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야기들/독서

남한산성(김훈)

Varsika 2024. 2. 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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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이틀 만에 다 읽었다. 걸작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화 속 대사의 대부분이 이 책에서 그대로 나왔음을 알아 놀랐고, 보여지는 것에 대한 묘사도 탁월하여 영화처럼 장면이 그려진다. 

 

○ 책 속에서

 

-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말들의 산맥 너머는 겨울이 있었는데 임금이 시야는 그 겨울 들판에 닿을 수 없었다. 

 

- 지금은 대의가 아니옵고 방편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불붙은 집 안에서는 대의와 방편이 다르지 않을 것이옵니다. 

 

- 너희의 두려움을 내 모르지 않거니와, 작은 두려움을 끝내 두려워하면 마침내 큰 두려움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임금이니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라.

 

-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듯 팽팽했다. (37)

 

- 강 건너 마을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버려진 말이 길게 울었다. 말 울음소리가 빈 강을 건너왔다. 

 

- 저것들이 겉보리 한 섬 지니지 않았구나. 서날쇠는 마을로 내려왔다. 성 안과 밖이 막혀서 농장기를 팔 수 없을 것이었다.

 

- 성벽은 가파르게 휘어지면서 능선을 따라 출렁거렸다. 

 

-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160)

 

- 말씀이 너무 거칠구려. 지금 싸우자고 준열한 언동을 일삼는 자들도내심 대감을 믿고 있는 것 같았고소. 충렬의 반열에 앉아 역적이 성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소. 이 성은 대감을 집행할 힘이 아마도 없을 것이오.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

 

먹고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 너희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과 오지 않은것의 차이를 깊이 생각해라. 너희들끼리라면 성을 깨트려서 취하는 쪽이 용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왔으므로 군사를 몰아서 성을 취함은 아름답지 않다. 

 

-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칸의 뜻에 따라 글을 짓는 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봄은 빠르게 다가왔다. 추위는 온 적이 없다는 듯이 물러나고 있었다. 날들은 지나간 모든 날들과 무관한 듯싶었다.

 

- 그러하옵니다. 전하,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옵고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바닥이옵니다.

 

- 권과 경(작가의 말 中)

 

심양 감옥에서 두 사람은 경(바뀌지 않는 원리)과 권(현실에 맞게 일을 처리함)에 대하여 시를 지어 담론하였다. 

김상헌은 "권은 어진 이도 그르칠 수 있으나 경은 누구도 업길수 없다"라고 썼고 최명길은

"하는 일이 어쩌다가 때에 따라 다를망정 속마음이야 어찌 정도에서 어긋나랴"라고 대답했다. 

 

심양에 끌려와 있던 이경여는 시를 지어 두 사람에게 보냈다.

 

"두 어른의 경과 권이 모두 나라를 위함인데

하늘을 떠받치는 큰 절개요(김상헌)

한때를 건져낸 큰 공적일세(최명길)

이제야 원만히 마음을 합치니

남관의 두 늙은이 모두가 백발일세"

 

김상헌과 최명길은 적의 감옥에서 화해했다. 그들ㅇ느 자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긍정했다. 

 

- 이 세계가 영원히 불완전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사랑과언어는 이 불완전성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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