총살된다. 

 

- 안 그래도 토벌대에게 당시 제주도는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이국적인 제주의 독특한 방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토벌대에게 비친 제주 사람은 언어 소통도 안 되는 낮은 생활수준의, 이질적인 존재였다. 

 

- 1948년 5.10 선거 전후 미군 보고서는 일본 소식편을 통해 "4월 입국자 증가" "한국 이민자들의 파고" 등의 제목으로 한국인의 일본 입국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 가령 일본 큐슈지역의 오이타고도 신문 1948년 6월 12일자는 "6월 10일 오이타에 도착한 밀항 조선인 36명을 검거, 그들은 제주도의 내전을 피해서 도망 온 사람들로 목포에서 승선했다"고 기록한다. 

 

- 이시기, 이승만 정권은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의적인 판ㄷ나 아래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사람들을 전국적으로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잡아들였다. 

 

- 울음마저 소리낼 수 없었다. 통곡 없는 슬픔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같은 일이었다. 

 

- 1054년 9월 21일. 마침내 민족의 영산 한라산은 그토록 굳게 닫아걸었던 빗장을 열었다. 

 

- 먼저 1948년 11월 중순꼐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간 진압군이 벌인 초토화 작전의 책임은 당시 정부와 미국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과 초토화 작전이 자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 만인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즈음이다. 

 

두 번째로, 미국의 책임을 덮어둘 수 없다. 그렇다. 무엇보다 4.3은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고 있던 미군정 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국무회의 자리에서 "가혹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주도 4.3사건을 ㅗ안전히 진압해야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미국의 원조가 가능하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는 무슨 의미인가. 이는 강경 진압 작전이 미국과의 교감 속에서 벌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기억이 말살당한 데는 역사가 없다. 역사가 없는 데는 인간의 존재가 없다. - 제주 출신의 재일동포 김석범 - 

 

 

< 제주 4.3의 전개>

 

1946

보리 대흉작, 콜레라 발병, 미군의 미곡 수집령, 양과자 반대시위(식량 대신 지급된 양과자)

 

1947

3.1 기념 시위, 제주 인구 28만 명 중 3만이 참여, 안세훈(남로당), 사망자 6명 중 5명은 등에 총을 맞아 과잉진압임을 알 수 있음. 응원경찰은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발포함

 

3.10 총파업, 조병옥은 이를 건국방해 세력으로 보고 파업주도자의 색출도 처벌을 지시

 

1948

3월 경찰의 고문치사 사건 다수 발생

신임 제주지사인 유해진이 제주도민을 좌익으로 규정해 미군정이 해임을 건의하였으나 딘 소장이 거부하였다. 

 

송요찬의 통행 금지령

 

10월 19일, 여순반란 사건 발발 

11월 19일, 이승만 계엄령 선포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1949년

6월, 이덕구 사살. 그러나 평화는 도래하지 않고 4.3사건은 지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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