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이 책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에 나왔다. 여행이 금지된 시점에 코로나 이후의 여행을 준비하며 쓴 책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던 것을 고려하면, 시장 관점에서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다.
- 특정한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저자를 만나 반가웠다.
- 대학시절, 유명 CEO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금융회사의 대표였는데 그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여행 계획을 짠다'라고 말했다. 여행이란 누구나에게나 설렘을 주기 때문이고, 계획한 후에 여행을 가지 못하더라도 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이 즐겁다는 말을 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많았는데 그 경험을 언어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여행이란 실제 가지 못하더라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 이 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 여행과 여행지에 대한 소소한 에세이라고 볼 수 있고, 저자가 여행을 많이 다닌 탓에 조금은 특별하고 낯선 곳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썰을 푸는' 기술도 나쁘지 않아서 책이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타율을 보여준다. 술술 읽힌다. 물론 전개가 아주 구조적이거나 논리적인 것은 아니나 화법의 탄력성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간다.
가령, 이런 표현이 있다. 영어 실력을 나누는 3단계. 돈을 쓸 때도 불편한 사람, 영어와 함께 돈을 쓸 수는 있으나 돈을 벌 수는 없는 사람. 영어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 재미있는 설명이다.
- '왜 타인의 기호에 따라 여행하는가?'라는 저자의 물음이 통쾌했다. 저자는 런던과 파리를 2번 이상 방문했지만 영국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알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선택이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취향,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타인의 인정을 고려하여 여행한다.
- 약 30개의 이야기를 묶어 하나의 책으로 구성했다. 과거 작가 수업을 들을 때 30개의 꼭지가 모이면 책 한 권이 된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딱 맞는 예시였다. 훗날 여행 책을 쓸 때 참고하고 싶어 소장하기로 했다.
- 여행지와 책을 연결한 부분은 좋았다. 나 역시 여행지를 추천할 때 그곳에 어울리는 음악과 책, 영화를 함께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 여행지가 배경인 소설책 등
○ 책 속에서
- 나의 취미는 '여행준비'다.
▷ 지도앱에 별표를 박는 행위 자체는 많은 사람이 하겠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령 아내와 각기 다른 색으로 별을 칠하여 훗날 그것을 보고 아내와 이야기를 한다든지.
- 미국의 캐시백(cash back) 문화. 10달러어치 물건을 구매한 다음 10다럴 캐시백을 원한다고 하면 20달러를 결제한 다음 물건과 함께 10달러를 현금으로 내주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소액 현금 인출 서비스를 슈퍼마켓 같은 데서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은 워낙 넓어서 은행이나 ATM기기를 찾기가 쉽지 않고, 행여 찾는다고 해도 수수료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생겨난 문화다.
▷ 이런 생활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단순한 뜨내기와 살아본 자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에서 드러난다.
- 다녀보니 행선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긴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같은 기억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다. 육아에서 단순히 아이와 함꼐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롯이 아이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 중요한 것처럼, 효도도 때로는 집중이 필요한데 여행 외에는 그런 집중의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에 대하여)
▷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종종 함께하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함께 나눌 이야기가 남는다. 술자리는 1회성이 짙다. 만약 술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한다면 그것은 회상이나 발굴이 아니라 단순한 반복 혹은 주사일 가능성이 높다. 한 번의 술자리는 단 한 번의 기억으로 남지만, 한 번의 여행은 그다음 여행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것이 시간당 비슷한 금액을 지불하지만 여행이 술자리보다 깊은 의미를 갖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여행준비는 버리기 연습. 여행 준비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는 행위이며, 여러 장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어디에서 보람을 느끼고 어디에서 실망하는지,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어떤 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고 어떤 순간에 가장 좌절하는지, 결국 나의 가치관은 무엇이며 인생관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는 건 긴 인생을 좀 더 알차게 보내는 데 꼭 필요하다. (...)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잘 알지 못한다.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 어색하게 들리듯. (...)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여행준비의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떄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물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반드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하는 '타자의 취향'에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런 사람을 '여행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을 떠는 모든 사람이 '여행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여행자는 여행이라는 행위보다는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 여행을 경험하는 태도, 여행한 이후의 행동에서 규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태주의 <물놀이>. 걸어서 세계속으로 시그널 뮤직
- 여행담은 아무리 겸손하게 말해도 '플렉스'의 느낌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자치하면 듣는 사람의 염장을 지르게 된다. (...) 여행 이야기는 최대한 짧게 하고 최대한 많이 듣는 게 가장 좋다.
- "상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무 많이 들어준다고 불평할 사람은 없다." (Andrew Sobel & Jerold Panas)
- 독일의 자전거 문화. 특히 놀라운 것은 자전거를 음주 운전하다가 적발되었을 때의 제재였다. 그건 다름 아닌 자동차 운전면허의 정지나 취소였다. 자전거는 원래 면허가 필요 없으니, 과태료나 벌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 주변에서 애서가들에게 휴가 때는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더라. 평소에 바빠서 못 읽었던 진지한 '벽돌책'에 도전하겠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소위 '페이지 터너'를 읽겠다거나.
- 나는 여행지에서 다양한 물건을 구매해봤는데, 그중에서도 여행의 기억을 여러 번 소환할 수 있는 물건들이 좋았다. 일생생활에서 실제 사용가능한 물건들이 좋았다. 식재료를 사 오면 그걸 다 먹는 동안, 수건을 사 오면 그걸 사용할 때마다, 안경이나 키홀더를 사 오면 시시때때로, 즐거웠던 순간이 잠시 떠오른다. (냉장고 자석을 모으기도 하는데 현지에서 팔지 않으면 작은 기념품을 사서 자석을 붙여 만든다.)
▷ 비슷한 경험이 있다. 순천 송광사를 방문했을 때, 그곳이 너무 좋아 기념품을 하나 사고 싶었다. 실용적인 물건을 좋아하는 탓에 손수건을 하나 샀는데 그 다음부터그 손수건을 볼 때마다 송광사가 생각났다. 그래서 일본의 구마모토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손수건을 샀다. 티셔츠나 머그컵 같은, 그런 실용적인 기념품은 여행의 순간을 일상으로 가져온다.
- 일본 나오시마
호텔엔 베네세하우스야 말로 정말 특별한 호텔이자 미술관이다. 베네세하우스는 내가 묵어본 모든 호텔 중에서 가장 조용했다. 나오시마는 당일치기로 둘러보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니 이틀정도 숙박을 권한다. 베네세하우스는 예약하기 매우 어렵지만, 민박집이 몇 개 있긴하다,
-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르고 인생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한 번뿐이다. 느리게 움직여야 자세히 볼 수 있고, 느리게 움직여야 풍경 말고 내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팁을 하나만 달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처음 세운 계획에서 일정을 20퍼센트쯤 줄이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 함께 보면 좋은 것
https://www.youtube.com/watch?v=UouiByO_RpY
- 책 내용이 대부분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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